현정은 방북 언급하자마자 “안돼”…북 외무성이 선수친 이유는?

김경진 2023. 7. 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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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이 다음달 4일 고 정몽헌 회장 20주기에 맞춰 추진하고 있는 방북 계획에 대해 북한이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아직 통일부에 대북 접촉 신고가 수리도 안 됐는데 먼저 안 된다고 나서 선수를 친 겁니다. 남측 인사의 방북과 관련해 통일전선부 등 대남기구가 아닌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다루는 외무성에서 입장을 발표한 것도 이례적입니다.


■ 접촉 신고 수리도 안 됐는데 방북 안 된다 선수 친 북한

김성일 북한 외무성 국장은 오늘(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배포한 담화에서 현 회장 측이 정부에 대북 접촉 신고를 제출한 것과 관련해 "남조선의 그 어떤 인사의 방문 의향에 대하여 통보받은 바 없고 알지도 못하며 또한 검토해볼 의향도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밝혔습니다.

또 "금강산 관광 지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분이며 따라서 우리 국가에 입국하는 문제에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며 "이러한 원칙과 방침은 불변하며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현정은 회장 측은 지난달 27일 방북을 위해 북측과 접촉하려 한다며 통일부에 대북 접촉 신고를 제출했습니다. 현 회장 측은 정몽헌 회장 20주기 추모식을 위해 금강산에 방북하고자 아태평화위원회와 접촉할 계획이라고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통일부가 아직 접촉 신고를 수리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북측이 서둘러 방북을 거부할 것임을 밝힌 것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담화는 북한이 윤석열 정부에 대해 현 단계에서 품고 있는 최고 수준의 대남 적개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공식적으로 빠르게 반응한 것은 온갖 억측과 시도를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밝혔습니다. 남측 인사의 방북 불허가 북한의 확고한 방침임을 강조하면서 현대가 아태위를 통해 뭔가 하려는 시도를 사전 차단하고 아태위의 권한과 현재 위상을 명확히 하려 했다는 겁니다.

다만 이번에 북한 담화에서 현정은 회장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는데, 이는 특정인의 방북 불허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대 현대 일가와의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양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 '국가 대 국가' 문제 다루는 외무성이 나선 이유는?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1991)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1991년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르면 한국과 북한의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라고 규정돼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과 접촉할 땐 우리나라도 외교부가 나서지 않고 통일부가 대표가 됐던 겁니다. 북한은 외무성이 아닌 통일전선부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카운터파트였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방문할 땐, 출국이란 표현도 쓰지 않고 '출경'이라고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남측 인사의 방북과 관련해 통일전선부 등 대남기구가 아닌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다루는 외무성에서 입장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외무성 국장 담화는 대남 적대 관계 설정에 따른 적대 국가로서 남측을 상대하겠다는 의중을 내포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외무성에서 반응한 것은 남북관계를 특수관계가 아닌 일반적 국가관계, 즉 '투 코리아' 의 가능성으로 보겠다는 것"라고 해석했습니다.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북한이 더 이상 기존의 남북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이른바 '투 코리아'를 향해 가겠단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면 앞으로 남측 인사를 포함한 모든 방북자의 입출국을 외무성에서 관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5월 3일 완전히 해체된 금강산 해금강 호텔 (출처 : KBS 뉴스)


■ "금강산에 현대의 권리는 없다는 점도 강조하려는 것"

전문가들은 또 "금강산관광지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토의 일부분"이라는 표현에도 주목했습니다.

임을출 교수는 "이제 금강산 관광 사업 계약에 따른 현대 그룹의 기존 권리는 존재하지 않으면 따라서 기존 계약과 남북 당국 간 합의도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앞서 2019년 김정은 지시로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들에 대해 철거가 시작됐고, 문화회관 건물과 구룡빌리지, 온정각 등이 모두 철거됐습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해금강호텔까지 지난해 초부터 해체가 시작됐고 지난 5월에 지지대까지 완전히 해체된 것으로 위성 사진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지금까지 금강산 관광지구에 투자한 돈은 민간 4,200억 원, 정부 600억 원에 달합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금강산 무단 철거에 대해, "북한의 위법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현재 현대아산의 파트너였던 아태평화위원회가 현재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는 식물기구로 추락해있고, 통일전선부도 비슷한 처지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 "미국과 일본은 대북 접촉 가능성…한국은 배제하려는 것"

이번 외무성 발표와 관련해 북한이 미국, 일본과는 접촉을 하면서도 한국은 완전히 배제하려는 의도가 읽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미국, 일본과 북한의 접촉 환경이 조성되는 가운데 남측과의 접촉은 현 단계에서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블링컨 국무 장관이 지난 6월 19일 시진핑 주석 면담 과정에서 대북 영향력 행사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대북 제재 이행 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해 북미 대화 중재 요청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 교수의 분석입니다.

또 일본 역시 기시다 총리가 북일 대화 필요성을 제기했고,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 6월 30일 '북한 납치 문제에 대한 온라인 유엔 심포지엄'에서 북·일 정상 간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상황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미국 또는 일본과의 접촉, 또 다른 나라와도 교류를 염두에 둘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의 개입은 철저히 배제하려는 의도가 읽힌다는 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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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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