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상상, 일상적 현실… 회화의 언어로 풀어내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삶서 마주하는 이미지·이야기·단어서 영감
말이나 글로써 온전히 전할 수 없는
감정의 색채·상상된 촉감, 시각이미지로 전달
화면 가득 채도 높은 보색의 강렬한 대비
세찬 듯 섬세한 붓의 묘사 … 미묘한 감정 호소
#신화적 세계를 유영하는 아이처럼
#물감에 실린 감정들, 처절하게 아름답도록
화면은 유채의 차지고 습윤한 질감을 탁월하게 드러낸다. 채도 높은 보색의 강한 대비와 세찬 듯 섬세한 붓의 묘사가 두드러진다. 색채의 사용과 물감의 점도, 붓질의 속도에 따라 회화가 매개하는 정서의 질감이 달라진다. 당혹스럽도록 소란하며 애틋하리만치 성실한 장면들. 화면은 세상을 향하여 미묘한 감정을 호소한다. 여린 마음결로 울부짖듯이, 처절하게 아름다운 목소리처럼. 누군들 그 비명을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까.
#폭포가 냇물과 맞닿는 순간…
현재의 중력과 관계 맺는 회화
정수정은 “물리적으로 큰 화면을 마주했을 때 역동적인 힘을 스스로 제한하지 않아도 되는 용기”가 생긴다고 고백한다. 신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화면과 상호 작용하는 순간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다. “오른팔과 몸의 힘을 화면에 그대로 흡수시키는 듯한 느낌이라서” 화면 안에 꿈틀하며 부유하는 미지의 가능성들을 “스스로 낳아 함께 뒹굴며 격한 소통을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교미’라는 작품명은 상상의 여지를 다각도로 제공한다. 붓은 제 끝자락에 물감을 머금고 수분(受粉)하듯 화면 위에 뱉어 낸다. 붓과 캔버스의 뒤엉킴은 보이지 않는 상상을 잉태하여 고유한 시각적 환영으로서 낳아 낸다. 거대한 화면을 크게 가로지르는 작가의 팔이 그 환영과 짝을 짓는다. 그림과 공간은 하나의 몸이 되고, 그리는 이와 보는 이의 시선이 교류한다. 폭포가 냇물과 맞닿는 순간, 회화의 시간과 현실의 장소는 무척 긴밀하게 관계 맺는다.
#불가능한 상상을 현존하는 물성으로…
회화의 힘
“저는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회화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미술관에 설치된 작가 미상의 고전 회화 및 온라인에서 이미지로 접할 수 있는 모든 회화가 가진 구상적 힘과 실험의 결과물을 분석해 보며, 제 생각을 담은 작업으로 바꾸어 보기도 하고 연구해 봅니다. 구상 회화를 통해 드라마틱한 형태와 색감, 장르적이며 연극적인 희곡의 한 장면을 지속해서 시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수정의 연극 무대에 초청받은 배우들은 어떠한 서사의 전달이나 논리적 설득을 목표하지 않는다. 화면과 화면, 전시와 전시를 넘나드는 모호한 이야기는 이어질 듯 끊어지고, 연결될 듯 부서진다. 마치 꿈처럼, 한 장 쓰다 만 희곡처럼. 회화의 물성을 빌려 기록된 장면들은 무형의 상상을 손에 잡히는 부피로서, 무게를 지닌 실체로서 변환해 낸다. 회화의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도저히 불가능한 공상으로 하여금 실재하는 현실의 몸을 갖도록 하는 일.
정수정은 가천대학교 회화과 학부 및 영국 글래스고 예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8년 레인보우큐브에서 첫 개인전 ‘스윗 사이렌’을 열었고 2020년 ‘OCI 영 크리에이티브스’에 선정되어 주목받았다. 갤러리밈(2019), OCI미술관(2020), SeMA 창고(2021), 에이라운지 갤러리(2021)에서 개인전을 선보인 한편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하이트컬렉션 등 주요 기관 단체전에 참여하면서 어느덧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화 작가 중 하나로서 자리매김했다. 7월23일까지 인사동 소재 갤러리밈에서 정수정과 이재석의 2인전 ‘비막’을 관람할 수 있다. 연말인 12월15일에는 서울 부암동의 에이라운지 갤러리가 정수정의 여섯 번째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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