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된 ‘국내 최장수’ 충정아파트,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주민 대다수가 재개발 추진 반겨"
서울시는 6월 21일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를 열고 '마포로 5구역 제2지구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및 정비계획 결정 변경'을 수정 가결했다. 충정아파트를 포함한 연면적 약 4만2000㎡ 부지에 지하 5층∼지상 28층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는 재개발 후 공개공지에 3D 스캐닝 등 방식으로 충정아파트를 기념하는 공간을 조성할 방침이다. 1979년 9월 재개발구역으로 처음 지정된 마포로 5구역 제2지구는 2009년 6월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변경 지정되는 등 40여 년 동안 개발이 계속 지연돼왔다. 충정아파트 철거와 인근 지역 재개발은 오랜 기간 난항했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서울시는 충정아파트를 문화시설로 지정해 보존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다 재산권 침해와 안전 문제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반발로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충정아파트 철거론이 다시 힘을 받았다.충정아파트 1층에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실을 운영하는 장 모 씨는 "주민 대다수가 재개발 추진을 반기는 분위기"라며 "박 전 시장 때 이곳을 그대로 보존한다고 해서 '그건 잘못'이라는 여론이 많았다"고 말했다. 장 씨에 따르면 현재 충정아파트는 48가구로 나뉘어 있다. 이 중 90% 이상이 장기간 거주한 세입자로, 공실은 1~2가구밖에 안 된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구조 변경이 이뤄져 집마다 면적과 구조에 차이가 있다. '네이버 부동산'에 따르면 충정아파트 가구별 면적은 5㎡부터 118㎡까지 28가지나 된다. 6월 15일 등록된 61.82㎡ 임대 시세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이다. 부동산업계는 이 지역이 서울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과 서대문역이 가까운 교통 요지라 재개발되면 자가 또는 임대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준공된 인근 아파트 단지는 올해 1월 실거래가 10억5000만 원(84㎡)을 기록했다.
충정아파트는 한때 '1930년 지어진 한반도 최초 아파트'로 알려졌으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최근 건축학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충정아파트의 건축물대장상 신축·준공일자는 1937년 8월 29일이다. '1930년 준공설'은 1970년대 국내 한 일간지가 '1930년대'를 '1930년'으로 오기한 후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다. 1932년 준공됐다는 주장도 있으나 부지 매입 시점을 아파트 준공일자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지어진 때만 놓고 보면 중구 남산동1가 '미쿠니 아파트'(1930)나 중구 회현동2가 '취산아파트'(1936), 중구 을지로5가 '황금아파트'(1937. 4) 등 충정아파트의 형님 격인 건물이 현존한다.
최초 타이틀이 없다고 충정아파트의 역사적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준공 당시 충정아파트는 4층 높이 철근콘크리트 건축물로, 최첨단 주거지였다. 미쿠니 아파트 등은 대개 기업의 사원용 공동주택이었고 상당수가 1~3층 높이에 벽돌조라 현 관점에서 보면 빌라에 가깝다. 현행법상 아파트는 '5층 이상 공동주택'을 뜻하는데,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충정아파트는 '현존하는 최장수 아파트'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 시절 직주 근접성 좋은 최신 주거지
충정아파트에는 한국 근현대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처음 건축된 일제강점기 당시 충정아파트는 건축주 도요타 다네마쓰(豊田種松)의 이름을 따 '도요타 아파트'로 불렸다. 당시 도요타 아파트의 매력은 우수한 입지로, 인근 죽첨정(현 서대문구 충정로)3정목 전차정류장을 통해 도심으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1930년대 서울 곳곳에는 도심 직장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을 겨냥해 새로운 주거 형태로 아파트가 들어섰다. 충정아파트도 '직주 근접성' 좋은 최신 인기 주거지였다. 도심과 가까운 서대문구에는 해방 후에도 미동아파트(1969), 서소문아파트(1972) 등 초기 형태 아파트가 여럿 세워졌다.1945년 해방 후 충정아파트는 미군에 접수돼 '트레머호텔'로 이름이 바뀌고 군용 숙소로 쓰였다. 6·25전쟁 포화 속에서도 충정아파트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건재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후 유엔군·국군이 서울을 북한군으로부터 탈환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전개됐다. 당시 현 마포대로 일대에서 교전하는 미 해병대를 촬영한 사진이 전해지는데, 여기에 충정아파트가 함께 담겼다. 서울 탈환 후 충정아파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합동고문단 본부로 쓰였다.
"철거까지 10년 걸릴 수도… 재개발 촉진 지원해야"
일각에서는 역사적 의미가 상당한 충정아파트 철거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충정아파트의 경우 그 역사적 중요성을 고려해 어떻게 흔적을 남길지 논의가 많이 됐는데, 최근 완전 철거가 결정된 것은 아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근대도시주거로서 충정아파트의 특징 및 가치' 제하 논문 공저자로, '1930년 준공설' 등 통설의 오류를 바로잡고 충정아파트의 변천을 분석한 바 있다. 그는 충정아파트의 건축사적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충정아파트는 서울에 지어진 4층 이상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로서 도시 봉급생활자들이 근대적 삶을 영위한 장소로 쓰였다. 1970~1980년대까지도 인근 미동아파트 등과 함께 도시 근로자들이 주로 사는, 오늘날 오피스텔과 비슷한 구실을 하는 주거지였다. 충정아파트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다른 아파트는 헐리거나 사무실로 용도가 바뀌었다. 한국과 같이 역동적인 역사를 겪은 나라에서 충정아파트처럼 주거지로서 오래 쓰인 아파트는 극히 드물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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