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된 ‘국내 최장수’ 충정아파트,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김우정 기자 2023. 7. 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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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건축돼 한 때 美 CIA 사무실, 호텔로 사용… 28층 주상복합아파트로 변모 예정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 [박해윤 기자]
6월 26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아파트 앞. 비에 젖은 5층 초록색 외벽 페인트 사이로 일제강점기에 유행했다는 옅은 노란색 스크래치 타일이 보였다. 1937년 건축돼 86년 동안 버텨온 건물이 내비친 세월의 흔적이었다. 아파트 출입문에는 주민들이 써 붙인 '외부인 무단출입 및 내부 사진촬영 적발 시 고발조치'라는 경고문과 함께 서대문구청장 명의의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한 주민은 "문화적 가치고 뭐고, 이렇게 낡은 건물을 헐지도 못하게 해 골치가 너무 아팠다"고 토로했다.

"주민 대다수가 재개발 추진 반겨"

서울시는 6월 21일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를 열고 '마포로 5구역 제2지구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및 정비계획 결정 변경'을 수정 가결했다. 충정아파트를 포함한 연면적 약 4만2000㎡ 부지에 지하 5층∼지상 28층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시는 재개발 후 공개공지에 3D 스캐닝 등 방식으로 충정아파트를 기념하는 공간을 조성할 방침이다. 1979년 9월 재개발구역으로 처음 지정된 마포로 5구역 제2지구는 2009년 6월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변경 지정되는 등 40여 년 동안 개발이 계속 지연돼왔다. 충정아파트 철거와 인근 지역 재개발은 오랜 기간 난항했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서울시는 충정아파트를 문화시설로 지정해 보존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다 재산권 침해와 안전 문제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반발로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충정아파트 철거론이 다시 힘을 받았다.

충정아파트 1층에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실을 운영하는 장 모 씨는 "주민 대다수가 재개발 추진을 반기는 분위기"라며 "박 전 시장 때 이곳을 그대로 보존한다고 해서 '그건 잘못'이라는 여론이 많았다"고 말했다. 장 씨에 따르면 현재 충정아파트는 48가구로 나뉘어 있다. 이 중 90% 이상이 장기간 거주한 세입자로, 공실은 1~2가구밖에 안 된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구조 변경이 이뤄져 집마다 면적과 구조에 차이가 있다. '네이버 부동산'에 따르면 충정아파트 가구별 면적은 5㎡부터 118㎡까지 28가지나 된다. 6월 15일 등록된 61.82㎡ 임대 시세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이다. 부동산업계는 이 지역이 서울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과 서대문역이 가까운 교통 요지라 재개발되면 자가 또는 임대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준공된 인근 아파트 단지는 올해 1월 실거래가 10억5000만 원(84㎡)을 기록했다.

충정아파트는 한때 '1930년 지어진 한반도 최초 아파트'로 알려졌으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최근 건축학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충정아파트의 건축물대장상 신축·준공일자는 1937년 8월 29일이다. '1930년 준공설'은 1970년대 국내 한 일간지가 '1930년대'를 '1930년'으로 오기한 후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다. 1932년 준공됐다는 주장도 있으나 부지 매입 시점을 아파트 준공일자로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지어진 때만 놓고 보면 중구 남산동1가 '미쿠니 아파트'(1930)나 중구 회현동2가 '취산아파트'(1936), 중구 을지로5가 '황금아파트'(1937. 4) 등 충정아파트의 형님 격인 건물이 현존한다.

최초 타이틀이 없다고 충정아파트의 역사적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준공 당시 충정아파트는 4층 높이 철근콘크리트 건축물로, 최첨단 주거지였다. 미쿠니 아파트 등은 대개 기업의 사원용 공동주택이었고 상당수가 1~3층 높이에 벽돌조라 현 관점에서 보면 빌라에 가깝다. 현행법상 아파트는 '5층 이상 공동주택'을 뜻하는데,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충정아파트는 '현존하는 최장수 아파트'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그 시절 직주 근접성 좋은 최신 주거지

충정아파트에는 한국 근현대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처음 건축된 일제강점기 당시 충정아파트는 건축주 도요타 다네마쓰(豊田種松)의 이름을 따 '도요타 아파트'로 불렸다. 당시 도요타 아파트의 매력은 우수한 입지로, 인근 죽첨정(현 서대문구 충정로)3정목 전차정류장을 통해 도심으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1930년대 서울 곳곳에는 도심 직장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을 겨냥해 새로운 주거 형태로 아파트가 들어섰다. 충정아파트도 '직주 근접성' 좋은 최신 인기 주거지였다. 도심과 가까운 서대문구에는 해방 후에도 미동아파트(1969), 서소문아파트(1972) 등 초기 형태 아파트가 여럿 세워졌다.

1945년 해방 후 충정아파트는 미군에 접수돼 '트레머호텔'로 이름이 바뀌고 군용 숙소로 쓰였다. 6·25전쟁 포화 속에서도 충정아파트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건재했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후 유엔군·국군이 서울을 북한군으로부터 탈환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시가전이 전개됐다. 당시 현 마포대로 일대에서 교전하는 미 해병대를 촬영한 사진이 전해지는데, 여기에 충정아파트가 함께 담겼다. 서울 탈환 후 충정아파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합동고문단 본부로 쓰였다.

1950년 9월 서울 탈환전에 나선 미국 해병대 병력 뒤편으로 충정아파트(원 안)가 보인다. [미국 해군 역사·유산 사령부 제공]
전후 한국 정부는 미군으로부터 충정아파트를 넘겨받았다. 충정아파트 소유권이 다시 민간으로 불하되는 과정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정부는 1961년 8월 아들 6명이 6·25전쟁에서 전사했다고 주장해 '반공의 아버지'로 불린 김병조라는 인물에게 당시 시가 5000만 원 상당의 충정아파트를 불하했다. 전사자연금 14만76000원, 건국공로훈장과 함께였다. 김병조는 충정아파트를 개조해 관광호텔을 운영했다. 문제는 이듬해 "아들 6명을 반공 전선에 바쳤다"는 그의 주장이 사기로 드러난 것. 1962년 8월 21일자 동아일보는 '"쌀 배급이나 타려던 게" 나라망신… 훈장·호텔까지' 제하 기사에서 "김병조는 놀랍게도 없는 아들을 팔아 나라를 속이고 민족을 속인 끔찍한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수사당국에 의하여 밝혀지고 있다"면서 "범죄 동기는 '단순히 쌀 배급이라도 타려고 했던 것이 그만 이런 어마어마한 범죄가 되었다'(구속영장 요지)고 하니 더욱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 김병조로부터 몰수한 충정아파트는 1970년대 '유림아파트'로 불리며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고, 여러 사람의 공동소유가 됐다. 1978~1979년 도로 확장 공사로 건물 일부가 철거된 충정아파트 모습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철거까지 10년 걸릴 수도… 재개발 촉진 지원해야"

일각에서는 역사적 의미가 상당한 충정아파트 철거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충정아파트의 경우 그 역사적 중요성을 고려해 어떻게 흔적을 남길지 논의가 많이 됐는데, 최근 완전 철거가 결정된 것은 아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근대도시주거로서 충정아파트의 특징 및 가치' 제하 논문 공저자로, '1930년 준공설' 등 통설의 오류를 바로잡고 충정아파트의 변천을 분석한 바 있다. 그는 충정아파트의 건축사적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충정아파트는 서울에 지어진 4층 이상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로서 도시 봉급생활자들이 근대적 삶을 영위한 장소로 쓰였다. 1970~1980년대까지도 인근 미동아파트 등과 함께 도시 근로자들이 주로 사는, 오늘날 오피스텔과 비슷한 구실을 하는 주거지였다. 충정아파트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다른 아파트는 헐리거나 사무실로 용도가 바뀌었다. 한국과 같이 역동적인 역사를 겪은 나라에서 충정아파트처럼 주거지로서 오래 쓰인 아파트는 극히 드물다."

2018년 6월 22일 촬영된 충정아파트 내부 중정(中庭). [이연경 제공]
충정아파트가 당장 헐리는 것은 아니다. 향후 재개발 조합설립인가→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이주·철거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마포로 5구역 제2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재개발사업의 큰 문턱을 넘었고, 주민 간 이견도 거의 없어 사업 추진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 도시정비사업 전문가는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조합설립부터 입주까지 재개발사업 진행에 8~10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면서 "재개발이 지연되면 충정아파트의 안전성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정비사업을 촉진할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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