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도 힘들었던 내 집 짓기…완공되니 고충 사르르 [ESC]
옥인동 노후건물 사서 신축 시도
시공사 선정 난항…민원 걸림돌
마음 다잡고 ‘원하는 집’ 완성
서울 옛 도심에 새집을 지어 이사 온 지 이제 두 달이 됐다. 건축가인 남편 신호섭과 건축사무소를 함께 운영하면서, ‘사무실과 살림집을 겸해 살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이 실현된 것이다.
우리는 10년간 서울 종로구 계동, 원서동, 옥인동 등 북촌 일대에 있는 사무실을 임대로 사용했다. 북촌을 선택한 이유는 남편의 고향이 옥인동인 점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유학하면서 보낸 파리의 일상을 한국에서도 이어가고 싶었다. 우리는 파리에서 주로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했다. 마른 라 발레 건축학교에 다닐 때도, 졸업하고 파리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걸으면 얻는 게 많다. 이웃의 소식을 알 수 있다. 계절의 변화도 목도한다. 그럴 수 있는 동네가 서울에선 북촌이라고 생각했다. 호젓하게 걷기 좋은 길이 골목을 메우고, 산책하면서 이웃들과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친해질 수 있는, 그런 예스러움이 남아있는 곳이 북촌이다.
사실 집을 지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살림집으로 처음 구한 집은 우리의 장난스러운 가훈 ‘애쓰지 말자’와 꽤 잘 맞는 집이었다. 사무실도 원서동에 있어서 가까운데다가, 이 집 창밖 풍광은 근사하기까지 해서 더 큰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창밖에서 보이는, 녹음이 우거진 창덕궁 후원은 사계절마다 새 옷을 입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까치가 앞집 용마루에서 노는 모습도 볼거리였다. 두 사람이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땅만 있으면 집 지을 줄 알았는데…
2018년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결혼 11년 만에 찾아온 아이로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생명과 하루 일과를 쌓아가는 곳이 집이었다. 처음으로 ‘보금자리’라는 말의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 일상도 180도 달라졌다. 모유 수유를 하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이와 산책이라도 하려고 하면 경사진 골목은 골칫거리였다. 유아차를 힘겹게 끌어야만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서야 현실과 마주하며,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하게 됐다. 이런저런 고심 끝에 일터와 살림집을 합치는 것만이 해결책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의 가훈 실천을 잠시 접어두고 온 힘을 다해 ‘애쓰기’로 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뒤인 2021년 봄, 드디어 옥인동 47번지 한 모퉁이에 있는, 우리 예산에 맞는, 목조 건물이 남아 있는 땅을 구입할 수 있었다. 기를 쓰고 매일 부동산 전문 사이트를 검색한 결과였다. 옥인동 일대는 잘 아는 지역이었지만, 언덕에 있는 47번지는 가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이 위치에 이 가격의 집이 매물로 나와 있다는 게 신기했다. 반신반의하며 가보니 집 주변엔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신축 공사도 여럿 진행되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에 여러 자료를 찾아봤다. 이 지역은 10여년 전부터 아파트 재개발이 추진되다가 도시재생사업 대상지로 전환되면서 2019년 정비계획이 수립된 곳이었다. ‘여기다’ 싶었다. 남편에게 한껏 들떠서 얘기하니 돌아온 것은 ‘무모하다’는 질책이었다. 가족들의 반대는 건축에 도전하는 이라면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이미 완성된 건물에서 사는 우리 가족의 일상이 꽉 차있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작은 프라이팬 모양의 땅이기에 공사가 난해하고, 맹지에 가까워 여러 불편함이 있는 땅임에도 나는 결과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서울시가 정비구역으로 지정한 이 지역은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서울의 천편일률적인 다른 동네와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둘 다 건축가라서 지인들은 “집 짓는 데 어렵지 않았겠다”고 짐작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건축가를 찾는 수고스러움은 덜었지만, 건축가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서울에서 ‘집짓기’란 힘들고 고단한 여정이다. 우리는 내심 땅만 있으면 원하는 집을 예산에 맞게 비 안 새고 외풍 없는 집을 설계해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건물 철거비만 수천만원이 들었다. 갑자기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건축 자재비와 인건비까지 올렸다. 우리는 방앗간 드나드는 참새처럼 은행 문을 자주 두드려야만 했다. 초과된 예산을 메우기 위해 남편은 여러 설계 공모전에 매달려야 했다.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에스레터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한겨레신문을 정기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정기구독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분쟁·소송 등…‘수행’ 같았던 시간
다음은 시공사 선정이 문제였다. 시공사가 설계도의 도면을 현실로 구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실력 없는 시공사는 도면을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다. 집 짓는 내내 드는 비용도 시공사에 따라 달라지고 불필요한 인건비가 발생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근린생활시설, 다세대, 단독주택은 시공업자가 도면을 바탕으로 공정마다 경제적이면서 하자 없는 자재와 시공법으로 올린다. 하지만 건축주가 오랜 시간 건축가와 협의를 거쳐 맞춤형으로 설계된 건물 시공은 조금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건축주라면 누구나 도면대로 하자 없이 정해진 기간에 건물을 완공해줄 시공사를 찾을 것이다. 시공사의 기본적인 덕목이지만 그런 곳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일반적으로 견적서 내용을 보면 시공사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는 운 좋게 한 군데를 선정할 수 있었다. 다행히 경험이 풍부한 현장 소장님을 만나 악조건 속에서도 큰 문제 없이 순조롭게 공사를 마무리했다.
집 짓는 일은 마음을 닦는 ‘수행’과 비슷하다. 완공의 길은 멀고 수많은 변수가 튀어나와 괴롭힌다. 민원, 이웃과의 분쟁, 소송 등으로 포기하고 싶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 게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모든 번뇌와 고충은 완공되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이제 아이들은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볕을 가득 안은 채 책을 읽는다. 마음껏 뛰어다니면서 활짝 웃는다. 더는 일과 육아에 조급한 마음으로 종종거리지 않게 됐다. 볕이 잘 들고, 바람도 잘 들어오는 집, 사람의 삶을 받아주는 자연이 뿌리내린 집, 그런 공간은 아늑한 기쁨을 선사한다.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평범한 사람을 위한 좋은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서울의 반은 아파트 단지이지만 나머지 반은 아니다. 동네에 잘 설계된 집이 들어서면 어떨까. 요즘 우리 집 주변은 공사가 한창이다. 이웃들은 재작년부터 집을 짓고 있다. 모양도 구조도 다 다른 집들이다. 나의 대단한 이웃들과 완성될 마을의 모습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글·사진 신경미 건축가·신아키텍츠 공동대표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김건희 일가 땅 쪽으로 계획 튼 고속도로 종점…특혜 의혹
- ‘대통령 부부 갤러리’ 된 충북도청…“액자 1개에 20만원 들여”
- ‘탄소 식민지’ 동남아에 떠넘긴 옷 공장…선진국의 세탁법
- “킬러·신유형 없고 준킬러도 안 늘려”…수능 난이도 수수께끼
- 국힘의 ‘바닷물 먹방’ 소감…“짭조름한데” “의원님도 한입”
- 상사 성희롱 탓 퇴사, 회사는 “위로금 500만원”…받을까요?
- 야광등처럼 빛나는 고리…제임스웹이 본 토성
- 사람답게 살려고 왔지만 난민 인정률 2%…차갑게 밀쳐낸다
- 실제 성소수자의 삶은 평범하다, 혐오세력의 망상이 문란할 뿐
- [단독] “언니 봐봐, 여기 진한 두 줄”…국내 첫 임신 동성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