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제2연평해전 21년…승전 속 남겨진 슬픔
[앵커]
약 20 여년 전인 2002년 6월, 대한민국은 월드컵 축구 열기로 무척이나 뜨거웠죠.
온 국민이 들떠 있던 6월 29일 저녁.. 한국과 터키의 3, 4 위전 경기를 앞둔 시점에,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 NLL을 넘어와 우리 해군 경비정을 기습 공격했습니다.
바로 제 2 연평해전인데요.
우리 군은 북한 경비정 2척을 격파하고 북한군 30여명에게 인명피해를 입히며 용감하게 싸워 격퇴시켰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장병들도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다쳤습니다.
이렇게 제2 연평해전이 벌어진 지 올해로 21 년이 됐는데요.
승리의 그날을 기억하면서도, 한편으론 바다에서 희생된 전사자들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유가족들을 최효은 리포터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21주기를 맞이한 제2연평해전 승전 기념식.
조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진 그날의 장병들을 기억하는 묵념과 헌화가 이어집니다.
1999년 6월, 서해 북방한계선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선제 사격으로 제1연평해전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군은 사망 장병 없이 9명이 다치고, 북한에선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2002년 6월, 월드컵에 들 뜬 시기를 틈타 보복에 나선 북한 경비정이 NLL을 다시 넘어 우리 함정을 기습 공격하면서 제2연평해전은 시작됐습니다.
[황의돈/당시 국방부 대변인/2002년 6월 : "남북군사당국자간 긴장완화를 위해 공동노력키로 합의한 사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30분간의 교전 끝에 승리를 거뒀지만,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전쟁기념관엔 그날의 참수리호 357호정 모형이 전시돼 있는데요.
그대로 재현한 258개의 총탄 흔적은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보여줍니다.
생전의 사진과 편지, 군복 인식표 등 NLL을 지키다가 스러져 간 전사자들의 유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 아버지였던 이들을 우리가 혹시라도 잊은 건 아니었는지.
북한의 도발에 맞서 죽음과 부상을 두려워 하지 않고 우리의 NLL을 지켜낸 해군들.
승전의 역사를 쓴 제2연평해전은 우리에게 국토 수호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날 차가운 바다에서 희생된 이들을 그리워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그리움은 더 짙어져만 갑니다.
매일 아침, 한 남성이 하늘을 향해 경례를 합니다.
[황은태/故황도현 중사 아버지 : "도현아 사랑해."]
제2연평해전 당시 포탄을 모두 쏘고도 방아쇠를 꼭 쥔 채 시신으로 발견된 황도현 중사의 아버지 황은태 씨입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아들을 기리는 작은 컨테이너 추모관에서 향을 피웁니다.
[황은태/故황도현 중사 아버지 : "엄마, 아버지가 올리는 향이다. 도현아."]
눈길이 닿는 곳곳의 물건마다 아들과 함께한 추억이 담겨있습니다.
[황은태/故황도현 중사 아버지 아버지 : "추울 때 입으라고 갖다준 옷이에요. 그런데 내가 못 입지 우리 아들 옷이니까."]
겨울에는 함께 눈 구경을 가고, 부모님 생신엔 꽃 선물을 전했던 다정하고 든든했던 아들.
[박공순/故황도현 중사 어머니 : "꽃다발을 한아름 사왔더라고요. 내가 집에 있는데. 그래서 너 웬 꽃다발 그랬더니 엄마 생일이잖아. 그걸 기억했더라고요."]
곧 다가오는 어머니의 생일, 이즈음이면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집니다.
[박공순/故황도현 중사 어머니 : "6월 22일날 왔다가 6월 24일날 (부대로) 갔어요. 내가 7월 15일이 생일인데 그때 오겠다고 가 가지고 마지막인 거예요."]
황 중사는 책과 시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이었다는데요.
교사를 꿈꾸며 대학 생활을 하다가 부사관으로 입대합니다.
6.25 전쟁 때 할아버지가 납북된 아픈 가족사가 있는 황 중사는, 교사의 꿈을 잠시 미루고 군 복무에 나섰다고 합니다.
[황은태/故황도현 중사 아버지 : "도현이 할아버지가 6.25 때 납치당했어요. 6.25 사변 때 형님하고. 그래서 군대 갔을 때도 전쟁이 일어나면 열심히 싸우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휴가를 마치고 나라의 바다를 지키려 집을 나서는 아들의 마지막 뒷모습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그리움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 되었습니다.
[황은태/故황도현 중사 아버지 : "매일 와서 향 피고 매일 정리하고 도현이는 아버지 가슴속에 살아있다 이러면서 생활을 한 거죠. 그런 세월이 한 20년 흘렀어요."]
틈틈이 아들이 쓴 글들을 꺼내 읽으며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는 아버지.
하지만, 전사자들에 대한 명예를 존중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 앞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고 합니다.
[황은태/故황도현 중사 아버지 : "그때 전사했을 땐 (군인연금법에) 전사라는 용어가 없었어요. 한참 후에 우리가 이의를 제기해서 전사 처리가 됐는데 우리가 전사 처리는 됐지만 법적으론 우리는 지나갔기 때문에 소급적용이 안되고..."]
지금도 아들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면 열 일 제치고 나선다는 노부모는, 나라를 지킨 아들의 숭고한 희생이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박공순/故황도현 중사 어머니 : "자기 목숨 아끼지 않고 진짜 우리 아들은 배운 그대로 한 것 같아요. 참 열심히 훌륭하게 잘 싸우다 갔다 우리를 위해서 싸웠다라는 걸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그날의 바다가 잠잠해진지 21년이 지났지만 연평해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과연 무엇일까요.
더워도, 비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같이 3시간 동안 1인 시위에 나선다는 한 여성.
제2연평해전 당시 마지막까지 조타실을 지킨 한상국 상사의 부인 김한나 씨입니다.
이렇게 거리에 나선 건, 전사 등 순직한 군인과 유족에게 그에 맞는 대우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데요.
한 상사는 순국 당시 중사였지만 2015년 추서 진급했습니다.
[김한나/故한상국 상사 부인 : "상사로 진급은 됐는데 국방부 연금이 중사로 나온다고 어느 분이 얘기를 해주셔서 알아보니까 진짜 중사로 나오더라고요. 저는 상식적으로 상사가 되니까 상사로 나올 줄 알았는데 중사로 나와 있어서 왜 이러나 했더니 법 때문에 그렇게 못 준다..."]
더 많은 연금을 원하는 게 아니라 한 상사를 비롯한 순국 장병들의 명예를 지켜달라고 합니다.
[김한나/故한상국 상사 부인 : "작은 거로는 저희 남편 명예. 넓게 가자면 제복을 입으신 분들을 위한 명예 회복."]
적잖은 시간이 흘러, 남편과의 기억마저 흐려지는 가운데 남편이 남긴 흔적의 하나인 연금마저 희미하게 처리하고 싶진 않다는데요.
[김한나/故한상국 상사 부인 : "책임감이 엄청 강하신 분. 그리고 재미없는 좀 아재 개그를 많이 했던 (남편입니다). 제가 사실은 신혼 초여서 또 계속 배타고 나가고 당직 서고 하니까 집에 있는 날이 없었어요. 별로 그리고 지금은 사실 너무 오래 돼서 제가 잘 기억이 안나요. 얼굴도 기억이 안나요 솔직히 말하면."]
관련 내용이 담긴 ‘군인사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김한나 씨는 이 법이 군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모든 이들을 위한 법으로 확대되기를 바랍니다.
[김한나/故한상국 상사 부인 : "군, 경찰, 소방관 이런 분들이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우리 시민들하고요. 이분들의 희생 정신 진짜로 그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해군은 제2연평해전에서 숨진 장병 6명의 이름을 딴 유도탄 고속함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복세현/중위 윤영하 함 전투 정보관 : "선배 전우들의 필승해군 정신을 이어받아, 더욱 훈련에 매진해 우리 바다를 굳건히 지켜나가겠습니다 필승."]
전국이 월드컵 경기로 뜨거웠던 그날.
그 차가운 바다에서 교전 끝에 산화한 여섯 용사들은 지금도 서해 바다를 지키고 있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은 현재 진행형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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