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예산 0원으로 만든 사람들 [視리즈]
행안부 2023년 예산안에
지역화폐 예산 넣지 않아
2022년엔 기재부가 0원 처리
지역화폐 효과 못마땅한 집권세력
학계서도 무용론과 긍정론 엇갈려
하지만 경제효과 나오는 건 분명해
# 지역화폐 정책은 정쟁의 대상입니다. 오는 9월 예산안 심사에서 여야는 각을 세우고 다툴 게 분명합니다. 2024년 예산안에 지역화폐 예산이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역화폐엔 '야권표' 정책이란 꼬리표가 붙어있습니다. 전임 정부와 민주당, 그리고 야당 대표가 정책 활성화를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역화폐는 왜곡되거나 호도된 측면이 적지 않습니다.
# 그럼 '야권표' 정책이란 꼬리표를 떼면 어떨까요? 평이 꽤 좋습니다. 자영업자와 지역 골목의 온기를 유지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상당수 지자체장이 지역화폐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하는 게 그 증거입니다. 여야를 가리지도 않습니다. 대통령실과 가깝다고 알려진 시장도 지역화폐 불씨를 되살리고 있습니다.
# 여당이 '무용론'을 펼쳐놨지만, 여당이 '불씨'를 다시 붙이고 있는 지역화폐. 이젠 지역화폐에 붙은 '정치적 꼬리표'를 떼고, 그 본질을 탐색해야 할 때입니다. 지역화폐가 지역 민생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니까요. 꼼꼼하게 살펴보면, 여당의 '무용론'을 뒤집을 만한 자료나 통계도 숱합니다. 더스쿠프가 視리즈 '지역화폐 나쁜 꼬리표'를 준비했습니다. 그 첫장을 엽니다.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정책을 바라보는 윤석열 정부의 시선은 꽤 삐딱합니다. 지난해 관련 예산을 기획재정부가 삭감해 논란이 됐었는데, 올해는 아예 소관부처가 예산을 날려버렸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자체 예산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는 최근 2024년 예산요구안을 기재부에 제출했습니다. '우리 부처에 돈이 이만큼 필요하니 예산을 달라'고 기재부에 요청하는 작업인데, 지역화폐 예산이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2018년 지역화폐에 국고를 지원하기 시작한 지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정계 사람들은 이를 "앞으론 국가 차원에서의 지역화폐 예산 지원은 없다"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간 정부는 지역화폐 관련 예산을 2020년 6689억원, 2021년 1조2522억원, 2022년 6052억원을 책정해왔습니다. 그럼 올해 예산은 기재부가, 내년 예산은 행안부가 뚝 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라곳간의 총책임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을 들어보죠. "지역화폐는 지자체 고유 사무로, 국가가 나라 세금으로 지원하는 건 맞지 않는다(2022년 9월 미디어 인터뷰)" "국고 보조 형태로 지역화폐를 지원하는 건 사업의 성격과 효과를 봤을 때 적절치 않다(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 "지역화폐는 지방 재정문제다. 지방에서 우선순위를 갖고 지역화폐를 발행하든지 스스로 의사 결정 할 문제다(2023년 2월 편집인협회 월례 포럼 초청 행사)."
쉽게 말해 지역화폐는 지자체 정책이니 나랏돈을 쓰기가 어렵다는 거죠. 중앙정부ㆍ지자체의 역할과 권한을 무 썰듯 나누긴 어렵다는 점에서 추경호 부총리의 설명이 합리적인지는 의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지역화폐 지원을 끊는 데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역화폐가 '야당의 전유물'이어서 싹을 자르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가령, 지역화폐엔 '이재명표 정책'이란 꼬리표가 붙어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냈던 시기에 적극 도입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맞붙었던 20대 대선 당시 지역화폐 확산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었습니다. 대통령실과 여당 사이에선 정적政敵의 대표 정책인데 뭐 하러 띄워 주냐는 여론이 나올 수 있는 거죠.
지역화폐가 문재인 정부의 치적으로 평가받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어느 정부든 마찬가지지만 윤석열 정부 역시 전임 정부의 경제 정책을 꼬집는 일이 잦습니다. 몇몇 야권 인사가 '지역화폐 정책에 지원하던 나랏돈을 끊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렇듯 지역화폐는 여야 정치 쟁점의 단골손님으로 떠올랐는데요. 지난해에도 기재부가 관련 예산을 삭감하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서민 예산을 건드렸다면서 비정한 복지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곤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기재부가 0원으로 책정했던 예산을 3525억원으로 부활시켰죠.
이 때문에 내년 살림살이를 정할 때도 치열한 전쟁이 예고됐습니다. 지난해에도 그랬듯 국회 예산 심사 과정에서 지역화폐 예산을 둘러싸고 여야 간 극심한 충돌이 예상됩니다. 야당은 "지역화폐 예산을 다시 내놓으라"고 할 게 분명하고, 정부와 여당은 "내줄 수 없다"고 맞설 테니까요.
이런 정쟁,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볼썽사나운 일입니다. 민생에 필요한 정책인데도 '○○표 정책'이란 꼬리표가 붙었단 이유로 확대하지 않거나 폐기한다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그래서 우린 '지역화폐가 예산을 제로로 만들 정도로 정부 차원에서 가치 없는 정책이었는지'를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 지역화폐가 뭐길래… = 지역화폐의 법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일정한 금액이나 물품 또는 용역의 수량을 기재해 증표를 발행ㆍ판매하고, 그 소지자가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가맹점에 이를 제시 또는 교부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사용함으로써 그 증표에 기재된 내용에 따라 상품권발행자등으로부터 물품 또는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유가증권."
지역화폐는 지자체가 발행하는 화폐이자 상품권입니다. 종류는 카드, 모바일, 지류(종이)형 등 여럿입니다. 결제 방식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 해당 지역의 경계선을 넘어가면 쓸 수 없습니다. 둘째,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선 사용할 수 없습니다. 셋째, 지자체 재량으로 10% 안팎의 할인율이나 캐시백을 적용합니다.
지역화폐가 활성화한 지역에 거주하지 않거나 써 본 적 없는 국민은 그 효용을 체감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럼에도 지역화폐는 몇 년 새 기하급수적으로 발행량을 늘려왔습니다. 일부 지자체가 시범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2018년엔 3700억원에 그쳤지만, 각 지자체에서 카드형 지역화폐를 본격 도입하기 시작한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에는 3조2000억원을 발행했고, 2020년 13조3000억원, 2021년 23조6000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지난해엔 사상 최고치인 25조3000억원을 발행했습니다. 그 어떤 결제수단도 보장할 수 없는 10% 안팎의 할인율과 캐시백 혜택이 원동력이었습니다.
이 기간 지역화폐의 경제효과를 따지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흥미로운 건 연구주체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랐다는 겁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20년 9월 보고서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과 이듬해 1월 추가 보완 보고서를 통해 '지역화폐 무용론'을 제기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지역화폐는 발행한 지자체 안에서만 쓸 수 있다. 그렇다고 국민이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결국 다른 지역의 매출 감소가 뒤따른다. 다른 지자체로 소비가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선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역화폐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각 지자체가 정해진 소비 총량을 두고 나눠 갖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런 이유로 지역화폐 발행을 통해 발생하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사실상 없고, 발행과 관리비용 등 손실만 남는다는 게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논리입니다. 추경호 부총리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재정연구원마저 경제 효과가 없다고 진단한 현금살포성 재정 중독사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경기연구원은 2021년 12월 발간한 보고서(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조세연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했습니다. "지역화폐 도입 이전의 지역간 소비 유ㆍ출입 구조가 균형이었다면 조세연의 주장은 타당할 수 있지만, 지역화폐 도입 이전에 소비유출이 심각했던 지역과 소비유입이 컸던 지역이 나눠져 있었다면 얘기가 다르다. 지역화폐 도입은 소비유출이 심각한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경기연구원은 경기도가 지역화폐를 본격 발행한 해인 2019년 4개 분기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지역화폐 결제액이 100만원 증가할 때 소상공인 매출은 145만원이 늘어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습니다.
서울로의 소비유출이 심각한 경기도의 경우 지역화폐를 도입했을 때 경기도의 소비 순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지역화폐를 국가경제의 효용성으로만 따질 게 아니라 서울 지역으로 돈이 집중되는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균형 정책'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애초에 지역화폐의 목적은 "지역 소상공인 매출 및 지역 내 소비 증대 유도로 지역경제 활성화 및 지역균형 발전 촉진"이고, 사업 내용은 "지역사랑상품권 할인판매를 통해 지역 내 자영업자ㆍ소상공인 매출 증가, 지역소비 진작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입니다.
다시 말해 지역화폐는 국가 전체적인 소비를 끌어올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대신 한국경제의 대표 고질병 중 하나인 부의 집중 현상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보자는 의도로 출범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세연의 지역화폐 비관론보단 경기연구원의 긍정론이 더 설득력을 얻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발행된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분석'의 결과도 비슷했습니다. 2020년 지역화폐의 경제효과가 발행비용을 제외해도 약 2조원에 달한다고 진단했죠.
여러 지자체 싱크탱크의 연구결과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전세종연구원은 "대전시의 지역화폐인 온통대전은 2020년 5월 발행한 직후 1년간 순소비 증대 9400억원, 소상공인 매출이전 1조200억원, 역내 소비전환 5400억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고 분석했습니다. 대구경북연구원은 1조원의 지역화폐를 발행할 경우 1조48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지역내 총생산이 1.47% 개선될 거라고 내다봤죠.
물론 이런 분석들 역시 이론적 검토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들 연구 대부분이 지역화폐 발행액이 많지 않았던 2019년이나 2020년의 지표를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유승경 수석연구위원은 "지역화폐 생태계가 일부 지자체에만 확산했다는 점에서 비용 효율성을 따져볼 수 있는 구체적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아직까진 비용과 편익을 비교해 어느 주장이 더 낫다고 평가할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숫자와 지표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지역화폐의 정책 효과,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방법은 없을까요. 이 이야기는 視리즈 두번째 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