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많이 가입 한 중국인, 보험금도 많이 타갔나? [주말엔]
약 4천만 국민이 가입한 것으로 추산되는 실손의료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으로 여겨집니다. 질병이나 상해로 치료를 받을 때 낸 의료비를 나중에 현금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보니 '실손보험 하나 들어두면 병원 갈 때 크게 돈 걱정할 일은 없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반면 보험회사들 입장에서는 '아픈 손가락'이기도 합니다. 실손의료보험은 손해율이 높아 '팔수록 손해 보는 보험'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외국인, 그 중에서도 중국인의 실손보험 가입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중국인들이 국민건강보험뿐 아니라 민간 보험 상품인 실손보험에도 대거 가입해 많은 돈을 타가며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사실인지 따져봤습니다.
■ 외국인 실손 가입자 10명 중 7명 '중국인'
외국인도 입국 후 3개월이 지나면 국내 보험 상품에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손보험에 들려면 반드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실손보험은 약관상 국민건강보험법을 적용받는 의료비에 대해 보장해주는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국적의 국민건강보험 가입자 수는 2021년 기준 약 66만 명에 달합니다. 최근엔 여기에 더해 민간 보험 상품인 실손의료보험에도 가입하는 추세입니다.
국내 대형보험사 3곳의 가입자 현황 자료를 보면 현재 외국인 실손보험 가입자는 20만 명 정도입니다. 이 가운데 중국인이 14만 명으로 전체의 70.7%를 차지합니다. 국내에서 실손보험에 가입한 외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중국인이라는 뜻입니다.
■ 낸 돈 보다 타간 돈이 많았다?
실손보험에 많이 가입한 중국인들이 실제 보험금도 많이 타갔을까요.
이걸 확인하려면 손해율을 봐야 합니다. 손해율이 100%를 넘으면 가입자가 낸 돈보다 보험금으로 타가는 돈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중국인 가입자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보험사마다 다르지만 110에서 125 사이에 머물렀습니다. 보험사들이 중국인 가입자로부터 돈을 버는 게 아니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집단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우선 전체 외국인 가입자와 비교해서는 위 그림처럼 중국인 손해율이 높았습니다.
내국인과 외국인을 모두 포함한 전체 실손보험 손해율과 비교하면 중국인 손해율이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실손보험 손해율은 지난해 기준 117.2%고, 중국인 가입자 손해율은 3사가 각각 123.1%, 124.1%, 110.7%니까요.
이처럼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는 않는데다, 전체 실손보험 계약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수준은 1%가 채 되지 않는 만큼 과도한 우려나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다만 실손보험 상품의 재정 건전성과 형평성을 위해 생각해볼 점은 있습니다.
가입 단계에서부터 지병이나 암 진단 등 사전 확인을 거치는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은 과거 현지에서의 병력 확인 등이 어렵다 보니 쉽게 가입할 수 있습니다.
실제 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례 가운데는 중국에서 암 진단을 받은 사실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한 뒤 국내 의료기관에서 재진단을 받아 보험금을 청구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보험 혜택' 부추기는 일부 병·의원도 문제
코로나 전과 비교해서는 훨씬 줄었지만,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인 의료 관광객 수는 다시 느는 추세라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시설이나 의료진 수준이 높으면서 보험에 들면 가격적으로 혜택도 볼 수 있다 보니 수요가 줄지 않는 것입니다.
일부 병원들이 무료 진료를 미끼로 대놓고 보험 가입을 권유하며 홍보를 하는 가운데 중국 SNS에서는 '한국 보험금 타 먹는 법' 같은 꼼수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소수라고 해도, 과잉 진료와 의료 쇼핑 등을 일삼으면서 그것을 '비법'으로 공유하는 집단이 있을 경우 손해율이 올라가며 전체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가 인상되는 악순환이 더 가중될 수 있습니다.
실제 보험사들은 해마다 수조 원대 적자를 보는 실손보험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12월 실손보험료를 평균 8.9% 인상했습니다. 양심적으로 꼭 필요한 치료를 받을 때 실손보험을 활용하는 환자들은 이런 오름폭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 '건보 적자'에서 촉발된 논란…"엄격한 심사는 필요"
'중국인 실손보험 가입' 논쟁에 불을 붙인 건 최근 국민건강보험 재정 상황입니다.
사실 외국인 가입으로 건강보험에 재정 누수가 생기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통계를 보면 전체적으로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매년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받아가는 돈보다 재정에 기여하는 게 많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중국인의 경우는 다릅니다. 규모가 과거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다가 최근 실손보험까지 중국인 가입자 수가 늘고 손해율이 높아지고 있다 보니 경계감이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라도 편법을 써서 쉽게 돈 타갈 수 있는 구조를 바꿔야 하는 건 분명합니다. 중국인이 우리나라 건강보험, 실손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인식이 퍼질 경우 그 피해는 잘못이 없는 다른 중국인이 보게 되는 면도 있습니다.
다만 이 논란이 '중국인'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게 대다수 보험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근본적으로 부정 수급의 여지가 많은 현행 실손보험 제도를 보완하는 동시에 과잉 진료와 보험 사기 등을 막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외국인, 내국인 할 것 없이 모든 가입자를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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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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