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대변인 된 한국…일본산 수산물 수입 방패 뚫렸다 [논썰]
[논썰][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안녕하세요. <논썰>의 이재성입니다. 지난번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다룬 방송 이후 한 달 만에 인사드립니다.
한 달 만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소금과 건어물 사재기와 품귀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여당은 마치 일본의 호위무사처럼 무리하게 오염수 방류를 감싸고 있습니다. 야당은 단식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다 보니 이렇게 극단적인 정쟁의 대상이 됐습니다.
일본의 푸들이 된 윤석열 정부와 여당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신뢰를 잃었습니다. 오염수가 안전하다며 우격다짐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오염수 방류를 지지하기로 방침을 정해놓고 IAEA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하니 자가당착에 빠졌습니다.
한국수산업경영인 여수시연합회 우성주 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정부가 처음부터 오염수 방류를 기정사실화했어요. 그래가지고 사전 대책이 없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버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런 것에 대해서 부족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오염수는 방류할 것이고 그것은 안전해. 그러니까 먹어. 무슨 의혹을 제기하면 다 괴담이야.” (<김어준의 뉴스공장 겸손은힘들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절차와 과정을 생략한 채 밀어붙이니까 불신이 더 커집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말을 세게 합니다. “WHO(세계보건기구)의 음용 기준은 1만Bq(베크렐)이다. 완전히 과학적으로 처리가 된 것이고 기준에 맞는다면 마시겠다.” (한덕수 국무총리 6월12일 국회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
이에 대한 어민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한덕수 총리님은 국정을 책임지신 분이 정확한 검증 절차를 가지고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오염수를 마시겠다, 이런 식으로 국민을 선동하시다니.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말씀을 할 수 있는지, 저는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우성주 회장, <김어준의 뉴스공장 겸손은힘들다>)
화가 난 어민들은 제주와 완도 등에서 해상 시위를 벌였습니다. 어민들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오염수 방류를 찬성하는 정부와 여당은 어민들을 돕겠다며 횟집 먹방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수산물 기피 책임을 야당에 돌립니다. “수산업 종사자들의 생계가 파탄의 위기에 몰리고 국민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는데도 더불어민주당과 괴담 선동꾼들의 공포마케팅은 멈춤이 없다. 민주당은 더 이상 괴담 선동꾼들과 야합해 공포 마케팅에 골몰해서는 안 된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국민이 수산물 소비를 꺼리고 어민들이 업종전환까지 고민하는 게 모두 야당의 선동 때문일까요? 뭔가 본말이 뒤바뀐 것 같지 않나요? 정부가 기다려보자던 IAEA 최종 검토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해양 방류만이 유일한 정답인 것처럼 서둘러 결론을 내버린 정부와 여당의 믿지 못할 행태가 더 중요한 이유 아닐까요?
‘답정너’ 일본과 IAEA
해양 방류로 답을 정해놓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온 것은 일본과 국제원자력기구 IAEA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IAEA는 폭발 사고 4년 만인 2015년부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권고했습니다. 2018년 11월13일에는 IAEA 전문가 그룹이 다섯가지의 오염수 방출 안을 제시하면서, 일본 정부에 빨리 결정하라고 채근합니다. 일본 정부는 2020년 2월10일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 소위원회 보고서를 포함한 오염수 처리방안에 대해 IAEA에 검토를 요청합니다. 비용이 적게 드는 차례로 해양방출(34억엔), 수증기방출(349억엔), 수소방출(1000억엔), 지하매설(1624억엔), 지층주입(3979억엔)입니다.
지층주입은 오염수를 2500m 땅속에 주입하는 것이고, 지하매설은 시멘트와 섞어 땅밑에 묻는 겁니다. 수소방출은 전기분해를 거쳐 기화시키는 방안입니다. IAEA는 이 세 가지 방안이 규제나 기술, 시간적으로 문제가 많으므로, 해양방출과 수증기방출이 가장 현실적인 옵션이라고 답합니다. 수증기 방출은 오염수를 끓여서 수증기로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방안 두 가지를 추천한 겁니다.
하지만 이 다섯 가지 방안만 있는 게 아닙니다. 태평양도서국포럼 과학자패널 소속인 페렝 달노키베레스 미국 미들베리국제대학원 교수(핵공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삼중수소가 콘크리트에 흡수되면 측정이 거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의 접촉이 거의 없는 교량과 같은 곳에 사용하는 것을 제안한다.” (<한겨레> 2023년 1월26일치) 오염수를 시멘트, 모래와 함께 모르타르(회반죽) 고체화해서 콘크리트 탱크 안에 부어 영구 처분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1950년대 서배너강에 지은 핵시설이 택한 방법입니다. 아니면 가장 단순하게 지금 후쿠시마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저장 탱크를 늘려 보관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방안을 마다하고, 굳이 해양방출을 하겠다는 겁니다. 가장 싸고, 또 흔적이 남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경제대국 일본의 선택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기적이고 치사하지 않습니까? 일본의 입헌민주당 등 야당도 해양방류 이외의 방법을 찾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여당은 마치 해양방출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호도합니다. 대체 어느 나라 정부와 여당입니까?
검증이 아니라 ‘족집게 컨설팅’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7월4일 IAEA 사무총장 라파엘 그로시를 만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 오염수 해양방출에 대한 IAEA 최종보고서를 전달받을 전망이라고 합니다. 일본 언론은 구체적인 방류 시점을 기시다 총리가 결단하게 될 것이라며, 마치 고독하고 위대한 영웅적 결단이라도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와 IAEA는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해양방류를 향해 달려왔다는 사실을 말이죠. IAEA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발표한 후쿠시마 오염수 보고서를 집중 해부해보니, 검증이 아니라 ‘족집게 컨설팅’이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96594.html)
일본 정부가 말하지 않는 것
현재까지 후쿠시마 저장 탱크에 쌓여있는 오염수는 137만톤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 137만톤을 30년에 걸쳐서 정화하고 희석해서 바다에 버리겠다고 합니다. 이 137만톤은 2011년부터 지금까지 12년 동안 발생한 오염수입니다. 오염수는 지금도 매일 발생하고 있습니다. 137만톤의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고 있는 동안, 최소한 그 두배 이상의 오염수가 또 나옵니다. 그것도 일본의 계획대로 30년 뒤에 폐로가 완료될 때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번 세기 안에 폐로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렇게 추가 발생하는 오염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오염수를 일본 내에 두지 않으려는 진짜 이유가 이것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오염수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알프스 장치로 삼중수소를 제외한 거의 모든 핵종이 걸러진다고 밝혔지만, 탄소14도 걸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지요. 그런데 나머지 핵종도 한 번에 걸러지는 게 아닙니다. “2020년 일본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용지에 있는 오염수 저장탱크의 30% 정도만 방사성 핵종이 법정 허용치 이하로 유지되고 있을 뿐, 나머지 70%의 탱크에는 많게는 법적 허용치의 5∼100배 정도 높은 방사성 핵종이 발견된 적도 있었습니다.”(송진호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
정화 장치를 거쳤는데도 스트론튬90이 기준치의 1만4천배까지 검출됐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알프스는 수시로 고장납니다. 스트론튬90은 ‘죽음의 재’로 불리는 독성물질로 동식물이 섭취할 경우 배출되지 않고 쌓이면서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칼슘과 화학적 성질이 비슷해서 뼈에 축적되는데, 골수암이나 백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실체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진단은 “모른다”입니다. 일본 정부도 그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일본이 올해 2월 내놓은 ‘처리수 환경영향평가보고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이용해 1차 처리를 한 뒤에도 오염수에 어떠한 핵종이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대신 2차 처리를 한 뒤 해양 방출 전에 30개 핵종에 대해서만 검사를 할 뿐입니다. 원래 64개이던 것을 30개로 줄여서 검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핵 연료봉에 노출된 오염수에 어떤 핵종이 들어 있는지 전모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일본도 잘 모르는 걸 한국 정부와 여당은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걸까요?
‘세슘 범벅’ 우럭, 그물로 막는다?
지난 5월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의 항만 내에서 잡힌 우럭(조피볼락)에서 무려 1만8000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안전 기준치의 180배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도쿄전력의 대책은 뭘까요? 오염된 물고기가 항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여러 겹으로 그물을 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염수는 그물을 통과하죠. 물고기만 막으면 세슘도 막아지나요?
치명적 독성을 가진 세슘-137에 노출되면 암에 걸릴 위험성이 크고 유전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4월엔 같은 곳에서 쥐노래미가 잡혔는데, 1200베크렐의 세슘이 검출된 적이 있습니다.
세슘이나 스트론튬은 무거운 성질이라 바다에서도 바닥에 쌓이거나 심층수에 섞입니다. 일본 주장대로 기준치 이하로 걸러서 내보낸다고 하더라도 해저에 쌓일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표층수만을 주목하고 있는데, 표층수와 심층수는 해류 이동 경로가 다르다고 합니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일본에 심층수와 해저토를 따로 조사하자고 요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반대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오염수 허용하면 수산물 수입으로 이어질 것”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수산물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입니다. 세계적인 수산대국 노르웨이나 일본보다도 많이 먹습니다. 회로 먹고 구워 먹고 조려서 먹고 찌개도 끓입니다. 그래서 더 불안해하는 겁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2년 뒤인 2013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산 식품의 ‘방사능 괴담’ 유포자를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후쿠시마현을 비롯한 인근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합니다. 정부가 알아서 수입을 금지한 게 아니라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한 겁니다. 그러자 일본이 세계무역기구 WTO에 제소합니다. 1심에선 한국이 졌습니다. 당시 미국이 WTO에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한국의 주장은 실패해야 한다(Korea’s claim must fail)”는 문구가 들어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일본 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은 2019년 기적적으로 2심에서 이깁니다. 1심에선 한국이 후쿠시마산 ‘식품’의 위험성을 문제 삼았으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해서 패소했는데, 2심에선 식품이 나온 ‘장소’의 위험성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후쿠시마 지역이 오염돼서 위험하기 때문에 후쿠시마산 식품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고, 국산 식품에도 이런 문제가 생기면 동일한 대처를 했을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해서 일본 수산물에 대한 차별 우려를 해소한 겁니다.
후쿠시마라는 ‘장소’의 안전성 여부가 수산물 수입 금지 논리의 핵심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앞바다에 오염수를 방류해도 괜찮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 후쿠시마라는 ‘장소’는 안전한 곳이 되고, 후쿠시마 수산물도 안전한 식품이 되는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오염수 방류 허용과 수산물 수입이 별개라고 주장하지만, 전혀 별개가 아닌 이유입니다. 국제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출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후쿠시마 바다는 방사능 위험에서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일본의 보고서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후쿠시마 바다의 방사능 위험성을 근거로 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와 양립할 수 없다. 오염수 방출은 동의하지만 수산물 수입금지는 하지 않겠다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에 떼를 쓰듯이, 좀 봐 달라며, 수산물 수입금지를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06210300065) 오염수 방류를 허용하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논리가 무너진다는 얘깁니다.
정부는 이제라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입장을 바꿔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정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를 최소 6개월 보류할 것을 일본에 요구하라고 정부여당에 제안했습니다. 한·일 정부 상설협의체 구축과 환경 영향 평가 시행, 한·일 전문가 그룹 설치 및 다섯가지 오염수 처리 방안 공동 재검토, 국제사회 객관적 검증 요청, 한·일 양국 자국민 설득과 보류 기간 종료 시 즉각 국제해양법재판소 잠정 조치 청구 및 결과 수용 등 일곱가지 대일 요구 사항을 제시했습니다.
정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꾸는 게 난처할 겁니다. 그럼 야당과 여론의 반발과 압박을 핑계 삼으면 됩니다. 잘못 끼운 단추를 풀어 사태를 해결할 골든 타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획·출연 이재성 논설위원 san@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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