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과 시장에서…치열하게 살아간 조선의 여성노동자
‘한양 여성, 문밖을 나서다’
일자리를 얻는 방법과 일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동시에 고민하는 사회에서 살기 때문일까. 유물을 통해 고되게 일한 옛사람들의 흔적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따끔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의 기획전 ‘한양 여성, 문밖을 나서다’(10월3일까지)는 한양 곳곳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 여성들을 소개하는 전시다.
전시실 초입에 놓인 가마 한 대는 게임 속 세계관처럼 당시 조선이 어떤 사회였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마꾼과 옷깃도 스치지 않도록, 귀한 집 부인들은 지붕 달린 가마를 타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오던 곳. 그럼 가마를 탈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매일 일을 하러 집을 나선다는 것은 어떤 일이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든다면 이제 아침마다 뚜벅뚜벅 걸어 일터로 향했을 여성들의 모습을 둘러볼 차례다.
이 전시는 여성들이 활동했던 공간을 집 안, 도성 안, 도성 밖의 세 구역으로 나눴다. 도성의 가장 중심인 궁궐 가운데에는 왕비, 궐 안팎에는 궁녀, 도성 안에는 상인, 성문 밖에는 도성 출입이 금지된 무녀가 있었다. 신분에 따라 주어지는 공간이 달랐던 시대이기에 공간도 신분과 맞물려 안에서 밖으로 펼쳐진다.
궁중 의녀들, 춤·노래 배워 기녀로 동원
평소에는 화려함과 정교함에 감탄하며 지나치던 유물들도, 이 전시에서는 그것을 만든 이들의 수고와 정성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궁녀들을 소개한 2부 전시실 한편에는 소담스러운 상 2개가 놓여 있다. 1795년 봄,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의 무덤으로 가던 길에 받은 아침 수라상을 재현한 것이다. 한식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상에 오른 그릇들과 의궤에 실린 메뉴를 견주며 옛 궁중요리의 맛을 짐작해 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수라간 궁녀들의 솜씨는 팥물로 색을 낸 쌀밥, 소 내장으로 만든 양만두 같은 호화로운 수라상 메뉴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상에 오른 간장 종류만 세 가지(간장, 초간장, 따뜻하게 데운 진간장)다. 여행지에서까지 그 섬세하고 극진한 밥상을 차려낸 이들의 수고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박물관 전시에서 다른 시대의 유물을 마주할 때 관람객들은 두 가지 관점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첫째는 옛날 사람들의 시점에 깊숙이 동화돼 보는 것이고, 둘째는 평행선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오늘날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기획자의 관점을 바로 드러낸 전시도 있고, 나란히 펼쳐놓되 살그머니 한쪽을 권해오는 것 같은 전시도 있다. 이 전시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관람객에게 선택을 맡긴다.
의녀는 어린 관비 중 똑똑한 이들을 선발해 가르치는 방식으로 양성했다. 업무는 진맥을 하는 맥의녀, 침을 놓는 침의녀, 약을 짓는 약의녀로 나뉘었다. 조선시대에 의과시험 교재였던 <동인경>에서는 진도를 떼지 못하면 급료도 받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처방집, 약저울, 약절구 등의 도구들은 의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을 의료 현장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내의원과 혜민서의 의녀들은 연말이면 평가 시험을 치러 등급을 가리고 결과에 따라 상이나 벌을 받기도 했고 여성과 관련된 범죄 수사에 동원되기도 하는 전문가들이었다. 그러나 궁중 행사가 있을 때는 기녀로 동원되기도 했으므로 본업과는 무관한 춤과 노래를 배워야 했다.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풍속도 병풍에도 악사와 기녀들 사이에 가리마를 쓴 의녀의 모습이 등장한다.
전문성을 갖춘 직업인으로 성장해도 관비 출신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전시에서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람객에게는 술자리에서 술병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는 의녀의 모습이 그리 무감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이들의 직업이 대개 신분에 따라 차출과 선발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권은 곧 거부권인데 그들은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열심히 노력해도 원하는 삶을 고를 수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는 고민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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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사장님들 ‘세금 민원’ 정면 돌파
그래서 그 시대에 여성들이 정식으로 점포를 내고 물건을 팔던 ‘여인전’(女人廛)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양의 시전에는 여성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있었다. 종로 시전이면 한양을 대표하는 시장이었지만, 정부와 관청을 주 고객으로 삼는 가게들도 장사가 녹록지 않았던 모양이다. 수수료 부담도 컸던데다, 그나마도 대금을 못 받거나 외상값이 밀리는가 하면, 세금 대신 각종 물건이나 행사 일손을 바쳐야 하기도 했다.
결국 여인전 상인들은 이를 견디다 못해 조정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 부담이 얼마나 심했던지, 과일가게 한 곳이 바친 물품이나 ‘봉사’(노역으로 하거나 돈으로 대신하는 일)가 무려 16가지라는 호소에 정조 임금은 “너무 가엾다”며 시정을 지시하기도 했다. 여인전은 큰 자본을 굴리는 다른 시전 상인들과는 처지가 다른 영세업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리한 대우를 참지 않고 정면승부하고, 난전과 행상이 판을 치던 시장 한복판에서 영업권을 지키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대찬 모습이 전시에 나온 유물과 해설 속에 생생하게 전해진다.
다만 이 여성 상인들이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었는지, 어떤 방법으로 자본을 모으고 가게를 운영했는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이런 민원 자료 외에는 가게의 위치 정도만 기록으로 전한다. <을미년분료발기>를 보면, 아지·윤임이·은성·희복 등 궁녀들의 이름과 월급 명세가 나온다. 먼 옛날 직장인들에게 부쩍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자료다. 하지만 치열하게 살았을 조선시대 여성 자영업자의 기록은 거의 없어 아쉽다.
전시에서는 일하는 한양 여성을 가리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일하며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탱하고 움직이는 역할을 했다’고 소개한다. 문들을 드나들며 저마다의 공간을 지켜낸 이들을 보고 나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은 어떠한가도 자문하게 된다. 지금 수도 서울 역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이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실 문을 지나면 무더위가 차오르는 서울의 여름이다.
문화재 칼럼니스트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재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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