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역차별하던 ‘대입 소수인종 우대’ 위헌… 美, 반으로 갈라져 논쟁

서필웅 2023. 7. 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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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주도
“인종 아닌 경험에 따라 대우”
낙태권에 이어 美 사회 분열

미국 연방대법원이 29일(현지시간)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AA)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60여년간 미 대학 입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보수 진영은 판결을 환영했지만 진보 측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 지난해 ‘낙태 금지’ 판결 뒤 이어지고 있는 대법원 보수화에 따른 미국 사회 분열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NYT) 등 보도에 따르면 미 대법원은 이날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 ‘AA 때문에 백인과 아시아계 학생이 차별받았다’며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하버드대를 상대로 제기한 동일 헌법소원 역시 위헌 결정했다.
격렬한 찬반시위 미국 대법원의 어퍼머티브 액션(소수 인종 우대 정책) 위헌 결정을 찬성하는 시위대와 반대하는 시위대가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회의사당 앞에서 둘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9명의 대법관 중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 6명이 똘똘 뭉쳐 2건을 각각 6대 3, 6대 2로 위헌 결정했다. 하버드 이사진이었던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진보 성향)은 하버드대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더 이상 입시가 인종이라는 정치적 요소에 좌우돼선 안 된다는 생각이 확산한 것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수 의견에서 “너무 오랫동안 대학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기술이나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 왔다”면서 “우리 헌정사는 그런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은 인종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A는 미국 내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하던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연방정부와 계약한 업체의 직원 선발 과정에서 인종과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린 데서 비롯돼 후임 린든 B 존슨 대통령 때 대학의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연방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관. AP연합뉴스
이후 미국의 각 인종이 인구 비율과 얼추 비슷하게 대학에 진학하는 수준까지 성과를 냈다. 미 고등교육 전문지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의 자료에 따르면 2021년 미국 대학 재학생 인종 비율은 백인이 51.9%로 가장 많고,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 22.3%, 흑인 12.7%, 아시아계 7.8%가 뒤를 이었다. 이는 한 해 전 미국 인종 비율인 백인 57.8%, 히스패닉 18.7%, 흑인 12.4%, 아시아계 6%와 비슷하다.
그사이 역차별 논란이 커졌다. 미국인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백인의 우수 학생이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소수인종 경쟁자에게 대입에서 밀려나는 상황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높은 교육열로 학업 성취도가 높은 아시아계 학생 역시 소수인종이면서도 입학 사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이런 탓에 위헌 논란도 꾸준히 제기됐는데 대법원은 1978년 인종을 입학 사정 과정에서 여러 요인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판단했고, 2003년과 2016년 진행된 재판 결과도 같았다.
미국 연방대법원. AFP연합뉴스
그러나 1996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주민 투표 등을 통해 대학 입시에서 AA를 금지하는 주가 9개나 생겨났고, 결국 이런 분위기 속 헌법 해석이 뒤집혔다.

대법원의 보수화도 이번 판단에 일정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임신 15주 이후 임신 중단을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여성의 보편적인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뒤집은 바 있다. 이번 AA 위헌 결정으로 인해 인종적 다양성을 고려해 시행 중인 미국의 다른 정책도 도전을 받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법원 판단에 미국 사회는 반으로 갈라져 논쟁을 벌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민주당)은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이번 판결이) 수십 년의 판례와 중대한 진보를 되돌리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이 결정이 최종 결정이 되도록 둘 수 없다”면서 “미국은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이상을 가진 나라다. 대법원이 판결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상징하는 것을 바꿀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미 교육부는 7월 중 전국 교육자를 상대로 대학 교육에서 다양성과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한 뒤 9월에 관련 전략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소수인종 우대입학 정책인 이른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2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강력히 반대한다"며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DC=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완전히 능력에 기반을 둔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게 옳은 길”이라고 대법원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날 위헌 결정에 찬성한 대법관 6명 중 3명이 트럼프 행정부 때 임명됐다. 역차별 대상으로 꼽히던 미국 내 한인 사회도 당장 입시에서 다소 유리해지는 측면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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