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해 봐야 할 수 있고 빨리 시작해야 쉽다”
정치컨설턴트 윤태곤 인터뷰
“당위 아닌 욕망에서 육아에 적극 참여
육아에 능숙해야 함께하는 시간 즐거워
‘부녀지간’에 관한 서사 만들고 싶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이 쓴 ‘괜찮은 아빠이고 싶어서’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순간 깨달음이 왔다.
아이가 숙제를 안 했거나 뭔가 잘못했을 때 엄마가 더 호되게 호통을 치는데, 아이는 왜 상대적으로 작게 혼내는 아빠보다 엄마와 더 금세 관계가 회복될까. 평소 가졌던 의문에 실마리를 찾은 듯해서였다.
그렇다. 아이는 엄마의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던 셈이다. 아빠에 대한 지지는 그만큼 높지도 견고하지도 못한 것이었고.
출간된지 일주일여 된 따끈따끈한 책을 들고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의 더모아 사무실에서 윤 실장을 만났다.
◆정치컨설턴트가 쓴 육아 이야기
‘괜찮은 아빠이고 싶어서’는 윤 실장이 마흔 둘에 얻은 늦둥이 딸 이진이가 올해 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까지 탄생, 작명,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 선택, 딸의 또래집단 내에서 발생한 갈등, 젠더 이슈 등 주요 국면에서 겪었던 내적 고민과 깨달음을 담은 책이다. 복잡한 정치판을 간명하게 풀이하듯 육아 과정에서 어려운 상황의 본질과 실체를 나름의 시각으로 짚어낸다.
어린 아이를 둔 40대 아빠의 가장 큰 고민, 일과 육아의 균형점을 어떻게 잡았는지 먼저 물었다.
아이는 아빠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아빠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지만, 40대는 직장에서의 맡은 업무와 책임도 커지는 시기라 일·가정의 양립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는 책에서 대가족, 지역사회 같은 사회안전망이 사라진 지금을 “(돈 벌) 시간을 들여 (애 키울) 시간을 사는 악순환의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으니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는 게 속 편한” 세상이 됐다고 했다.
이진이 엄마는 프리랜서 작가다. 그러니까 그는 맞벌이와 홑벌이의 중간쯤 되는, 말하자면 1.5벌이인 상황이다.
집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있으니, 오히려 아빠는 더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그게 우리 세대가 봐온 아버지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윤 실장은 육아를 ‘내 일’이라고 여기고 적극적·능동적으로 나선 계기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아닌 자신의 ‘욕망’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우리 딸을 절대로 엄마만의 자식으로 만들지 않겠다, 내가 많이 돌봐서 나도 좋아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한 거죠.”
“(육아)기술이 엄마보다 현저히 떨어지면 아이가 아빠와 있는 시간을 불편해하지 않겠어요? 아내는 구박할 테고. 그러면 ‘에이, 나가서 돈이나 벌어오련다’ 하게 되기 십상이죠.”
결국 “육아는 해 봐야 할 수 있고 빨리 시작해야 쉽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아이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소셜미디어에서 보는 윤 실장의 모습은 천상 ‘딸 바보’다. 그는 “부녀지간에 관한 서사를 조금이나마 만들어나간다는 황당한 생각도 좀 갖고 있다”고 한다.
인류 역사를 보면 부모와 자녀 간 4가지 조합 중에서 가장 별 볼 일 없는 관계가 ‘부녀지간’이라고 그는 평가했다. 가계 계승이나 출산 관계 중 그 무엇으로도 연결되지 않은 유일한 관계인 아빠와 딸. 대를 이어 인도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 부녀는 너무 거창하고, 그밖에는 심청 아버지 심학규 같은 반면교사만 생각날 뿐 특별히 본받고 싶은 롤 모델이 떠오르지 않더란다.
“아빠와 딸 사이가 서사와 맥락이 제일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여심 탐구도 열심히 하고 있죠. 어머니께 미안하지만 아내 마음을 알려고 훨씬 더 노력했고, 이제는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딸 마음을 알려고 더 애를 씁니다.”
딸에 대해서는 “2∼3년 정도를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한다. 마라톤처럼 42.195㎞를 한 번에 뛰는 인생도 있지만, 2㎞씩 모여서 끝내 42.195㎞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한번에 5㎞씩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길 수도 있고.
지금 당장은 “아이가 뭘 잘 하고, 뭘 못 하는지가 가장 궁금하다”고 말한다. 그는 “그게 공부든 인성이든 (나중에 아이가 커서) 부모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작아지기 전까지 뭔가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싶다”며 “그러려면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존중해야 부모 말발이 먹힌다는 게 윤 실장의 생각이다. 책에 나오는 지지율 이론이다.
◆“나쁜 아빠가 아닐 것, 항상 회의할 것, 공급자 마인드를 버릴 것”
그렇다면 책 제목으로 달린 ‘괜찮은 아빠’란 뭘까. 왜 ‘좋은 아빠’라고 하지 않았을까. “좋은 아빠라는 건 저마다 다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반면 ‘나쁜 아빠’의 상은 명확하다. 윤 실장은 “아빠의 삶이라는 것이 좋은 아빠의 상을 만들어서 추구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현실적으로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기준은 괜찮은 아빠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괜찮은 아빠’의 첫 번째 조건은 ‘나쁜 아빠가 아닐 것’이다. 간명하다.
두 번째는 ‘계속 회의할 것’이다. 그는 “내가 이렇게 하는 게 과연 맞는가 지속적으로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조건은 ‘공급자 마인드를 버릴 것’. 수용자인 아이 위주가 돼야지 아빠 입장에서만 바라보다 보면 그 다음은 뻔하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는 가족들만 볼 수 있는 소셜미디어 계정에 틈틈이 기록해둔 것을 바탕으로 ‘괜찮은 아빠이고 싶어서’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윤 실장은 만 서른 다섯에 결혼해서 마흔 둘에 아빠가 됐다. 아무래도 책을 쓰면서 자신 같은 늦둥이 아빠, 혹은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아빠들을 가장 많이 염두에 뒀다고 한다.
그는 “겪어 보니 요즘은 늦둥이 아빠들이 많고 해서 별로 불편하거나 거리낌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성숙해진 후에 아빠가 돼 더 좋은 점도 많다고 생각해요. 아이 덕에 더 젊게 살게 되고 건강도 더 신경쓰게 되는 장점도 있고요.”
물론 나이가 전혀 의식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딸아이가 대학에 갈 때쯤엔 본인이 몇 살인지 계산해보다가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유치원 운동회 때 자연스럽게 젊어 보이려고 사흘 전에 맞춰 염색을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라”, “겪어보니 꽤 좋더라”고 한다. 어느날 소파에 기대어 앉아 책을 보는데, 책 한 권을 들고 와 품 안을 파고드는 딸의 모습에 행복한 눈물을 왈칵 쏟았던 경험을 소개하면서.
윤 실장은 “엄마아빠들과 이 책을 가지고 많이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마침 7월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13일 저녁에는 서울도서관 초청으로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강연을, 토요일인 15일에는 서울 신촌 인근 ‘스튜디오 반전’에서 북 토크를 한다.
그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관해 알게 된 것과,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한 것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딸의 ‘좋은 아빠’란 어떤 모습일지, 특히 딸 가진 아빠들의 얘기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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