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비명·조국 신당…민주당·호남으로 집중되는 까닭은
[주간경향] “과거에 갇힌 절망의 정치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국민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진영의 울타리를 허물고 ‘한국의희망’과 함께해주십시오.”
6월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의희망’ 창당 발기인대회에서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양향자 무소속 의원(56)의 말이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기적은 과연 가능할까, 양향자가 가능할까, 대권후보가 없는데 가능할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 불신을 버리는 순간 불가능은 가능으로 바뀝니다. 우리의 믿음 하나하나가 모이면 이내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역사를 바꿀 것입니다.”
이날 기자회견은 꽤 주목을 끌었다. 주최 측이 준비한 기자석은 행사 시작 전부터 다 찼고, 수많은 매체 기자들은 바닥에 앉아 현장송고를 해야 했다. ‘야권발 신당’의 첫 물꼬를 튼 행사였기 때문일까. 정말 ‘양향자 신당’이 향후 정계 개편의 회오리를 불러일으킬 신호탄이 되는 걸까.
한국의희망이 이날까지 모은 발기인 수는 1023명. 발기인의 성별은 여성이 44%이며 남성이 56%다. 연령별로 따지면 20대 9%, 30대 21%, 40대 28%로, 20대에서 40대까지의 비중이 58%다. 대표 발기인으로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양향자 의원과 함께 이날 ‘이제는, 건너자!’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한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와 인연을 지닌 인사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최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의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제3지대 신당 첫 포문 연 ‘양향자 신당’
역시 발기인 중 한명으로 이날 사회를 맡은 김슬아 MBN 아나운서는 “아마도 국내정당 중에서 가장 젊은 정당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상은 다르다. 기자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청년정당을 표방하는 세력들의 합종연횡을 취재한 적이 있다. 청년단일 정당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깨졌고, 대표하던 인물의 상당수는 현 민주당과 국민의힘에 흡수됐다. 하지만 준연동형 비례제 위성정당에 참여해 살아남은 정당들이 있다.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이다. 창당 당시 시대전환은 대다수 참가자가 30·40대 청년들이었다.
이날 양향자 의원은 “세계 최초의 블록체인 플랫폼 정당을 론칭하겠다”고 밝혔다. 이 주장 역시 엄밀히 말해 사실이 아니다. 기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전인 2021년 3월, 페이스북 기반으로 활동하던 ‘윤사모’라는 단체가 주축이 된 ‘다함께 자유당’이라는 정당을 취재한 적이 있다.
지난 3월 27일 인천에서 열렸던 이 당의 중앙당 창당발기인 대회에 모인 ‘윤석열 지지자’들 다수는 장년층이었다. 당시 이들이 새 정당운영시스템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블록체인 시스템’이었다. 그후 여의도 주변에서 “중앙집중이 아닌 블록체인의 분산원장기술을 선진적인 정당시스템으로 채택하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신당 창당을 주장하는 모두가 한 번쯤 거론한 시스템이다.
양 의원은 이날 발기인대회에서 “국내외 많은 정치인이 ‘블록체인 정당’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라면서 “오늘 유튜브를 보시면 (우리가 만든) 블록체인 플랫폼이 올라와 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초 블록체인 플랫폼 정당?
그러나 유튜브에서 양 의원이 밝힌 ‘한국의희망과 관련한 블록체인 플랫폼’은 찾을 수 없었다.
“블록체인 플랫폼은 어떻게 하면 이 불투명하고 불합리한 정치와 정부 시스템을 고칠지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한 결과다. 웹3.0이 나오는 순간부터 저는 그 고민을 했다. 수많은 블록체인 기업과 이야기해보고 찾아봤는데 다행히도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한 기업이 의지를 표명했다. 그래서 저희와 함께 개발을 마쳤다. 정당뿐 아니라 시민단체나 종교단체도 시스템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오픈소스로 공개할 예정이다.”
유튜브나 한국의희망 홈페이지(www.hopeofkorea.com)를 통해 발기인대회 당일 확인 가능할 것이라고 밝힌 블록체인 플랫폼은 기사를 마감하는 6월 29일 현재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홈페이지에는 피드백 공간도 따로 없다.
“양 의원이 주장한 중도정당은 우리도 해보려고 했던 건데….”
이날 발기인대회에 현역의원으로 유일하게 참석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말이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시대전환이 2020년 3월 창당할 때 내건 비전도 “한국 최초의 플랫폼 정당을 추구하겠다”였다. 조 의원은 양 의원이 주장한 블록체인 정당 주장을 두고 기자에게 이렇게 논평했다.
“…역시 더 먼저 해보려고 했던 거다. 실제 해봤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다. 블록체인에 대한 고민 수준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2016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영입한 양 의원은 그해 치러진 총선에서 광주광역시 서구을에 출마했다가 당시 국민의당 공동대표를 맡은 천정배 전 의원에 밀려 낙선했다. 박근혜 탄핵 후 같은 지역에서 치러진 리턴매치에서 당선돼 초선이 됐다. 지역구사무실 성추행 논란과 관련 당 윤리위원회에서 출당논의가 이뤄지자 자진 탈당했다.
현 민주당 당규는 징계가 임박해 피하고자 탈당할 경우 5년간 복당이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에서 공천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는 게 정가의 관측이다(양 의원은 이와 관련한 주간경향 등의 질문에 “정치에 입문한 지난 8년간 거의 모든 주말에 지역 활동을 해왔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역을 바꾼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라며 “이제는 그러나 무소속 신분이 아니라 당원 신분이기 때문에 출마지역 등은 당과 당원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제3지대 신당 창당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의희망 발기인대회가 열리던 날인 6월 26일,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추진하는 신당(현 성찰과 모색 포럼) 측은 ‘편의점주 봉달호’라는 필명으로 언론칼럼 기고, 저서를 내놓던 곽대중씨를 영입인사 1호 대변인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기득권 거대 양당 바깥의 제3신당 ‘지분’을 두고 물밑에서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기자와 통화한 곽 대변인은 “6월 28일 대변인 임명 발표는 언론 기고 칼럼 중단 등 개인 사정 때문에 내가 요청한 것”이라며 “오히려 원래 이날 예정됐던 광주 포럼 행사를 7월 초로 미루는 등 오해를 피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논의는 봇물이 터지듯 하고 있지만 제3지대 신당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시사평론가나 정치권 주변 인사들의 반응이 대체로 회의적이다.
“과거 3당 추진세력의 중심에는 정주영이나 안철수와 같은 알려진 인물이 있었다. 젊은 애들에게 금태섭·양향자를 아느냐고 물어봐라. 아는 사람 거의 없을 것이다. 기자 중에서도 정치부 기자들이나 알지 당장 경제부 출입처 기자에게 물어봐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김성순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박신용철 더 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반이재명·반윤석열을 앞세우고 있는 기존정당·기성정당에 대한 불만은 분명 실체가 있고 제3지대라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신당이 성공하려면 국민의 신망·전망이 맞아떨어지고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지금 신당 추진세력들이 국민 공감대를 얻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특이한 대목이 있다. 현재 신당 논의가 여권인 국민의힘 쪽에서는 잠잠하다는 점이다.
박신용철 위원은 “지금 정치권에서는 몇 년 전에 검찰에서 불기소된 것도 다 뒤져 재조사하고 난리인데 집권당인 국민의힘에서 누가 감히 윤석열에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라며 “이미 윤석열이 김기현을 당대표로 밀어 ‘허수아비 정당’을 만들어놨다. 예컨대 공관위원장을 자기 사람들을 넣어 세팅하면 그만인데 뭐하러 당을 깨겠는가”라고 말했다.
‘조국 없는 조국신당’론이 나오는 배경
신당 논의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바깥의 3지대 신당만 거론되는 것이 아니다.
여의도에서는 귀국 후 DJ 묘소 참배로 정치활동을 재개한 이낙연 전 총리 중심의 ‘비명신당’ 가능성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는 전제 아래 민주당 바깥의 ‘조국 신당’과 관련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조국 전 장관의 출마 여부와 관련해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지난 6월 16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조국 전 장관의) 워딩을 잘 보면 민주당을 선택하지 않고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며 “조국 전 장관의 지역구는 광주다. 두고 보라”고 단언했다.
역시 흥미로운 것은 제3지대 신당을 포함, 논의에 참여하는 인물들이나 타깃으로 삼는 지역이 모두 호남이나 광주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 전 장관의 내년 총선 출마를 처음으로 거론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신평 변호사였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측에서는 “조국신당설은 2019년 이후 재미를 봤던 조국 이슈를 다시 끌어들이려는 윤석열 정부와 현 여권 측이 내놓는 고도의 여론 호도 전략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설사 민주당이 아닌 외곽에서 무소속이나 신당 형태로 출마하더라도 전체적인 선거 구도에서는 민주당 측에 불리하게 작동하리라는 전망과 무관하지 않다.
조 전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조 전 장관의 출마 여부와 상관없이 윤석열 대통령을 필두로 한 ‘검찰 쿠데타 세력’이 조 전 장관 가족에 가한 멸문지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민주당 외곽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이른바 ‘조국 없는 조국신당론’이다. 이는 현재의 준연동형 비례제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기존 여야 거대정당의 위성정당 금지 규정을 새로 도입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된다면 위성정당이 아닌 바깥에서 검찰개혁 등을 목표로 한 비례정당을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과 맞닿는다.
2020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바깥의 열린민주당이 바로 이 케이스였다. 이 ‘열린민주당 시즌2’ 논의의 중심엔 손혜원 전 의원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정치권 주변의 ‘조국신당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전남 목포 지역구를 두고 경쟁 관계에 있는 손 전 의원을 염두에 둔 신경전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왜 신당 논의가 민주당 주변, 호남을 두고 나오고 있느냐의 문제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민주당의 핵심주류가 최근에 교체됐다는 사실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엄 소장에 따르면 전통적인 민주당의 핵심지지층은 호남과 586 그리고 영남개혁세력으로 이뤄져 왔는데, 그 ‘핵심세력’이 지난 대선을 경유하면서 ‘개딸’로 대표되는 ‘40대를 중심으로 한 진보성향 지지층’으로 대체돼버렸다(주간경향 1534호,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엄경영 소장 대담 ‘이대남 마음 얻어야 내년 총선 승리한다’ 기사 참조). 엄 소장은 “비명신당론 등 민주당 분당이 아니라 제3지대 신당을 주장하는 양향자·금태섭도 지금은 기존 정치권이 아닌 새로운 인사들을 뽑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중에 선거운동을 하려면 아무래도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들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어느 쪽이든 신당추진 세력은 내년 공천배제의 형태로 민주당 주류에서 이탈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전망이다.
국민의힘 쪽은 왜 조용할까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신당을 만들기도 쉽지 않겠지만 만드는 것과 성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이상적으로는 진영으로 갈라진 정치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여야에서 다 참여하면 좋겠지만 안철수를 비롯해 유승민·하태경·이준석 등 국민의힘 비주류는 바른정당 후 제3정당에서 고생하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상태다. 집 나오면 고생, 분당하면 어렵다는 걸 최근까지 절절하게 느꼈던 사람들인데 뭐 하러 다시 뛰쳐나오겠는가.”
그는 내년 총선은 강한 양당제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3지대 신당으로서는 어느 때보다 힘든 선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전 자체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불리한 여건을 뚫고 나갈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퀘스천마크가 붙는다. 기존에 거대 양당을 지지했다 철회한 사람들의 혐오는 존재하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을 당기려면 제3의 구심력이 필요하다. 3당이 성공하려면 네거티브 에너지, 반사이익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젠다와 인물·세력 재편을 해내야만 의미가 있다.”
한국의희망 블록체인 플랫폼 공개 지연과 관련, 양향자 의원실 측에서는 “현재 한국의희망 측에서 언론 질의에 대응할 담당자가 따로 없다”고 밝혔다. 지난 6월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양 준비위원장은 당 산하에 정책단, 언론단, 법률단, 홍보단, 조직단이 구성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원실 관계자는 “블록체인 플랫폼은 내주 초(7월 3일) 양 의원이 직접 다시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진석 교수는 6월 2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철수 의원과의 관계에 대해 “당시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은 것은 임시적인 것이었고,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를 완성했으니 (그와) 같이 해야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희망 발기인 중에 자신과 인연을 맺은 인사들이 많이 눈에 띈다는 지적에 “한국 정치가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치가 없는 지경까지 추락했다고 보기 때문에 나와 같이 공부했던 젊은 사람들을 포함해 최소한 인간으로서 기본소양은 배운 바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며 “개인적으로 출마를 하거나, 비례를 받아 현실정치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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