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의 최전선에 선 한국, 돌아보니 미·일이 없다?
[주간경향] 한국 외교가 두 가지 상반된 상황을 동시에 맞았다. 하나는 ‘중국’에서 날아온 ‘미국’ 소식이다. 지난 6월 19일(현지시간) 미국 대외정책을 담당하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블링컨 장관은 시진핑 중국 주석을 포함해 중국 외교 담당자들과 연쇄 회담을 했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유사한 소식도 전해졌다. 이번에는 ‘일본’에서 ‘북한’ 소식이 날아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6월 21일 북·중·러와 외교 관계를 강화할 것임을 밝혔다. 특히 북한과 정상회담 추진, 중국 방문 검토 등을 언급했다. 미·중 경쟁이 격화돼 ‘진영외교만이 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두 기대에 어긋나는 상황들이다.
다른 하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추진 중인 한·미·일 협력에 관한 소식이다. 지난 6월 27일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 추가했다. 한국은 이미 지난 4월,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 복귀시킨 바 있다. 이로써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반발해 ‘먼저’ 시작한 수출 갈등이 4년여 만에 일단락됐다. 이와 함께 한·미·일 3국 정상이 오는 8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란 전망이 일본 아사히 신문을 통해 제기됐다. 구체적 시점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한·미 정부 관계자 모두 ‘정상회담 추진’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진영외교만이 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긍정 평가할 수 있는 상황들이다.
국제사회에서 동시에 나타난 상황은 마치 모순처럼 보인다. 미·일이 협력과 대결을 동시에 추진하는 양상이다. 그런데 이를 외교정책으로 국한해서 보면 상황은 의외로 단순하다. 한·미·일은 모두 상호협력을 강조한다. 한국은 북한,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뚜렷한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 미·일은 이들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는 중이다. 결국 한·미·일 상호협력이 북한, 중국과의 외교를 가로막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해당 관점에서 다시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보면 진짜 ‘이상한 점’이 보인다. 마치 한국만 북·중·러와의 대결 최전선에 서 있는 듯한 모습이다.
노회한 외교관들 사이에 선 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과거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해당 시기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질서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언론에 기고할 정도로 외교 전문가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는 부통령으로서 당시 미국의 대외정책인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추진에 기여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주의에서 탈피해 국제사회에서 ‘소통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대외전략은 이른바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 추구다. 민주·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역대 미국 정부가 채택한 세계경영 전략이다. 이는 ‘미국의 자유주의는 표적으로 삼은 나라들의 민족주의, 종교를 이길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이에 따라 동맹, 가치 공유 등이 보조수단이 된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보면, 전략과 실행 사이에 미묘한 온도차가 있음이 발견된다. 가장 먼저 차이가 드러난 것은 ‘아프간 철수’ 때다. 애초 목표는 미군 철수로 인한 중동 지역의 힘의 공백을 동맹을 규합해 보완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아프간은 무장단체 탈레반이 완전히 장악했다. 미군이 빠져나간 중동 지역에서 활약한 것도 미국의 동맹이 아니었다. 중국은 지난 3월, 대립 관계였던 이란과 사우디를 중재해 이들의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의 책임을 물어 사우디를 ‘국제 왕따’로 만들겠다던 발언을 뒤집었다. 뒤늦게 사우디-이스라엘의 대립 관계를 중재하겠다며 발 벗고 나섰다. 미국이 다시 중동으로 돌아간 것이다.
가치에 얽매이지 않는 듯한 움직임은 중동 지역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은 당장의 성과가 아닌 향후 미·중 관계의 변화 측면을 주목하게 만든다. 중국 외교라인의 1, 2인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난 블링컨 국무장관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도 약 35분 정도 만났다. 양국 모두 이번 회동의 결과를 “미·중 양국의 격렬한 경쟁이 충돌로 비화하는 것은 ‘공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6월 20일(현지시간) ABC <굿모닝 아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몇 주, 몇 달 동안 더 많은 (미국과 중국 간) 고위급 접촉, 고위급 관여가 이뤄질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정상 대 정상의 만남을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 향후 몇 달 안에 그것을 보리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입으로는 ‘가치’를 말하며 철저히 ‘현실’에 기반해 행동하는 것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아베 내각 당시 약 4년 7개월간 외무상을 지냈다. 그의 대표 공적은 역대 한국 정부가 단 한 번도 부인하지 못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다. 외교 문제에 자신감을 보이는 기시다 내각에서 외무상은 하야시 요시마사가 맡고 있다. 하야시 외무상의 이력 중에는 2017년 12월부터 ‘일·중우호의원연맹’ 회장을 맡은 사실이 있다. 쉽게 말해 일본 정치권에서는 ‘친중파’로 분류되는 인사라는 의미다. 하야시 외무상은 지난 4월, 일본 외무상 자격으로 방중해 중국 외교라인을 만났다. 그로부터 두 달여 후, 기시다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조기 정상회담 추진, 중국 방문 검토를 전격 발표했다.
외교에 특화된 미·일 지도자가 보여주는 행동의 요체는 ‘대응’의 중요성이다. 미리 정해진 답을 고르는 것이 아닌 국면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한다. 설사 이 선택이 과거의 발언을 뒤집는 것일지언정 주저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일관되게 국익을 쫓고 있는 셈이다. 반면 한국은 미리 답을 정해두고 이를 되뇌는 듯한 모양새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과 대응을 보면 이는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미·일이 중국, 북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할 때 한국에서도 중국 관련 이슈가 있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 6월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현재 한·중 관계가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솔직히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며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를 베팅하는 이들이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까지 덧붙였다.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을 두고 논란이 확산하자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13일 진행된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 대사의 태도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이나 우호 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싱 대사의 언사가) 1880년대 국정을 농단한 위안스카이를 떠올리게 한다는 사람이 많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역시 “중국 측이 이 문제를 숙고해 보고 우리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하루 뒤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측의 관련 입장 표명과 함께 일부 매체가 싱 대사 개인을 겨냥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심지어 인신공격성 보도를 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싱하이밍 대사는 교체되지 않았다. 주한 중국대사관 측은 그가 정상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입장만 언론을 통해 밝혔다. 한국이 이번 사태를 중국과의 꼬인 관계를 푸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은 것도 아니다. 결국 설전만 남았다.
싱하이밍 대사가 ‘내정간섭’에 가까운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은 그의 자질 문제다. 이와 별개로 해당 사건이 보여준 한국 외교의 현실이 있다. 하나는 미·일이 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중국과의 대화 채널을 열기 위해 움직이는 반면, 한국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적한 문제조차 중국 측에 관철시킬 채널이 없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중국 대사들의 전랑외교(늑대외교)에 대응하는 전략적 단순함이다. 싱하이밍 대사 발언과 유사한 사례가 지난 4월 일본에서도 있었다. 당시 우장하오 주일 중국 대사는 “일본이 중국의 분열을 노리는 전차에 탑승하면 일본 민중은 불길 속으로 끌려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싱하이밍 대사보다 수위가 높은 발언으로도 보인다. 이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직접 나서지 않았다. 급이 맞지 않은 대사와의 설전 대신 두 달여 만에 방중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섰음에도 앙금만 늘어난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은 미·일 대외정책의 종속변수인가
대결과 공존 발언을 동시에 발산하는 미·일과 달리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한·미·일 삼각협력 강화에만 집중하고 있다. 뚜렷한 대북, 대중국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은 미국과 일본의 정책 변화에 따라 한국의 정책이 결정되는 구조적 모순을 낳는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반응국가’ 문제다.
원래 반응국가 가설은 1980년대 일본의 대외경제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켄트 콜더(Kent E. Calder·1948~ )가 제기한 이론이다. 국가에 내재된 힘에 걸맞은 대외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한다. 이를 구성하는 내용 중 하나가 소극적 외교노선의 문제다. 일본은 이른바 ‘요시다 독트린’에 따라 방위는 미국에 맡기고, 경제성장에만 집중하는 전략을 유지했다. 이러한 반응국가의 문제는 콜더가 지적한 것처럼 “적극적 외교노선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심지어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상황에서도 소극적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1980년대 일본과 현재의 한국의 상황이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이 미·일과 동조화하면서 적어도 미·일이 대화 분위기로 전환을 시도 중인 북·중·러와의 관계에서는 ‘반응국가’가 되고 있다. 한국 외교정책은 동북아에서 북·중·러와의 대결구도가 심화할수록 긍정적 평가를 받는 구조다. 반면 미·일이 이들과의 협력을 진전시켜 나갈 경우 사실상 외교적 옵션이 없다. 한국이 미·일 대외정책의 종속변수가 된다. 바꿔 말하면 미·일이 중국과 관계변화를 시작하면 한발 늦게 따라가는 후행 국가라는 뜻이다. 국제질서에 대한 전략을 미·일과의 동조화에만 맞추다 보니, 이들 국가 외의 관계에서는 국제질서를 논의하는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전부 경제협력만 강조한다. 전형적인 ‘반응국가’의 패턴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반응국가’가 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에 대한 해답도 이미 나와 있다. 한 국가의 외교정책이 반응국가 수준에 머문다면, 이는 보통 국내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결과다. 한국에 적용하면 ‘종북’, ‘친중’ 논란이다.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이 여야의 정쟁거리로 넘어가는 과정은 왜 윤석열 정부의 대외전략에 미국, 일본을 제외하면 뚜렷한 지향점이 없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전 국립외교원장)는 “혐중을 하면 국익 측면에서는 손해볼 요소가 많지만, 국내 정치 측면에서는 관계가 나빠질수록 이득인 상황”이라며 “싱하이밍 대사 문제도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결과, 한국이 외교적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반중 정서에 올라탄 윤석열 정부가 국내적으로 손해본 것은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북·중·러와의 대결국면에서는 ‘적극국가’, 화해국면에서는 ‘반응국가’로 이중화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외교정책이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린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 문제에는 한·미와 일본의 이해관계가 완벽히 일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일본은 국내정치적으로 ‘납북자 문제’가 걸려 있다. 북한이 ‘북·일 국교 정상화’를 전략적으로 이용한다면 관계가 진척될 수 있다. 이 경우 한반도 문제의 해결이 일본의 중재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중국과의 관계다. 대결 전략에만 특화된 상황은 한국만 전쟁터에 홀로 남겨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이 무기를 들고 최전방으로 나간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후방에서 만나 악수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원칙은 지켜나가되, 북·중·러 3국과의 외교적 선택지를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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