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약탈, 방화’ 프랑스 인종차별반대 시위 폭동으로 격화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프랑스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점점 격화되면서 폭동으로 번지고 있다. 쇼핑몰이 약탈당하고 있고, 방화와 절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건물과 차량이 훼손되고 있다. 총기 약탈도 있었다. 이 시위는 파리 서부 외곽 낭테르에서 경찰이 교통검문을 피해 달아나려던 알제리계 10대 운전자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나엘이라는 이름만 알려진 17세 소년을 숨지게 한 경찰관뿐만 아니라 프랑스 경찰의 인종차별적 관행을 싸잡아 비판하는 시위는 낭테르를 넘어 마르세유, 리옹, 포, 툴루즈, 릴 등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다. 니엘의 모친은 현지 방송인 프랑스5 인터뷰에서 "나는 경찰 전체가 아닌, 내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경찰관 단 한 명만 탓한다"고 말했다. 이 경찰은 38세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가 무기를 불법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고 살인 혐의로 구속하고 조사 중이다. 나엘 군을 살해한 경찰관은 고의가 아니었다며, 고인과 유족에게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고 그의 변호인이 BFM 방송과 인터뷰에서 전했다.
알제리계 출신으로 알려진 이 소년은 지난 27일 오전 교통 법규 위반으로 차를 멈춰 세운 경찰을 피해 달아나려다 경찰관이 쏜 총에 맞고 숨졌다. 이날 부터 나흘 연속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내무부는 30일(현지시간) 경찰이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 사이 전국에서 875명을 체포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군경찰 249명이 다쳤다.
남부 포에서는 시위대가 경찰서를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북부 릴에서는 초등학교와 구청이 불에 탔으며, 다른 수많은 도시에서도 밤새 폭죽이 터졌다. 길거리에 세워놓은 자동차 등에서도 방화가 이어졌다.
프랑스 제2 도시 마르세유 총기 매장에서는 폭도가 총기를 절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탄약을 가져가지는 않았으며, 현재 경찰이 매장에 배치돼 경비를 서고 있다.
파리 샤틀레레알에 있는 나이키 매장, 동부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애플스토어 매장 등이 밤사이 약탈을 당했다. 전국에 있는 대형 식료품 가게 카지노에서도 물건을 도난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경찰이 일찌감치 쇼핑몰을 폐쇄했으나 젊은 폭도들이 우회로로 들어가 애플 스토어를 포함한 여러 매장을 털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목격자들은 "그들은 매장 유리창을 깨고 들락거리며 전시된 상품을 훔쳤다"고 말했다.
파리 북부 외곽 오베르빌리에에 있는 버스 차고지도 피해를 당했다. 버스 십여대가 불에 타면서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로 인해 파리를 관통하는 대중교통 운영에 일부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북부 루앙에서는 전날 밤 폭도들의 공격을 받은 슈퍼마켓 건물에서, 젊은 남성이 추락해 숨졌다고 BFM 방송이 현지 검찰을 인용해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는 전날 파리에 5000명 등 전국에 4만명의 경찰과 군경찰을 배치해 시위에 대응했지만 건물 492채가 훼손되고 자동차 2000 대가 불에 탔다. 화재는 총 3880건 발생했다.
일드프랑스 광역주는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파리를 포함한 수도권을 오가는 버스와 트램 운행을 중단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지방 당국에 협조를 구했다.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총리실은 시위가 격화한 지역에 잡혀있는 대형 행사를 취소할 예정이며, 스타드드프랑스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가수 밀렌 파르메르의 콘서트, 엉기엉레방 재즈 축제 등이 취소됐다.
마르세유에서는 시위를 금지했다. 또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에는 문을 일찍 닫을 것을 권했다. 오후 7시부터는 대중교통을 운행하지 않기로 했다.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위해 전날부터 벨기에 브뤼셀에 머물렀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긴급 대책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공식 일정이 마무리 되기 전에 파리로 돌아왔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방송으로 중계한 국무회의 발언에서 전날 밤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 중 3분의 1은 나이가 어린 미성년자였다며 부모들이 자녀들을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청소년들이 틱톡, 스냅챗 등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오는 영상을 보고 폭력을 모방하는 일을 막기 위해 민감한 영상을 삭제하도록 관련 업체들과 협력해나가겠다고 했다.
우파 공화당과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을 중심으로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은 현재 단계에서는 이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을 규탄하는 시위가 기약 없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자 프랑스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관들은 자국민에 안전 유의를 당부했고, 유엔은 폭력 사태를 우려하며 법 집행 과정에서 인종차별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홈페이지에서 "특히 밤늦은 시간에 상업·공공 시설 기물 파손 및 차량 방화 등 심각한 수준의 폭력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며 심야 시간에 외출을 삼가는 등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관도 트위터에 파리와 그 주변 지역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며 인파가 몰리는 곳에서는 상황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으니 피할 것을 조언하는 글을 올렸다.
영국 외무부는 프랑스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 "프랑스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시위의 장소와 시간을 예측할 수 없다"며 "폭동이 일어나는 장소를 피할 수 있도록 언론을 모니터링하라"고 권고했다.
프랑스와 인접한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이 프랑스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스위스 교통 당국은 "국경을 넘어가는 대중교통 이용객이나 여행객은 실시간 상황을 확인해달라"고 당부했다.
제네바에서는 프랑스 국경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인구가 10만7000명에 이른다.
라비마 샴다사니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대변인은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프랑스 경찰에 의해 북아프리카계 17세 소년이 숨진 사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샴다사니 대변인은 프랑스 사법당국이 경찰관을 조사 중이라는 점을 거론하면서 "지금은 국가가 법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종주의와 차별이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야 할 때"라고 했다.
c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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