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 마세라티 그레칼레] 아름다운 선·폭발적인 힘…거리의 시선이 ‘삼지창’에 꽂혔다
아날로그에 첨단을 섞은 실내, 디스플레이만 총 4개
소너스 파베르 사운드 일품…21개 스피커 1285W
330마력 모데나 1억3160만원…연비 10㎞/ℓ 수준
[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강력한 지중해의 북동풍’이란 뜻을 가진 ‘그레칼레’는 마세라티가 선보인 새로운 SUV(스포츠유틸리티차)이자 판매량 반전을 위한 승부수다. ‘영 앤 리치(Young&Rich)’를 겨냥한 고급스러운 마감과 브랜드의 정체성을 이어받은 폭발적인 성능이 매력이다. 자체 설계한 마일드 하이브리드 엔진에서는 마세라티가 지향하는 전동화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완성도 높은 사운드 시스템과 자연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프리미엄 브랜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요소다.
마세라티 SUV ‘르반떼’의 동생이지만, 실물은 작지 않다. 그레칼레의 전장과 전폭은 각각 4850㎜, 1980㎜다. 르반떼보다 전장은 짧지만, 전폭은 약간 길다. 전고(그레칼레 1670㎜, 르반떼 1637㎜) 역시 비슷하다. 차급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음 세대 르반떼는 더 거대해질 가능성이 크다.
하차감은 ‘시각적 매력’의 다른 표현이다. 마세라티 특유의 캐릭터라인을 유지하면서 독창적인 비율을 완성했다. 앞으로 돌출된 그릴과 긴 보닛이 돋보이는 옆모습은 전통적인 SUV 형태보다 크로스오버에 가깝다. 특히 면과 면이 이어지는 부분은 각진 곳이 없다. 장인이 오랫동안 깎은 듯한 디자인은 하나의 조각 같다. 아름답고 우아하다.
‘아날로그’ 또는 ‘클래식’이란 수식어가 어울렸던 형제 모델과 달리 그레칼레의 실내 인테리어는 현대적이고 세련미가 넘친다. 초침의 물리적인 작동이 인상적이었던 중앙 시계가 디지털로 바뀌었고, ‘레이싱 DNA’를 적용한 운전석 클러스터는 화려해졌다. 전자식 도어 레버와 12.3인치 중앙 디스플레이, 제어 기능이 포함된 8.8 컴포트 패널로 편의성도 개선됐다. 촘촘한 대시보드 스티칭과 사이트 볼스터를 포함한 시트의 완성도도 칭찬할 만하다.
이름도 낯선 이탈리아 사운드 전문 업체 소너스 파베르(Sonus Faber)가 설계한 사운드 시스템도 인상적이다. 저음 또는 고음에 집중됐던 일반적인 구성과 달리 중음이 묵직하고 두텁다. 스피커 수는 21개, 출력은 최대 1285W다. 트위터와 중음역대 스피커의 거리를 정밀하게 맞춰 극장 돌비 애트모스 같은 단단하고 입체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밀폐성이 소리의 완성도를 높인다.
운전대는 고급 가죽과 D컷으로 마무리했다. 두께가 두껍지 않아 손이 작은 한국 여성에게도 알맞다. 시동 버튼부터 드라이브 모드, 스포츠 서스펜션 기능까지 담았다.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버튼 구성은 국산차와 유사하다. 다만 수동 주행의 재미를 책임지는 패들 시프트의 구분감이 흐릿한 것이 옥의 티였다. 트렁크 용량은 535ℓ로, 폴딩 시 성인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정도다.
시승차인 ‘그레칼레 모데나’의 파워트레인은 1995cc 4기통 엔진과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결합한 형태다. 최고출력은 330마력, 최대토크는 45.9㎏.m이다. 엔진의 포효는 작아졌지만, 스포츠 모드는 역동적이다. 제원상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은 5.3초다. 몸을 뒤로 잡아끄는 폭발적인 가속력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서스펜션이 속도감을 둔감하게 만든다. GT·컴포트 모드는 완전 반대의 성향을 보인다. 낮은 RPM과 빠른 변속으로 효율에 집중했다. 모드를 바꿀 때마다 중앙 디스플레이에 보이는 차의 성향이 재밌다.
승차감은 단단하지만, 높낮이 조절로 한국 지형에 어울리게 설정할 수 있다. 전자 제어 댐퍼와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된 전륜은 더블 위시본, 후륜은 멀티링크를 적용했다. 서스펜션 높이는 다섯 단계다. 일반적으로 중간에 맞춰져 있지만, 시속 100㎞를 넘으면 높이를 반 단계 낮춘다.
운전대에 있는 서스펜션 버튼을 누르면 곡률이 심한 코너링과 고속 주행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브레이크는 전륜 350x28㎜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후륜 콘티넨탈 플로팅 캘리퍼를 택했다. 브렘보 고정식 캘리퍼는 상위 모델인 트로페오에 장착된다. 달리는 것에 진심인 마세라티의 성향이 엿보인다.
공차 중량은 1970㎏이다. 움직임이 경쾌하다. 시야를 배제한다면 세단에 타고 있는 느낌이다. 약 350㎞를 달린 후 측정한 연비는 ℓ당 10.3㎞였다. 제원상 복합연비(9.8㎞/ℓ)보다 높은 수치다.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연비에 특화한 것은 아니지만, 고속도로 주행 연비는 생각보다 높았다. 도심에서 엔진을 수시로 잠재우는 스탑&고 시스템도 연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차선 유지 기능이 빠진 건 아쉽다. 중앙 디스플레이는 운전자 시야보다 낮아 시선을 종종 분산시킨다. HUD(헤드업디스플레이)에 목적지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려면 ‘스텔란티스 컴패니언 앱’을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앱의 연결성은 여전히 부족하다. 현재 위치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을 화면에 띄우고, 목적지 검색도 불편하다. 폰 프로젝션을 무선으로 지원한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그레칼레 모데나’의 가격은 1억3160만원이다. 출력이 조금 낮고, 전자 제어 댐퍼를 선택사양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그레칼레 GT’는 9760만원이다. 괴물 같은 530마력의 트윈터보 V6 엔진을 품은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1억6760만원이다. 기존 마세라티 라인업을 생각한다면 문턱은 낮아졌다. ‘삼지창’의 감성은 기대 이상이고, 조립 완성도는 훌륭하다. 마세라티에서 기대할 수 있는 주행질감도 만족스럽다. 가격표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레칼레를 후보군 최상단에 배치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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