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조폭 #99모임…인스타 올린 MZ조폭들

퍼거슨, 이번에도 의문의 1승?

"SNS는 인생의 낭비다"

영국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남긴 말입니다. (정확히는 트위터) 이후 이 말은 주로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이 SNS로 사고(?)를 쳤을 때 번번이 소환되며 SNS의 단점, 역효과를 부각시키는 격언처럼 사용됐습니다. "퍼거슨, 이번에도 의문의 1승"이라는 말과 함께요. 이번에는 한국 조폭이 퍼거슨의 '의문의 1승' 제물이 된 모양샙니다. 이른바 'MZ세대' 조폭들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몇 장 때문입니다.

MZ 조폭들, 계파 초월 #또래모임 #전국구별들

그 발단은 검찰이 공개한 사진 몇 장입니다. 조폭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폭력조직원들의 인스타그램 등 SNS나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사진을 공개한 겁니다. 인스타그램 사진을 캡처한 것으로 보이는 한 사진에는 양복을 입은 건장한 남성들이 유흥주점으로 추정되는 업소에서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사진 아래는 "전국구 별들"이라는 설명과 함께 좋아요가 82개 달렸습니다.

다른 사진에는 역시 유흥주점으로 보이는 곳에서 남성 여러 명이 웃통을 벗고 문신을 드러낸 채 함께 찍은 모습이 담겼습니다. 이 사진 역시 조직원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온 사진입니다. 또 다른 사진에선 역시 웃통을 벗고 문신을 드러낸 남성들이 선술집에서 환호하는 모습이 찍혔습니다. 남성들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한 명은 춤추는 동작을 취하고 있습니다. 흥이 많이 오른 모습입니다.

역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온 것으로 보이는 한 사진에는 아예 폭력조직 이름이 나란히 적혔습니다. 역시 유흥업소에서 찍은 단체사진 위에 '국제마피아, 대신동, 한실, 골보, 남양주, 택사스, 상계, 수노아' 라고 적어 놓은 겁니다. 검찰 관계자는 "모두 현존하는 폭력조직원들이 함께 어울리며 자신들의 조직명을 적어 놓은 사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검찰이 공개한 동영상에는 이들이 자신의 소속(00파)을 외치며 어울리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즐거운추억 #한때…검찰 수사망에 딱 걸렸다

이 모임은 이른바 '또래모임'으로 불리는 조폭들의 정기 회합으로 확인됐다는 게 검찰 설명입니다. 전국 주요 폭력조직원들이 계파를 초월하여 온오프라인 상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조직의 세(勢)를 과시하며 연대를 강화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검찰 관계자는 "요즘은 조폭들이 예전처럼 계파별로 정면승부를 하면 둘 다 조직이 와해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소위 전쟁이라는 건 잘 하지 않는다. 대신 불법 성매매 같은 음성적인 사업에 여럿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서로 연대하면서 윈윈(Win-Win)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직은 다르지만, 함께 공생하는 관계라는 겁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런 조폭 또래모임은 '99모임', '02모임'처럼 나이에 따라 형성됐습니다. 가장 막내는 이제 막 미성년자 딱지를 뗀 '04모임'이었다고 합니다. 이 밖에 '대기조'라는 이름으로 언급된 것도 있었는데 상당수가 고등학생이고 유사시에 대기했다가 전쟁이 나거나 하면 징발되는 예비군 같은 개념이라는 게 검찰 설명입니다. 이것도 아무나 껴주는 건 아니었나 봅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 또래모임이 나름대로 "각 지역 1등 조직들만 모인 모임"이라면서 각자 "나름대로 지역에서 1등이라는 프라이드를 갖고 어울린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갓 스물이 넘거나 20대 초중반, MZ 조폭들이 올린 사진은 그들 입장에선 '#즐거운한때' 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사진에는 그들만의 '흥'과 '에너지'가 넘쳐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SNS에 남긴 사진은 결국 검찰 수사과정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또래 모임같은 조폭의 새로운 행태를 아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호텔 난동' 수사하다 포착…"조폭 수사 불씨"

검찰이 처음부터 이 '또래모임'을 수사한 건 아닙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부장검사 신준호)는 지난 2020년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난동을 부린 수노아파 조폭 일당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랜드하얏트호텔을 인수한 KH그룹 배상윤 회장(다른 범죄로 해외도피 중)에게 돈을 투자했다 손해를 본 수노아파 간부가 조직원들을 동원해 호텔 로비에서 행패를 부리고 직원들을 위협했던 사건입니다. 검찰은 1년 넘게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끝에 9명을 구속, 30명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수준입니다.

검찰은 수노아파 수사 과정에서 이 '또래모임'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노아파 조직원들의 휴대전화나 SNS 계정 등에서 또래모임 관련 여러 가지 자료가 쏟아진 겁니다. 물론 일부 조폭들의 '또래모임' 자체만으로 죄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검찰은 "매우 중요한 수사정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또래모임 명단이나 모임 행태 같은 수사 정보 자체가 향후 조폭 수사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우선 검찰이 관리하는 관리대상 조폭 명단을 바탕으로 기존에 가입된 인물인지, 최근 가입된 인물인지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들이 연루된 범죄를 조폭 관련 범죄로 볼 수 있는지 보고 수사를 확대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수사의 본류는 아니었지만, 검찰 입장에선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셈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예를 들어 보통 조폭 관련 범죄는 추가적인 정보가 없다면 단순업무방해, 단순폭행으로 산발적, 단편적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조폭에 대한 수사 정보가 축적이 되면 그런 사건이라도 "조폭이 개입한 정황 등을 찾아 입체적으로 사건을 수사하고 조폭을 발본색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수노아파 사건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조직폭력배 몇 명이 호텔에서 난동을 부린 사건으로 알려졌지만, 검찰이 사건의 배경과 배후를 찾아 조직을 없애다시피 한 겁니다. 수노아파 입장에선 돈 몇 푼 받으려다 조직이 무너지게 된 셈입니다.

또래모임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일부 MZ세대 조폭들의 세 과시가 검찰의 레이더망에 딱 걸려들었고 대대적인 수사로 이어질 수 있는 불씨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앙지검 관계자는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올해 하반기 대대적인 조직폭력배 관련 수사 단서 발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깡패 수사 막냐"던 법무부장관…조폭에 피바람 불까

위 검찰 관계자의 말처럼 법조계 안팎에선 올 하반기 '조폭과의 전쟁'이 벌어질 거란 예측이 많습니다. 상반기 법무부와 검찰이 강조한 트렌드가 '마약'이었다면 하반기 트렌드는 '조폭'이 될 거란 겁니다. 이는 한동훈 법무장관이 추진해 온 '검수원복'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입니다. 한 장관이 검수원복을 추진하며 줄곧 강조해 온 게 "마약, 깡패수사 제대로 하겠다"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한 장관은 지난 3월 국회에서 '검수원복 시행령'을 사과하고 재개정하라는 민주당 의원들의 요구에 "왜 도대체 깡패, 마약 수사를 못 하게 되돌려야 하는가"라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발언에선 무고와 위증도 언급했습니다) 검수완박 입법에 절차적 흠결은 있지만 법안 자체는 유효라는 헌재 판결에 대한 논쟁 과정에서였습니다. 한 장관은 이전에도 마약, 깡패 수사를 유독 강조해 왔습니다. 사실 마약범죄나 조직폭력범죄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회악(惡)이기도 합니다. 국민적 지지도 높고 반대의 명분도 마땅치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걸로 보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 검찰은 지난 5월 대검찰청에 마약‧조직범죄부(부장 박재억 검사장)를 부활시켰습니다. 5년 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가 통합 신설된 이후 5년 만입니다. 정치적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경찰 움직임은 더 빠릅니다. 이미 지난 3월, 4개월간 조직폭력범죄 특별단속에 나섰습니다. 검찰에선 "지난 5년 동안 검찰의 조폭 수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수사 정보도 거의 쌓이지 앟았다"고 토로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번 수노아파 수사, 나아가 또 MZ조폭들의 '또래모임'은 단순한 가십거리가 아니라 조폭 수사의 새로운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 조직폭력배들이 더 과감해지고 교묘해졌다는 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1조 6천억 원대 피해를 낸 '라임 사태'의 뒤에는 조폭 출신 김봉현이, 대규모 정관계 로비 사건으로 비화한 쌍방울 사건의 뒤에는 역시 조폭 출신 김성태가 있었습니다. 시기도, 명분도 적절합니다. 일부 MZ 조폭들의 SNS놀이가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연합뉴스)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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