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좋은 땅 있어"…연락 끊겼던 지인 전화 온 이유

배규민 기자 2023. 7.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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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제주시 오등동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 말 방목장에서 국내산 승용마들이 풀을 뜯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제공=뉴시스


#.직장인 A씨는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B씨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부동산 회사에 취직을 한 B씨는 제주도에 정말 좋은 땅이 있다며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본인 회사의 대표는 돈을 굴리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알찬 정보를 제공하는 좋은 사업자라는 칭찬도 덧붙였다. A씨는 제주도에 갈 시간도 없고, 부동산이라곤 1도 모르던 B씨가 땅을 추천하는 게 의아했다. 우연찮게 B씨의 상사와 통화를 했는데, 상사는 일단 회사로 와서 설명을 듣길 권유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자 일명 기획부동산 사기에 대한 경고등이 다시 켜지고 있다. 기획부동산은 개발이 어렵거나 경제적 가치가 없는 토지를 개발할 수 있는 용지로 속여 파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활황기를 보인 후 여러 가지 법적 제도가 마련되고 부동산 경기 침체와 함께 한동안 잠잠했으나 최근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B씨가는 다니는 C건설산업은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부동산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화장품 판매 항목이 나온다. 사무실로 계속 전화했지만 전화 통화는 되지 않았다.

지자체들은 기획부동산 사기가 다시 극성을 부릴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경기도는 지난 26일 수원시 등 24개의 시·군의 기획부동산 투기 우려 지역 24.82㎢를 내년 7월3일까지 1년간 토지거래하가구역으로 지정했다. 경기도는 기획부동산 투기 차단을 위해 2021년 6월부터 일정 지역에 대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왔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토지를 거래하려면 관할 시장·군수의 허가를 받은 후 매매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허가받지 않고 계약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받을 때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경기도 담당 팀장은 "기획부동산이 판을 칠 때 비하면 사기 신고는 4분의 1로 줄었는데 시장이 살아나면서 다시 늘어날 수 있겠다는 우려가 있다"면서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해 예의주시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그동안 쌓은 데이터를 통해 이상 신호는 빠르게 포착해 대응하겠다는 설명이다.

세종시도 지난 22일 개발이 불가능한 지분쪼개기에 대한 소규모 투지 거래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지분쪼개기 토지거래는 기획부동산의 대표적인 형태로 개발이 어렵거나 가치가 없는 토지를 낮은 가격에 매입한 뒤 개발이 가능한 토지로 속여 수십명에게 공유지분으로 비싸게 되파는 행위다. 토지개발 관련 법령 강화로 택지방식 토지분할 판매가 어려워지자 공동지분 거래방식으로 토지가 판매되고 있다.

세종시 측은 "관내 일부 토지는 법인에서 개인으로 지분 거래가 꾸준히 이뤄져 공동소유자가 수십에서 수백명에 이른다"면서 "이런 토지는 개발할 때 최대 수백명에 달하는 토지소유자 전부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개인재산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기획부동산의 경우 법적 처벌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등 한계가 있어 개개인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가령 개발이 불가능하고 활용 가치가 없음에도 거짓 과장으로 매수자를 현혹하고 판매하더라도 계약서 약관에 허위 거짓 등의 방법으로 판매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포함해 형사적 문제를 피해 가는 식이다.

한 토지 전문가는 "토지를 사기 전에 토지이용계획확인서를 꼭 확인해야하는데 임업용산지와 공익용산지는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하다"면서 "소액이라도 지인의 말만 믿고 사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땅이 있으니 설명이라도 들어보라는 수법도 많이 사용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갔다가 계약하고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토지이용계획확인서를 보여주지 않거나 주변 시세 확인 등을 방해하는 행위가 있으면 일단은 기획부동산 사기를 의심할 것을 조언했다.

경기도가 운영하는 기획부동산 불법행위 신고센터에 따르면 2021년1월부터 지난해8월까지 총 207건의 수사요청이 접수됐다. 특히 기획부동산 관련 사법기관 수사사례를 보면 수도권 특정 임야의 경우 지분쪼개기 방식으로 총 지분취득권자만 4800여명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명 정치인 등 저명인사도 땅을 샀다는 식으로 거짓 정보를 흘려 투자가치가 있는 것처럼 허위·과장된 내용을 직원들과 직원의 지인을 상대로 반복 교육하고 지분을 판매하는 수법도 많다.

기획부동산은 구인광고를 통해 부동산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는 가정주부나 고령자들을 영업사원으로 고용해 직원과 직원의 지인을 대상으로 지분을 파는데, 직원들도 어렵게 모은 재산을 날리고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획부동산 업체는 물론 소개한 직원도 법적으로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더욱 주의가 요구된다.

배규민 기자 bk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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