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값은 6·25 때 내셨어요"…참전용사 2000명 울린 사진작가
68년이란 시간이 흘렀으나 생생하다고 했다. 눈 감은 미국 노장이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었다.
청년이었던 그는 전쟁 중인 한국에서 싸우고 있었다. 적 위치를 살피러 나왔을 때 사방에서 포탄이 떨어졌다. 조용해질 때까지 숨었다.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릴 따라 도착한 곳은 초가집. 5살쯤 돼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손목이 잘린 채 여자아이 품에서 울고 있었다. 부모는 죽어 있었다.
그는 잘린 손목을 군복 왼쪽 호주머니에 넣었다. 간신히 숨만 쉬던 아이를 안고 부대로 뛰어갔다. 군의관에게 데려다주고 돌아오다, 주머니에 든 아이 손을 깜빡한 게 생각났다. 다시 전해주러 가니 군의관이 고갤 저었다. 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녔다.
청년 이름은 살바토레 스칼라토. 한국전쟁에 와서 싸워준 참전용사.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미국에 돌아갔을 때, 당시 그들은 참전용사가 아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누구도 원치 않았던 전쟁.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었고, 참전용사도 '잊힌 용사'라 불렸다. 1999년 미국이 한국 참전을 인정하기까지 그랬다.
스칼라토에게 참혹한 전쟁은 쉬이 잊히지 않았다. 평생 병원에 다녀야 했다. 죽은 아이가 잡았던 목덜미 감촉이 선연했다. 아내와는 잠도 함께 못 잤다. 길고도 애달픈 세월이었다.
68년이 흐른 어느 날. 한국에서 청년 한 명이 머나먼 미국까지 찾아왔다. 그는 사진작가라 했다. 오래도록 스칼라토가 가슴에 묻어둔 이런 이야길, 세심하게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그리고 "한국을 위해 싸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이젠 백발이 성성한 살바토레의 사진도 찍어주었다.
한국으로 돌아갔던 청년은, 미국에 다시 왔다. 살바토레의 사진을 멋진 액자에 넣어, 선물이라며 가져왔다. '잊힌 전쟁'의 '잊힌 용사'였던, 살바토레의 자부심이 번쩍 고갤 들었다. 사진값이 얼마냐고 하자 한국 청년은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액자값을 물어보신다면, 68년 전에 이미 지불하셨습니다. 저희는 선생님 같은 분들께 빚이 있어요. 그중 작은 부분을 갚으러 온 것뿐입니다."
"2016년에 한국에서 참전용사를 만났어요. 직접 본 건 처음이었지요. 이름을 물어봤죠. 그가 말하더라고요. '그래, 난 한국전쟁 미 해병대 참전용사야'. 눈이 부리부리하고 광채가 났습니다.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오래전 끝난 한국전쟁. 그것도 남의 나라 전쟁. 근데 왜 이 사람들은 이리 자부심이 있을까. 라미 현 작가는 궁금했다. 군인 사진은 많이 찍어봤었기에 더 그랬다. 나라와 부대가 늘 먼저여서, 변변찮은 가족사진 하나 없는 국군을 위한 프로젝트도 했었다. 수십 명씩 찍었다. 그런데 참전용사 눈빛이 또 달랐다. 알아내고 싶었다.
자비를 털고, 카드빚까지 내어가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엔 섭외도 쉽지 않았다. 오해도 많이 받았다. 어느 참전용사는 "이걸 팔러 온 건가?"하며 의심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미국 동부쪽에서 한 비디오그래퍼가 참전용사 DVD를 만들어, 500달러(약 66만원)씩 받고 판 적도 있었단다.
"낯선 사람 만나면 거리감이 좀 있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은 그런 게 없어요. 이미 전쟁서 많은 한국 사람들을 겪어봤기 때문에요. 포근해요. '웰컴, 어서와. 뭐 필요해?' 다 내어주고요. 옆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지요."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특별히 신경쓰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없는데요. 있는 그대로 찍어야죠." 흰색 벽에 들어오면 그저 셔터만 누르는 거란다. 그 순간, 다시 돌아간다. 겪었던 한국전쟁의 어느 시점으로. 포탄이 떨어지고 부대에서 다 죽고 홀로 살아남기도 했던.
그걸 그냥 사진으로 줄 수도 있다. 그러지 않는다. 라미 작가는 좋은 액자를 골라 정성스레 넣는다.
참전용사가 사진을 받기 전 얘길 잠시 하자면 이렇다. "I'm not hero(나는 영웅이 아닙니다)." 죄책감을 가진 채 살아온 이들 얘기다. 네덜란드 참전용사 헤르만 반 데 릴 리가, 한국전쟁 후 돌아가 들은 말을 보면 이해가 간다. "동양에서 돌아온 살인자, 죽지 왜 돌아왔냐."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군인에 생긴 안 좋은 인식 때문이었다.
실은 그게 아니다. 미국 참전용사 윌리엄 빌 베버가 그랬다. 한국전쟁 때 그는 오른쪽 팔과 다릴 잃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때도 참전했었다. "2차 세계대전 땐 상대를 패배시키기 위해 싸웠지만, 한국전쟁에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싸웠지요. 이건 큰 차이입니다. 군인의 자부심은 이기는 것보다 지키는 데에서 옵니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 나를 찾아온 그 나라 청년이, 사진 액자 선물을 준다. 받는 순간 눈빛이 바뀐단다. 어떻게 바뀌는 걸까. 라미 작가가 말했다.
"내면까지 담아낸 사진이거든요. 자기 모습을 보며 '내가 참전용사였구나, 겁쟁이가 아녔구나', 그리 느끼는 거예요. 한국전쟁서 싸운 게 잘한 거였다고요. 표정이 정말 극적으로 바뀌어요. 반드시 액자로 전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프로젝트 초반엔 사진 찍고 한국에 와서 인화한 뒤, 전해주러 또 갔었다. 너무 오래 걸렸다. 미국 참전용사 크리스토퍼 콜드레이에겐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진액자를 주려고 갔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없었다. 5일 전 돌아가셨다고 했다. 라미 작가는 참전용사 아내인 빅토리아 콜드레이와 펑펑 울었다.
그러니 라미 작가는 시간을 아껴야 했다. 지난해엔 미국에서 캠핑카를 아예 빌렸다. 120㎏에 달하는 촬영, 인화 장비, 액자를 싣고 다니며, 찍고 바로 액자로 만들어주었다. 이유를 물으니 그는 "그들이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에"라고 했다. 한 해 동안 5만5000㎞를 다니며 참전용사 150명을 만났다.
비용만 5억원이 들었다. 기름값만 한 달에 6000~7000달러(약 791~923만원)가 들었단다. 숨 쉬기만 해도 돈이 나가니, 한 명이라도 더 찍을 수밖에 없었다. 찍기 하루 전에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다. 기억나는 이가 있다고 했다.
"아침 9시에 갔는데, 참전용사 아내가 화내시며 '가라, 준비가 안 됐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저녁에 돌아가신 거예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내 분도 패닉 상태였나 봅니다. '죽을 준비가 안 됐다'고 말씀하셨나 봐요"
지난해 찍었던 참전용사 150명 중 70명이 돌아가셨단다. 라미 작가는 매일 부고를 받는다. 참전용사들도, 그들의 기록도, 오늘도 아스라히 사라지고 있다.
처음 참전용사를 만나고 '왜 다를까' 궁금했던 그 눈빛. 그 이유를 라미 작가는 이제 알겠다고 했다.
"한국전쟁 3년 반 동안 사람만 죽었지, 땅을 뺏긴 것도 뺏은 것도 아니었거든요. 이분들이 고국에 돌아와서도 허무했던 거죠. 그런데 1988년, 어느 날 TV를 켜보니 폐허가 됐던 땅에서 올림픽을 하고 있잖아요. 그때 바뀌었던 거예요. '아, 우리가 했던 게 헛짓거리가 아녔구나. 자유 가치가 정말 큰 거였구나.'"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전 세계 신문 타이틀이 이랬다고. '향후 100년간 이 땅에 빛은 없을 것이다.' 폐허가 됐던 땅에서, 지금은 BTS에 열광하고 삼성과 LG 같은 글로벌 기업이 생겼다. 라미 작가는 "그러니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는 어마어마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밤을 찍은 위성 사진 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환한데, 그들은 새까맣다고. 그땐 이기지 못했지만 실은 승리였던 거라고. 그게 '자부심'이란 거였다.
라미 작가가 푸에르토리코에서 참전용사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작은 나라에서 무려 6만5000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그들은 이리 회상했다.
"한국에 겨울이 왔다. 하늘에서 하얀 게 내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인 줄 알았다. 그게 내 몸을 얼려버리는 악마란 걸 알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눈, 추위, 배고픔. 죽은 전우 곁에서 전진하던 기억. 그러나 참전용사들은 이리 덧붙였다.
"나는 아직도 내 피가 그곳에 있음을 느끼고, 그게 자랑스럽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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