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산다]-17 "곡성에 정착해 찾은 천직" 여성 농사꾼 양수정 씨
[※ 편집자 주 =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인생의 꿈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서울로 서울로를 외칠 때,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자기가 사는 동네가 좋아 그곳에서 터전을 일구는 이들도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만들어갑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지 않고'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꿈을 설계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삶을 연합뉴스가 연중 기획으로 소개합니다.]
(곡성=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도시에서는 평생 주부였는데, 시골에 와서 제 직업을 찾았네요."
8년 전인 2015년 전남 곡성군 옥과면 수리마을로 귀농한 양수정(54) 씨는 자신의 직업을 농부이자, 손수 기른 농산물을 직접 파는 자영업자라고 말한다.
그는 남편, 3명의 자녀와 함께 거의 평생을 도시인 대전에서 살았다.
남편이 30여년을 일하던 건설회사에서 갑작스럽게 명예퇴직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양씨 부부는 농사는 생각지도 않고 시골에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귀촌을 택했다.
도시의 냉혹함과 삶에 대한 회의감을 떨쳐내려 선택한 시골행이었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곡성 정착은 쉽지 않았다.
양씨의 이야기는 흔한 귀농·귀촌 경험담처럼 들리지만, 그녀의 새 삶은 농사일을 접하면서 찾아왔다.
귀촌 초기 학생이던 막내아들을 학교 보내고, 곡성에서 새 직장을 구한 남편을 출근시키자 자투리 시간이 많이 생겼다.
양씨는 가족 먹일 농산물을 직접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씨를 뿌리기 시작했고, 농사를 더 잘해보려 농업기술센터 교육을 찾아다니며 배우다 스스로 '농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농사일에 매진하게 됐다.
귀촌인이 귀농인으로 또 한 번 변신하게 된 셈이다.
농사일에 자신감이 붙자 어렵게 키운 작물을 판매해보기로 마음먹고 새로운 방법을 택해 '초이스팜' 업체를 설립하고 '소소농부' 브랜드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자영업자가 됐다.
크라우드펀딩 모금을 통해 연회비를 내는 고객에게 1년에 여러 작물을 최적 시기에 수확해 보내주는 '다품종소량생산' 농사 방식으로 수익을 확보했다.
2월 감자, 6월 미니밤호박, 7월 옥수수 등 계절별로 다양한 농산물을 받아 보는 새로운 공급 방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긍정적 반응이 이어지면서 크라우드펀딩 참여 고객이 80여명에 넘어설 만큼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방소멸의 위기가 양씨에게도 걸림돌로 찾아왔다.
혼자 농사를 짓는 1인 농가다 보니, 수확시기 등에 일손이 꽤 많이 필요했지만, 청년이 떠나는 농촌에서 노동력을 확보하고 나날이 치솟는 인건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양씨는 크라우드펀딩을 포기하고 재배는 어렵지만 성공하면 고수익을 보장하는 특화작물에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했다.
'와사비'를 집중적으로 키워 입을 쌈 채소를 판매하고 장아찌로 가공하고 있다.
또 수경 재배한 와사비 근경도 고수익 작물로 판매할 예정이다.
양씨는 '곡성 와사비'로 농업법인을 세워 지역사회의 멘토 역할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귀농·귀촌 8년 동안 양씨 가족에게는 행복함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여느 귀농 가족이 그렇듯 정착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양씨는 그중 귀농·귀촌인에 대한 지역의 '과도한 관심'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관심도 애정의 표현이었으나, 서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 생긴 갈등에 적지 않은 귀농·귀촌인 듯이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떠나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특히 귀농 후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양씨는 "3명의 자녀 중 막내를 시골에서 키워 대학까지 보냈다"며 "도시와 달리 시골에서는 지역에서 주는 혜택이 많아 도시의 좋은 학원을 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교육의 기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한계에 부딪혀 포기했지만 크라우드 펀딩 등 농업 부가가치 창출 방법을 협동조합을 만들어 다시 시도하고 싶다"며 "함께 흙에서 자식을 키우는 기쁨을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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