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도 못한 축구 신대륙 개척, 메시라면 가능할까? [경기장의 안과 밖]
리오넬 메시는 1987년생이다. 만으로 서른다섯. 2022 카타르월드컵 우승으로 커리어 최정점에 선 그에게 더 이상의 경쟁은 의미 없는 나이다. 필생의 라이벌 호날두와 비교해도 모든 면에서 앞선다. 21세기 최고의 축구선수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펠레, 마라도나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반열에 올라섰다. 역대 최고를 의미하는 이른바 고트(G.O.A.T, The Greatest Of All Time) 논쟁에서도 우위를 점했다. 축구계의 관심은 메시가 남은 선수 생활을 어떻게 보낼지에 쏠렸다.
메시는 2021년 여름부터 프랑스의 ‘메가 클럽’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뛰었다. PSG는 숙원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메시를 영입했다. 그러나 음바페, 네이마르와 함께 최고의 공격 라인을 구축하고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꺾고 우승에 성공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인지, 프랑스 팬과 미디어는 챔피언스리그 탈락 후 메시에게 야유하고 비난을 보냈다. 메시 역시 더 이상 PSG와 계약을 연장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애초 유력한 시나리오는 FC 바르셀로나 복귀였다. 바르셀로나는 메시의 모든 것이었다. 유스 시절부터 21년간 뛴 곳이자 축구 커리어 성과의 대부분을 낸 클럽이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 은퇴하기를 꿈꾼 메시는 팀을 떠나야 했다. 경영진의 방만한 운영으로 팀 재정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재계약을 하면 다른 고액 연봉자들을 내쳐야 하는 상황이 되자 메시는 동료들을 위해 떠나기로 결심했다. 2년이 지나서도 바르셀로나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복귀는 물거품이 됐다.
다음 선택지는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였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 아래 사우디는 경제·정치·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 축구가 있다. 2030년 월드컵을 유치해 사우디의 변화상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야심이다. 그 전초 단계로 사우디는 유럽에서 뛰는 유명 선수들을 자국 리그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미 지난해 겨울 호날두가 알나스르 FC에 입단했다. 올여름에는 벤제마가 알이티하드 FC로 향하며, 캉테도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축구 변방’으로 데려오는 수단은 고액 연봉이다. 호날두의 연봉은 2억 유로(약 2700억원)로 알려졌다. 메시를 영입하려 한 알힐랄 SFC는 그 두 배인 4억 유로를 연봉으로 제시했다. 계약기간 2년이면 1조원 이상의 돈을 거머쥘 기회였다.
하지만 메시의 선택은 다른 길이었다. 메시는 헐값(?)인 700억원을 연봉으로 제시한 북미 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의 인터 마이애미 CF를 택했다. 6월7일 메시는 스페인 스포츠 매체 〈문도 데포르티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돈을 원했다면 사우디로 갔을 것이다. 이번 선택은 온전히 나의 의지다.” 축구에서 모든 것을 이룬 메시는 거액을 뒤로하고 그렇게 도전자와 개척자의 길을 걷게 됐다.
MLS는 현재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축구 시장이다. 유럽 축구에 비해 여전히 명성이나 규모에서 밀리지만, 미국이 지닌 엄청난 스포츠 시장성을 등에 업었다. 지난 30년가량 지속된 ‘사커맘(축구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방과후 스포츠 활동을 지원하는 중상류층 백인 여성)’ 열풍에, 축구 열기가 뜨거운 중남미 이민자 사회의 영향력도 커졌다. 미식축구·야구·농구·아이스하키의 4대 스포츠 위상에 도전 중이다. FIFA는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한 북미 시장을 중국, 인도와 더불어 향후 세계 축구의 상업적 규모를 바꿀 시장으로 여기고 있다.
MLS는 미국 스포츠 산업의 특징을 그대로 담는다. 지역사회의 연고성을 기반으로 팬덤을 구축한 유럽 축구와 달리 철저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리그 사무국의 정책과 규정을 모든 팀이 따라야 하는 중앙집권형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신생 팀 창단도 MLS가 새 도시에 구단을 ‘개점’하는 프랜차이즈 방식이다. 창단하려는 팀은 사무국 승인을 받고 거액의 가입비를 낸다. 유럽 클럽들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연고지 이전도 가능하다. ‘프랜차이즈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구단은 필수적으로 경기장을 소유해야 한다. MLS 진입을 준비하는 구단들의 최우선 과제는 최첨단 상업 시설을 갖춘 경기장 건설이다.
메시의 미국행 이끈 이는 구단 회장인 베컴
현재 MLS 프랜차이즈(구단)는 29개다. 1996년 10개 팀으로 출범해 3배에 달하는 규모가 됐다. 그리고 샌디에이고가 30번째 프랜차이즈로 확정돼 창단을 준비 중이다. 2022년 입성한 샬럿 FC의 경우 4000억원이 넘는 가입비를 냈다. 2007년 가입한 토론토 FC의 가입비와 비교해 30배 증가한 액수다. MLS 구단의 가치가 얼마나 상승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축구 신대륙으로 메시가 향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은 인터 마이애미의 회장인 베컴이다. 베컴은 마이애미를 기반으로 하는 엔지니어링 그룹 마스텍의 오너인 호르헤 마스, 호세 마스 형제와 손을 잡고 팀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손 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일부 지분을 갖고 있다. 베컴은 구단 경영에 참여한 이후 지속적으로 메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메시가 바르셀로나를 떠나야 했던 2021년 이미 인터 마이애미의 미래 비전을 설명하며 합류를 설득했고, 그 결실은 2년 뒤 맺어졌다. 베컴 본인도 2007년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MLS의 LA 갤럭시로 넘어온 개척자 중 한 명이었기에 메시를 누구보다 잘 설득할 수 있었다.
메시의 MLS 입성은 그 과정도 독특했다. 우선 인터 마이애미의 영입 작업을 MLS 사무국 차원에서 검토하고 승인했다. 연봉 때문이다. MLS는 연봉총액 상한제(샐러리캡)을 적용 중이다. 구단 연봉 총합은 403만5000달러(약 51억6000만원)를 넘을 수 없다. 선수 1인당 한계도 50만4000달러(약 6억4000만원)다. 이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 지정 선수 3명을 별도로 둘 수 있지만, 메시는 개인 연봉만 5000만 달러 수준이다. 구단 재정 건전성을 위해 운영하는 샐러리캡을 아득히 초과한 예외 경우다. 이 예외는 리그 전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할 경우, 사무국 승인으로 효력을 얻는다. 2007년 ‘셀럽’의 지위를 갖고 있던 베컴이 MLS에 입성하며 탄생한 조항이기에 ‘베컴 룰’로 불리기도 한다. 베컴에 이어 메시가 그 수혜자가 됐다.
MLS는 30대 중반에도 여전히 세계 최고 선수인 메시를 통해 또 한 번의 탈피를 꿈꾼다. 베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다비드 비야, 피를로 등 유명 선수들이 MLS를 누빈 바 있으나, 메시는 이들과도 급이 다르다. NBA가 마이클 조던을 통해 세계화에 성공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MLS는 올 시즌부터 애플의 OTT 서비스 애플TV+와 10년간 독점 생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메시의 합류로 전 세계 애플TV+ 구독자들의 유입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미국 시장에서 나이키에 크게 밀리고 있는 메시의 개인 후원사 아디다스 역시 이번 MLS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메시 효과는 이미 MLS를 들었다 놨다 하는 수준이다. 지난 6월8일 MLS가 메시의 합류를 발표하자, 인터 마이애미 홈경기 입장권은 중고 거래 시장에서 최대 10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 인터 마이애미뿐만 아니라 MLS의 여타 상대 팀들 역시 티켓 판매고 증가를 기대한다.
‘해외 스타 수혈’을 통한 부흥은 과거 미국 축구에서 한 차례 실패한 바 있다. 독일 출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주도로 1970년대 펠레,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미국 무대로 모아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북미 사커리그(NASL, MLS의 전신)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스타 효과는 선수들의 은퇴와 함께 눈 녹듯 사라졌고, 1984년 NASL은 문을 닫았다. 1994년 미국월드컵을 계기로 출범한 MLS는 강력한 중앙집권형 시스템을 통해 리그 안정성을 높였다. 그리고 출범 27년이 지난 뒤 세계 최고의 선수를 영입하며 20세기와는 정반대 순서의 전략을 취했다. 2026년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공동 개최하는 차기 월드컵도 MLS 중흥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이미 아이스하키의 입지를 넘보며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MLS는 개척자의 길을 선택한 메시와 함께 축구 신대륙에서 중심으로 거듭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배진경 (<온사이드>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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