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살려고 왔지만 난민 인정률 2%…차갑게 밀쳐낸다

조일준 2023. 7. 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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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난민][한겨레S] 커버스토리
난민법 10년 ‘외국인 수용’ 현주소
지난 19일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인도적 체류자 가족 결합 및 가족구성권 보장 증언 대회’에 참석한 한국 체류 외국인들이 수년 동안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때리지 마, 욕하지 마, 가두지 마. 폭/력/종/식!”

“같이 살면 이웃이다, 외국인을 가두지 말라!”

“구금은 국가폭력이다, 외국인보호소 지금 당장 폐지하라!”

지난 6월23일 낮 경기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화성 외국인보호소 앞. 한적한 시골 마을에 한낮의 정적을 깨뜨리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보호소 정문 앞 편도 1차로의 한쪽 인도와 차로에 줄지어 앉은 20~30대 청년 80여명의 목소리였다. “우리의 목소리가 담장 너머 갇혀 있는 분들께 가닿을 수 있도록 힘차게 외쳐봅시다”는 제안에 참가자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예~!”라고 화답했다. 시민단체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 아이더블유(IW)31’이 처음 주최한 ‘버스 타고 찾아가는 외국인보호소 폐지 문화제’에 자원해 참가비를 내고 온 시민들이었다.

화성 외국인보호소 바로 옆에는 화성 직업훈련교도소가 있다. 문화제 참가자들이 보호소 앞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에 경찰관과 경비교도대가 배치됐다. 경찰은 집회 내내 채증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경비대의 꼿꼿하고 긴장된 자세와 문화제 참가자들의 흥겹고 자유로운 모습이 대조됐다. 출입국관리법(제2조)이 정의하는 외국인 ‘보호’는 “강제퇴거 대상에 해당한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을 출국시키기 위하여 지정 장소에 인치·수용하는 집행”을 말한다. 또 외국인보호소는 “이 법에 따라 외국인을 보호할 목적으로 설치한 시설”이다. 말이 ‘보호’지, 재판 절차도 없이 사람을 가두는 편법적 ‘구금’ 시설인 셈이다.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시 외국인보호소 앞에서 열린 ‘버스 타고 찾아가는 외국인보호소 폐지 문화제’ 참가자들이 집회에 앞서 다양한 구호를 적은 손팻말을 만들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구금시설과 다를 바 없는 외국인‘보호’소

‘버스 타고 찾아가는 외국인보호소 폐지 문화제’가 열린 지난 23일 경기도 화성시 외국인보호소 앞에서 참가자들이 문화제를 마친 뒤 행진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서울에서 아이더블유31이 임차한 전세버스 4대를 나눠 타고 왔다. 버스 안에서 참가자들은 간략히 자기소개를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공고를 보고 관심이 생겼다”는 대학원생, “이런 행사에 처음 왔다. 많이 배우고 가겠다”는 청년, 공익변호사 단체의 활동가, 서울 마포구 성미산학교(대안학교) 교사와 학생들, 이주노동자 연대 활동가, 다큐멘터리 작가, 천주교 인권위원회 활동가 등 직업 배경도 다양했다. “어려서 미국으로 가 이주민으로 살다가 23년 만에 돌아왔는데, 한국에도 이주민 권리 운동이 있다는 걸 발견해 기쁘다”는 여성과, “강원도 정선에서 이 행사에 참여하려고 휴가를 내서 하루 전에 서울에 왔다. 참가자들이 많아 놀랍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는 남성의 발언 뒤에는 박수 소리가 더 커졌다.

지난해 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화성 외국인보호소 수용 중 이른바 ‘새우꺾기’를 당했던 모로코 국적의 난민 신청자 엠이 가혹행위 당시의 결박 차림으로 보호소의 반인권적 행태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더블유31은 ‘인터내셔널 워터스(International Waters) 31’을 줄여 쓴 말이다. ‘인터내셔널 워터스’는 특정 국가의 배타적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는 ‘공해’(公海)를 가리킨다. 단체명에는 국경을 구분하지 않고 시민권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보편적 인권의 의지가 담겼다. 아이더블유31은 2011년 4월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된 모로코 출신의 한 난민 신청자 엠(M·가명)이 가혹행위를 당한 일을 계기로 결성됐다. 난민 신청자(G-1-5 비자)였던 엠은 체류 자격의 기간 연장을 놓친 상태에서 체불임금을 청구했다가 고용주의 보복성 신고로 미등록 체류자가 됐다. 보호소에 수용된 뒤 ‘방 변경’ 지시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독방에 갇힌 채 방치됐다가 이에 항의하자 이른바 ‘새우꺾기’를 당했다. 새우꺾기는 양손에 수갑을 채우고 두 발을 포승줄로 묶은 뒤 몸 뒤로 사지를 결박해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가혹행위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엠이 직원에게 욕설을 하고 기물 파손 행위를 반복해 불가피하게 보호장구를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앞서 2019년 4월에도 화성 외국인보호소에선 또 난민 신청자가 같은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아이더블유31의 심아정 활동가는 단체명 중 숫자 ‘31’은 엠이 일시 구금해제로 풀려난 뒤 그를 도우려 자원봉사자 31명이 모인 데서 붙였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엠에 대한 새우꺾기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에 부합하지 않는 비인도적인 보호장비 사용”이라며 관련 직원과 보호소장에 대한 경고와 재발방지책 마련을 권고했다. 엠은 현재 한국 정부를 상대로 가혹행위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을 벌이고 있다.

지난 6월 23일 화성 외국인보호소 앞에서 열린 ‘버스 타고 찾아가는 외국인보호소 폐지 문화제’에 참가한 이들이 공연을 하는 모습. 이정용 선임기자

아이더블유31은 이날 문화제 형식의 집회를 위해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 비건(채식) 점심 도시락, 수어 통역, 인디밴드들의 공연 등 다채롭고 세심한 준비를 했다. 참가자들은 외국인 인권침해에 ‘뿔났다’(화가 났다)는 뜻에서 여러 형태의 뿔 모양 장식을 한 모자 또는 머리띠를 착용했다. ‘다양한 몸’을 상징하는 알록달록 예쁜 손팻말도 현장에서 직접 만들었다. 손팻말에 적은 여러 구호에는 외국인보호소의 실태, 참가자들의 요구와 다짐이 축약됐다. ‘가두지 마, 같이 살 거야’, ‘보호라면서 왜 쫓아와? 왜 잡으러 와?’, ‘헌법불합치 결정, 지금 당장 구금을 멈춰라’, ‘비국민 차별 금지’, ‘필요한 건 보호가 아니라 공생’, ‘몸의 차별적 통제 반대’, ‘Freedom & Justice’(자유와 정의), ‘Release my neighbors’(나의 이웃을 석방하라), ‘환대를 넘어 연대로’, ‘보호소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

문화제 내내 참가자들의 자유 발언, 인디밴드인 빌리카터(보컬·기타)와 캄캄밴드(관악)의 흥겨운 공연, 동물해방운동가 이하루씨의 핸드팬(음정을 낼 수 있는 타악기의 하나) 연주와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성미산학교의 한 학생은 “학교에서 외국인보호소에 대해 공부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배웠다”며 “보호라는 이름의 감금은 어떤 환경에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누군가를 구분 짓고 격리하는 행위는 이들의 존재를 지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원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3일 화성 외국인보호소 앞에서 열린 ‘버스 타고 찾아가는 외국인보호소 폐지 문화제’에 참가한 인디밴드 빌리 카터가 랩 공연을 하는 동안 옆에서는 수어 통역이 동시에 진행됐다. 조일준 선임기자

법무부의 ‘외국인 보호 규칙’은 “누구든지 보호시설을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상의 수용자를 수용하는 시설로 이용하여서는 아니 된다”(제3조)고 명문화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여러 조문을 보면 ‘보호’를 ‘구금’이라고 바꿔 읽어도 이상할 게 없다. 지문과 얼굴 등 생체정보의 제공과 기록(제5조), 입소할 경우와 방을 나갔다가 재입실할 때마다 신체와 소지품 검사(제6조), 보호외국인용 제복 착용(제6조3항), 물품·현금의 보관과 사용 허가(제10조, 11조), 일과계획표에 따른 생활(제24조), 외출 허가제(제28조), 면회(제33조)와 전화통화(제36조)의 엄격한 통제, 별도의 장소에 격리해 ‘보호’하는 특별계호(제40조), 강제력의 행사(제42조)와 수갑·포승 등 ‘보호 장비’의 사용(제43조) 같은 규정들은 교도소 수형자 관련 법규와 다를 게 없다. 법원도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보호’가 일정 기간 그의 의사에 반하여 신체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인신구속에 해당한다”(대법원 99다68829)고 봤다.

지난 1월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외국인보호시설 및 출국대기실 실태조사 보고대회’를 열었다. 현장조사와 관련 법규 검토, 법무부 질의 답변 등을 토대로 417쪽짜리 두툼한 보고서도 발간했다. 변협은 보고서에서 외국인보호 시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고 개선안을 제시했다. 개선안에는 △폐쇄형 구금시설이 아닌 개방형 보호시설의 확대 운영 △보호복이 아닌 사복 착용 허용 △인터넷·휴대전화·외출 등 외부 교통권 전면 허용 △폐회로티브이(CCTV) 감시 제한 △개인 물품 소지의 원칙적 허용 △현행법상 무기한 구금이 가능한 구금 기한의 상한 규정 등이 포함됐다.

민병대 징집·할례 거부하고 한국으로

올해 7월1일은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앞서 6월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었다. 한국은 난민에 대해 인색한 나라로 손꼽힌다. 난민 신청자들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 2014년 1월부터 2023년(5월 말 기준)까지 10년 동안 한국에 온 난민 신청자는 8만5105명. 그중 난민 심사 완료자는 절반을 조금 넘는 4만7897명, 난민 지위를 인정한 것은 987명뿐이다. 난민 인정률이 2.1%로, 세계 평균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최하위권이다. ‘인도적 체류’ 결정까지 포함해도 보호율은 8%를 넘지 못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 자료를 보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의 난민 인정률은 24.8%, 보호율은 63%에 이른다. 인도적 체류자는 ‘난민’ 인정은 받지 못했으나 “고문 등 비인도적 처우나 처벌, 또는 그 밖의 상황으로 생명이나 신체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인정돼” 임시 체류가 허가된 사람이다.

희박한 난민 인정 가능성에 불안해하며 신청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이중의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인도적 체류자의 가족 결합 및 가족구성권 보장 증언 대회’가 열렸다. 난민인권센터와 한국이주인권센터가 함께 주관했다. 증언자는 예멘 출신 남성인 하산과 나빌, 아프리카 출신 여성 빈토스와 다이아몬드(모두 가명) 4명. 이들은 모두 ‘인도적 체류자’(G-1-6 비자) 자격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하산은 예멘 내전이 시작된 이듬해인 2015년 한국으로 먼저 피신해 난민 신청을 했다. 살상이 싫어 민병대의 합류 강요를 거부한 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존엄성, 안보, 안전, 정의, 질서, 법 속에서 살 수 있는 대안적 조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고 했다. 그 뒤 예멘 국민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부인과 자녀들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가족의 장기 거주를 허용하지 않고 퇴거를 압박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이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하산은 “가족이 없는 지난 8년은 오랜 이별 탓에 너무 힘들었다”며 “미지의 미래, 지속적인 무자비한 위협과 위험에서 가족을 구해달라. 가족과 재결합하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나빌은 2014년 예멘 내전이 터진 직후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다. 예멘에선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 자영업에 종사했다. 그는 분쟁 상대이던 다른 부족이 아버지와 남동생을 살해했다고 말했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은 4년 동안이나 예멘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전쟁 피란민으로 살다가 몇년 전 말레이시아로 탈출했다. 나빌도 9년째 ‘이산가족’으로 살고 있다. 그는 “죽음과 박해가 두려워 조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가혹하고 견디기 힘들다. 제 유일한 꿈은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니 출신의 다이아몬드는 어린 여성의 성기를 일부 제거하는 전통풍습인 할례를 거부했다가 심각한 위협을 받아 피신해야 했다.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으나 인도적 체류 자격만 부여받았다. 남편과 자녀들도 한국에 함께 있지만, 남편이 미등록 체류 신분이어서 취업은커녕 단속을 걱정해야 한다. 다이아몬드는 “혼자 힘으로 일주일에 2~3번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리는 게 너무 힘들다.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남편이지만 단속에 걸릴까 외출도 자유롭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남편은 무릎 수술을 받고 일을 못 한 지 여러 달 됐다고 했다. 다이아몬드는 “더군다나 올해 말까지 2500만원의 (출입국관리법 위반) 벌금을 못 내면 내년에는 더 늘어나는데 그 돈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나는 남편을 잃고 싶지 않다. 제발 도와달라. 신의 이름으로 간청드린다”며 울먹였다.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난민 신청자 보호 및 조속한 난민 심사 촉구 집회에서 난민 신청자 자녀들이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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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 체류자 ‘가족 결합’ 요구 크지만

현행 난민법에서 난민 인정자와 인도적 체류자의 법적 지위와 처우는 천양지차다. 난민 인정자는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과 기초생활, 중등교육을 보장받으며 취업도 허용된다. 또 국외에 있는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가 한국 입국을 신청할 경우 정부는 공중위생이나 안보 위협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입국을 허가해야 한다. 반면 인도적 체류자의 가족 결합에 대해서는 명문 규정이 없다. 법무부 난민 업무 지침은 인도적 체류자의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가 국내에 이미 체류 중일 경우 미등록 체류(이른바 불법 체류)가 아닌 경우에 한정해 인도적 체류자 가족(G-1-12 비자) 자격으로 체류를 허용하되, 국외 거주 가족에 대한 비자는 발급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인도적 체류자의 가족이 불법체류 상태인 경우에는 법 위반 사상에 따른 범칙금을 납부하면 합법적 체류를 허가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도적 체류자는 사회보장제도를 적용받지 못하며, 취업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체류 기간은 1년(심사를 통해 수개월씩 연장 가능)으로 짧고, 영주 자격이나 귀화 등 장기 정착의 길은 막혀 있다. 그나마 난민 신청자 중에서 난민 인정이 아닌 인도적 체류자 자격을 부여받는 비율도 5%가 채 안 된다.

1951년 유엔에서 채택된 난민협약에 가족 재결합이 명시돼 있지는 않다. 애초 난민협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유럽과 신생독립국들에서 대량 발생한 난민들에 대한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난민의 지위 요건도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를 원하지 않는 자”로 한정했다. 그러나 종전 이후에도 국가 간 분쟁이나 내전, 대규모 자연재해, 심각한 인권침해 등으로 난민은 급증했다. 1967년 유엔은 난민협약의 한계를 보완해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를 채택했다. 국제사회는 난민의 개념과 인정 사유를 인권의 기준에 맞춰 더 폭넓게 해석하는 추세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난민 인정 기준을 난민협약의 5대 요건으로 기계적으로 엄격히 적용하면서 난민 인정률 최하위권을 맴돈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화성 외국인보호소 정문. 보호소 바로 옆에는 화성 직업훈련교도소가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유엔난민기구는 ‘보충적 보호’를 받는 사람도 인도적 필요는 난민 인정자와 다르지 않다고 보고, 체류 지위와 관계없이 가족 결합의 인정을 적극 권장한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도 2019년 ‘제2차 이주 인권 가이드라인’에서 난민 인정 절차와 결정의 공정성 강화, 난민의 처우 개선, 상당 기간 국내 체류가 예상되는 인도적 체류자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가족 결합 인정을 권고했다.

인도적 체류자의 가족 결합을 요구한 증언자들은 성명서에서 “한국의 난민법 시행 10년 동안 (…) 한국의 비호를 구하러 온 난민들은 구금 시설에 갇히고, 난민 심사는 조작되고, 온갖 불평등한 권리의 제약 속에서 알아서 생존하도록 놓여 결국 거리로 나와 단식을 하고,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다”며 “인도적 체류자라는, 마치 ‘인도적’으로 보이는 체류 자격은 이보다 더 비인도적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인도적 체류자의 가족구성원이 미등록 상황이 됐을 때 혹시라도 단속된다면 다시 가족에게 돌아올 길이 없기 때문에, 언제 가족이 해체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도적 체류자를 포함한 모든 이주민이 인격체로 존중받고(…) 정서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국가가 보장해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런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과 권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관련법을 제·개정하는 국회와 집행하는 행정부, 특히 대통령과 법무부의 전향적 사고와 보편적 인권 보장 의지에 달렸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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