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맛[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지난 시간에 소금의 짠맛을 공부했다. 짠맛은 세포 막을 오가며 생명의 전기 신호를 발생시키고 체액의 균형을 잡아주는 나트륨(소듐) 이온에서 나온다. 우리 몸이 본능적으로, 생리적으로 원하는 맛이다. 소금 중독이란 용어가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맛집을 알려주는 먹방 방송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이 하나 있다. 바로 ‘단짠’의 조화이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에 소금을 뿌려먹는다던가, 짠 스페인 생햄 하몬에 단 메론을 곁들여 먹는 식이다. 달콤한 설탕의 맛도 몸이 원하는 본능의 맛인 것이다. 이는 동물이 몸 안에서 만드는 기본 연료 ATP가 포도당을 분해한 산물이며, 포도당은 녹말(전분) 같은 다당류, 즉 탄수화물이 쪼개진 구성 성분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탄수화물뿐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도 급할 땐 분해해서 포도당으로 바꾼다. 포도당을 한번 더 분해하면 ATP 연료가 나온다. ATP를 태우면 열량(에너지)이 발생한다. 단맛은 뇌세포의 소비 연료인 ATP가 그 안에 존재함을 알려주는 화학적 시그널이라 할 수 있다. 음식에 에너지원, 즉 영양분이 많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단맛에 무작정 끌리고, 심하면 설탕 중독에 빠지게 된다. 손 댔다 하면 아이스크림 한 통을 순식간에 비우고 나중에 후회하는 다이어트 운동 남녀들은 인류의 타고난 천성에 저항하는 셈이다.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신맛과 쓴맛이 먹으면 안되는 금기 음식이란 감각과 정반대의 시그널이다. 신맛은 음식이 상했음을, 쓴맛은 독이 들어있음을 알리는 화학적 신호이다. 피해야 한다. 반대로 단맛이 나는 음식은 당장 먹어도 된다, 안전하다는 시그널을 준다. 피하긴커녕 오히려 찾아서 먹어야 한다. 소화와 흡수도 빠르다. 밤샘 등산을 하다가 초콜릿 바를 입에 물면 순식간에 잠이 확 달아나는 경험을 해본 이들은 안다.
인류 최초의 단맛 재료는 꿀일 것이다. 꽃이 생식을 위해 곤충을 유혹하느라 만든 천연 감미료는 귀한 음식이었다. 높은 신분의 귀족들이 아플 때나 특별한 날에만 먹었다. 좀 더 많은 단맛이 필요했다. 사탕수수, 사탕무 등 당분을 포함한 식물을 정제해 천연 설탕을 생산한 게 첫 번째 혁신이었다. 영어 ‘슈가(sugar)’의 어원은 곡물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샤라카라(sharakara)이다. 곡물에서 설탕을 생산하는 기술은 인도, 중동에서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설탕이 대량 생산되면서 소금처럼 식탁의 필수 향신료로 광범위하게 거래됐다. 남미 신대륙에 사탕수수 대량 재배(플랜테이션) 농장이 들어섰고, 일손을 구하느라 노예 무역이 생겨났다. 설탕이 흔해지면서 지나친 섭취를 자제하자는 운동도 일어났다.
당류는 분자 1개인 단당, 2개 이당, 여러 개 다당으로 나뉜다. 단당류에는 포도당, 과당, 갈락토스 등이 있다. 이당류는 자당, 젖당(유당), 맥아당을 말한다. 다당류는 녹말, 셀룰로오스, 글리코겐 등이다. 젖당은 모유, 우유에 많이 들어있다. 포도당 분자 1개와 갈락토스 분자 1개가 결합한 젖당은 몸 안에서 분해 효소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유 소화 불량, 즉 ‘유당불내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설탕은 포도당 분자 1개와 과당 분자 1개가 화학적으로 결합한 자당이 주성분이다.
설탕은 몸 안에서 수크라아제 분해효소를 만나면 포도당과 과당으로 쪼개진다. 과당은 단맛이 강하고 지속 시간이 짧아 계속 먹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설탕을 멈추지 못하고 먹게 되는 중독 현상의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피곤하거나 우울하면 흔히 ‘당 땡긴다’며 단맛을 찾게 된다. 포도당이나 과당이 뇌에 공급되면 세로토닌, 도파민처럼 쾌락 중추 자극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적당량을 먹으면 실제 두뇌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고 피로와 스트레스를 푸는 효과를 주는 이유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과다 섭취하면 피 속 당의 농도, 혈당이 높아져 인슐린도 과다 분비된다. 인슐린 농도가 짙어지면 당뇨병이나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신속하게 흡수돼 공복감을 없애지만 열량이 충분하지 못해 계속 먹게 만든다. 그러면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의 하루 설탕 섭취량을 25g(6티스푼)으로 권장하고 있다. 설탕이 당뇨병 등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고 비난받자 대체 감미료들이 등장했다. 화학적으로 합성한 사카린이 한동안 사용되다가 아스파탐으로, 최근엔 스테비오사이드 등 다양한 화학 감미료가 쓰이고 있다. 동시에 핀란드에서 충치 방지용으로 사용되는 자일리톨, 캐나다에서 핫케이크를 먹을 때 뿌리는 단풍나무 시럽 같은 천연 감미료도 계속 출현하고 있다.
설탕은 온도 변화에 민감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된다. 설탕물을 졸이면 시럽이 되고, 150도 이상 고온에서 졸인 다음 식히면 단단한 유리처럼 고체가 된다. 이 성질을 이용해 갖가지 동물이나 식물 모양으로 조각을 하는 설탕 공예 기법이 생겼다. 더 높은 16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설탕이 탄 것처럼 갈색으로 변하는데 이를 캐러멜화라고 한다. 길거리 음식인 달고나 역시 캐러멜의 일종이다. 캐러멜은 독특한 향과 색 때문에 요리의 풍미를 높여주는 조미료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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