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대법관이 '어퍼머티브 액션'에 반대한 까닭은?[워싱턴 현장]
1996년 백인여성 그루터의 문제 제기 '패배'
클래런스 토마스 "억지로 짜맞춘 다양성?"
미국은 더욱 '공정한 사회'로 가고 있을까?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학 입시에서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은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벌써부터 미국 사회가 또 한바탕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년 전 연방대법원에 의해 '로 앤 웨이드' 판례가 뒤집히자, 기다렸다는 듯 미국의 50개주 가운데 절반이 낙태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하는 등 분열을 경험한 터여서 더욱 그런 듯 하다.
이번 '위헌 결정'으로 당장은 대입과 관련한 혼란을 겪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수 인종들의 사회 참여 기회를 제한하는 효과 등으로 인해 광범위한 사회적 파장이 일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1961년 케네디로부터 시작된 '어퍼머티브 액션'의 역사
이에 따라 먼저 정부 차원의 고용에서부터 차별 금지가 실시됐고, 교육 기관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케네디의 뒤를 이은 존슨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정부의 사업을 따내고 싶은 업체는 소수 인종을 위한 취업 기회를 확장하는 조치를 해야한다는 지침을 만들었다.
이후 닉슨 대통령은 아예 소수 인종이 운영하는 기업체에 연방 정부의 일감을 알선해주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고등교육 기관들은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 출신 학생들에게 대학 지원 때 가산점을 주기 시작했다.
과거 흑인들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던 대학들은 그런 '원죄' 때문에 이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 측면도 있다.
햇볕이 들면 '그늘'도 생기는 법…백인 여성 '그루터'의 소송
'어퍼머티브 액션'은 주로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이 혜택을 받아 '백인과 아시아계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1996년 백인 여성이자 만학도였던 그루터는 뒤늦게 법조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시간 대학교 로스쿨에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그루터는 학부시절 성적과 로스쿨 능력 시험(LSAT)이 평균 이상이었는데도 소수 인종 우대 정책으로 인해 낙방했다고 믿고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 입학이 허락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백인이기 때문에 희망하는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어렵다면 이 또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인 것이었다.
대학측은 "인종은 입학자 선발 때 여러 고려 사항중의 하나일 뿐이며, 다양한 배경의 학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국가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반박했다.
1심에서는 그루터가 이겼으나, 항소심은 대학의 손을 들어줬고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마지막 승부가 벌어지게 됐다.
20년 전 이맘때 미 연방대법원은 5대 4로 "미시간 대학교의 신입생 선발과정이 적법했다"고 결론 지었다.
흑인 대법관이 '어퍼머티브 액션'에 반대한 이유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흑인 출신 대법관인 클래런스 토마스는 이번에도 '위헌'에 한표를 행사했지만 20년 전 '그루터 대 미시간대' 사건에서도 그루터의 편을 들었다.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같은 예일대 출신이어도 백인 동문의 경우는 사회에서 높이 평가 받는 반면 흑인은 본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소수 인종 우대 정책으로 입학했다는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시말해, 해당 정책이 선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이너리티 엘리트에 대한 편견을 키워 장기적으로는 해당 인종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었다.
토마스 대법관은 20년 전 미시간대 사건에서도 "억지로 짜맞춘 다양성은 현실을 왜곡한다"는 논리를 들며 흑인 인권 운동가 프레드릭 더글러스의 1865년 연설을 인용하기도 했다.
당시 더글러스는 "미국인들은 언제나 우리 흑인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를 알고 싶어 안달이다. 내 대답은 한결 같다. 아무 것도 해주지 말라. 우리에게 뭘 해주려고 하면 할수록 피해만 주게 되니 제발 아무 것도 해주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제 미국 사회는 더욱 공정해지는 걸까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정책이었지만 '어퍼머티브 액션'을 모두가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른 탓이다.
20년 전 미시간대 사건 판결문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정책은 근본적으로 한시적이며 언젠가는 끝내야한다는데 공감했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는 못했다. 그런데 미 연방대법원은 이제 그 시점이 됐다고 판단한 것이고, 그렇게해서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물론 연방대법원이 택한 시점이 적절한 타이밍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이 정책의 큰 수혜자로 지목되는 히스패닉을 '소수 인종'의 카테고리에 넣기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2003년 연방대법원은 '그루터 대 미시간대' 사건에서 미시간대에 미소를 보냈지만, 3년 뒤 미시간주에서는 '어퍼머티브 액션'을 아예 퇴출시켰다.
미시간주는 주민 투표를 거쳐 주 헌법을 개정해 모든 공립 대학 기관이 지원자를 인종, 성별, 피부색, 민족, 출신 국가 등에 근거해서 차별하거나 선호할 수 없도록 못박았던 것이다.
20년전 연방대법원 판결에 대한 미시간 주민들의 불만이 표출된 결과였다.
이처럼 세상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 이제 '어퍼머티브 액션'이라는 미국의 유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어떤 사람들은 대법원의 '보수 우위' 때문에 이런 낭패를 가져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그런 대법관을 임명한 대통령은 누가 뽑은 것인가. 남탓만 하기에는 면구스러운 측면이 없잖아 있다는 말이다.
이번 '위헌 결정'으로 한국계의 미 명문대 진학률이 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주판알'부터 튕기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계도 미국 사회에서 소수 인종인 것은 분명하다. 그안에서 갈라치기를 해봐야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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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CBS노컷뉴스 최철 특파원 steelcho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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