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법… 기술유출 처벌 약한 배경은

이한듬 기자 2023. 7. 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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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 - 산업계 '기술유출' 경고 등] ② 실제 처벌 솜방망이 지적 잇따라

[편집자주]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산업계 전반이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 한순간에 경쟁사 품에 들어가게 되는 것. 법에서 규정하는 처벌 내용이 강하지만 정작 선고할 때 참고되는 양형기준은 약한 탓이다. 양형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으나 적용 시점은 미지수다. 첨단 기술이 기업·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는 지금. 산업계 기술유출 실태를 점검했다.

박진성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장이 지난 6월12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국가 핵심기술인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 해외유출사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김종택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솜방망이 처벌에 활개 치는 산업스파이
②허울뿐인 법… 기술유출 처벌 약한 배경은
③기술유출 방지에 힘 쏟는 기업들… 회사 간 다툼으로 번지기도

#. 납품업체 대표 A씨와 B씨는 2015~2019년 국내 대표 철강기업 P사의 핵심 도금 기술을 중국과 미국으로 유출했다가 관계 당국에 적발됐다. 법원은 A씨와 B씨가 초범이고 죄를 반성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2021년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산업계의 고부가 첨단 기술 개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기술 유출 범죄 예방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 해외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처벌 근거를 마련해 산업기술 유출 방지에 힘을 쏟고 있지만 양형기준이 낮은 데다 각종 감경요소까지 고려하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양형기준과 처벌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 해외유출 느는데 처벌은 미흡


한국은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산업기술보호법 등을 포함해 각종 법률에서 기술의 해외 유출 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산업기술보호법상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시 3년 이상의 징역과 15억원 이하의 벌금을 병과한다. 국가핵심기술 외에 산업기술의 해외 유출은 최대 15년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 유출 시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 규정을, 방위산업기술보호법은 방위산업기술 유출 시 20년 이하 징역 또는 2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지난해엔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새로 제정해 공급망 안정화 등 국가·경제안보 및 수출·고용 등에 미치는 기술을 유출할 경우 5년 이상 징역 및 2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한국의 처벌규정은 해외 주요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은 연방경제스파이법(EEA)에따라 영업비밀을 침해해 외국 정부나 기업 등에 이익을 제공한 자에게는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달러(65억원) 이하의 벌금을 병과한다. 일본의 부정경쟁방지법은 국외 사용 목적, 상대방의 국외 사용 목적을 알면서 기술을 유출한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 또는 3000만엔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한국의 실제 처벌 결과는 규정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7~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제1심 유죄 판결 81건을 분석한 결과 유기징역(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6.2%에 불과한 반면 무죄(34.6%)나 집행유예(39.5%)는 총 74.1%였다.

실형을 선고받아도 형량이 매우 낮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에 따르면 기술유출 범죄에서 징역이 선고될 경우 통상 1년2개월~1년6개월에 그치며, 2년 이상 선고된 경우는 기술유출범죄와 함께 공갈미수, 상해 등이 경합된 사건뿐이다.

김혜정 한국지식재산연구원 글로벌법정책연구실 연구원은 '기술보호에 관한 주요 국내법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법정형을 비교했을 때 한국의 형량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볼 수는 없으나 실제 선고되는 형량은 법정형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에 못미치는 양형기준 현실화 필요


처벌 수준이 낮은 이유는 법정형 대비 양형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양형기준은 법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형량이 지나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대법원이 범죄 유형별 지켜야 할 형량 범위를 규정한 것을 말한다.

전경련에 따르면 법원은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판결을 내릴 때 '지식재산권범죄 양형기준'의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적용한다. 최소 유기징역 3년 이상, 벌금 15억원 이하를 부과할 수 있는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 사건에도 일반적인 영업비밀과 동일한 양형기준을 적용해 형량이 기본 1년∼3년6개월 수준이다.

여기에 ▲피해가 경미한 경우 ▲영업비밀이 유출되지 않고 회수된 경우 ▲진지한 반성이 있는 경우 ▲상당한 피해 회복이 이뤄진 경우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경우 등 온갖 감경요소를 적용하면 처벌 수위는 10개월∼1년6개월로 낮아진다.

이 같은 감경요소는 악용될 소지가 다분해 국가 경쟁력에 지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사건에도 솜방망이 처벌 가능성만 높인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검찰청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영업비밀 침해 판결문 60건을 분석한 결과 감경요소 중 ▲형사처벌 전력 없음(32건) ▲진지한 반성(15건)이 가장 많았다.

김혜정 연구원은 "현실을 살필 때 양형기준과 실제 선고형을 상향해 기술보호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현행 양형기준상 영업비밀 외에 산업기술에 대한 유출·침해에 대한 내용은 없는 만큼 산업기술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산업본부장은 "첨단기술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는 개별기업의 피해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훼손을 가져오는 중범죄"라며 "기술 유출 시 적용되는 양형기준을 상향조정하고 감경요소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안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는 양형기준 개선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특허청과 대검찰청은 최근 양형위원회를 열고 영업비밀 침해 등 기술유출 범죄의 양형기준을 정비대상으로 선정하고 내년 4월까지 정비할 방침이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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