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외침 외면한 아시아나…"휠체어 이용하시려면 미리 전화주셨어야"
아시아나 "사전 확인 절차 복잡해 어쩔 수 없어"
(서울=뉴스1) 김예원 박동해 기자 = 지난 7일 제주공항 국내선 청사 안. 탑승 수속장 인근 대기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행 짐을 싣고 수속 줄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이도건씨(43)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이날 탑승시간보다 1시간 반 가량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탑승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드디어 이씨의 차례가 오자 그는 힐끔거리며 직원의 표정을 살폈다. 카운터 너머의 시선이 그가 타고 있는 휠체어로 옮겨갔다.
◇ 휠체어 이용 불편, 아시아나에 7년간 개선 요구했지만 '그대로'
"기내에서 휠체어를 이용하시려면 미리 전화 주셨어야죠."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역시나'로 바뀌었다. 휠체어 이용자에 부과된 '두 번째 의무'는 7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기내에서 휠체어를 이용하시려면 인터넷 예매후 전화로 이용 유무 고지를 하셔야 합니다' 친절한 목소리에 담겨있는 '핀잔'에 이씨는 그날이 떠올랐다.
이씨는 2016년쯤부터 제주도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에 오르내리며 그는 보이지 않는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온라인으로 비행기 좌석을 예매하더라도 휠체어 사용 여부를 유선 전화로 따로 고지해야 했다.
이씨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면 당연히 그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당시의 기분을 설명했다. 그때부터 이씨의 외로운 투쟁이 시작됐다.
이씨가 주로 이용하는 항공사는 아시아나 항공이다. 항공사측으로부터 사전 고지 요청을 받은 그날부터 이씨는 비행기를 이용할 때마다 꾸준히 관련 시스템 개선을 항공사 측에 요청했다. 휠체어 이용자에게만 좌석 예매시 추가 의무를 고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제 17조에 따르면 교통사업자는 교통약자가 교통수단 및 이동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편의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탑승보조 서비스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서비스센터와의 전화 연결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도 이씨가 항공사측에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온 이유 중 하나다. 표 예매 등 '기본 기능'은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휠체어 사용 등 부가 서비스는 안내원 통화를 꼭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몇 년 전엔 3~4번씩 전화를 걸어도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별도 고지 없이 탑승 수속을 밟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핀잔 섞인 안내를 들었다"며 "이런 사소한 문제가 오래가는 것에서 장애인의 교통권과 관련한 인식이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아시아나 "배터리 유무, 휠체어 규격 등 절차 복잡"…이씨 "기술적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
아시아나항공은 휠체어 규격 확인 등 관련 절차가 복잡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의 확인 단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휠체어 이용 승객은 '도움이 필요한 승객'으로 분류돼 전동 휠체어의 배터리 분리, 전담직원 배치 등 사전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휠체어의 기내 사용 관련 세부 사항을 사전에 파악해야 휠체어 이용객의 안전한 탑승이 가능하다"며 "배터리 용량 및 국제 규격 확인은 휠체어 이용자 혼자서 파악이 힘든 면이 있다. 전화 예약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휠체어 사용 여부 자체를 온라인으로도 고지할 수 있게 하는 건 배려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배터리 등 일부 안전 문제는 유선 전화 절차가 불가피할 수 있지만 기내 휠체어 사용 여부 자체를 온라인 예매와 동시에 고지할 수 있게 하는 건 시스템 개선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씨는 "장애인 항공권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선 어차피 장애인 등록증 등을 제시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며 "항공사 측의 배려만 있다면 충분히 개선이 가능한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항공사의 사례를 보면 아시아나의 설명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대한항공의 경우 온라인 예약을 완료한 승객에 한해 부가서비스 항목에서 휠체어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체크 박스란을 제공하고 있다.
대한항공 역시 휠체어 이용객들이 애용하는 상공사다. 국내선에 한해서 등록 장애인에게 30~50% 가량의 항공 요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보통 휠체어 이용객들의 경우 운송조건과 관련해 확인할 부분이 많아 대부분 유선 통화를 거쳐야 한다"면서도 "부가서비스 신청란에 어느 구간까지 휠체어 서비스를 이용할지 등을 선택할 수 있는 칸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일부 외국 항공사의 온라인 예매 페이지에서도 휠체어 이용 여부를 사전 고지할 수 있는 선택 및 기입란이 표시돼 있다. 기내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려는 고객은 자가 휠체어 보유 여부 및 장애 중증도 등을 체크 박스에 표시한 후 세부 내용을 항공사 측과 조율하면 되는 구조다.
결국 이씨는 지난 13일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7년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만큼 기다린다고 해서 바뀌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진정서엔 비행기 좌석의 인터넷 예매시 휠체어 사용 여부를 기입할 수 있는 공란 및 체크박스 마련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유선 예약 시에도 장애인의 경우 휠체어 사용 여부 질의를 의무화하는 절차를 만들 것을 요청했다.
이씨는 이번 진정서 제출이 비행기 이용을 포함한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했다. 이씨는 "이번에 겪은 차별 내용을 SNS에 공유하자마자 주위 장애인 지인들이 본인이 겪은 부당한 경험을 공유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앞으로도 부당한 차별을 알리기 위한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kimye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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