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집 앞에 양말 한 짝 두고 사라졌다…CCTV 속 알몸 남성이 발견된 곳은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저 집에 혼자 있는데 어떤 사람이 문을 막 두드려요. 도어락을 풀려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어요."
지난 5월 10일 오전 2시 48분, 20대 여성의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지역에는 '취객이 집 문을 두드리거나 도어락을 풀려고 한다'는 신고가 잦은 편이다. 이날도 비슷한 신고가 주변 지역에서 접수돼 순찰팀이 출동한 상태였다.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 소속 최연의 순경(28)과 순찰 3팀이 신고를 받고 1분 만에 순찰차 2대를 나눠타고 피해여성의 집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 아무도 없었다. 남성 양말 한 짝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최 순경을 포함한 경찰관 6명이 2조로 나눠 한 조는 22층부터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다른 한 조는 피해자가 거주하는 층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1차 수색을 벌였지만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진 못했다. 다만 1층 비상계단 입구 쪽에서 남성 속옷 1개가 발견됐다. 순찰 3팀은 현장에서 찾은 양말과 속옷이 모두 문을 두드리다 사라진 남성의 것으로 판단했다.
최 순경은 "현장에서 판단하길 만약 남성이 여전히 옷을 벗고 활보하고 있다면 추가 신고가 접수됐을 텐데 추가 신고가 없었다"며 "아직 남성이 건물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최 순경과 순찰팀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는 한편 건물 전체를 다시 수색했다. 해당 오피스텔은 지상 22층 지하 7층 규모로 360세대가 살고 있다. 4명이 건물을 수색하는 동안 남은 2명은 50여대가 넘는 CCTV를 돌려보다 영상에 찍힌 남성을 찾아냈다.
당시 경찰이 현장에서 확인한 CCTV를 보면 한 남성이 멀쩡하게 옷을 입고 공동현관으로 들어와 1층 비상계단 쪽으로 이동한다. 피해자가 사는 층의 비상계단을 나온 남성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 상태였다. 알몸으로 문을 두드리고 도어락을 풀려던 남성은 다시 비상계단으로 사라졌다.
더욱이 해당 건물에 설치된 CCTV는 움직임을 감지할 때만 촬영하도록 돼 있었다. 남성이 이동하면서도 CCTV에 찍히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
혹시 모를 사건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현장에서 수거한 양말과 속옷은 경찰 과학수사대에 인계했다.
두 차례에 걸친 건물 수색에도 CCTV 속 나체 남성을 발견할 순 없었지만 순찰팀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남성이 여전히 오피스텔에 머물고 있다면 추가 범죄의 가능성도 있었다.
최 순경은 지난해 '나체 주거침입범'을 검거했을 때가 떠올랐다. 최 순경은 지난해 9월 신촌 인근의 한 여성 전용 고시원에 알몸으로 침입한 20대 남성 A씨를 체포했다. 당시 A씨는 여성 전용 고시원 옆 건물에 살고 있었다. A씨는 자신이 살던 건물 옥상에 올라가 판자를 대고 옆에 있는 여성 전용 고시원 옥상으로 넘어간 뒤 창문으로 한 여성의 방에 침입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최 순경과 순찰팀은 1시간 이상 수색한 끝에 자신이 거주하는 고시원의 공용화장실에 숨어 있는 A씨를 발견해 체포했다.
순찰 3팀은 남성이 만약 이 건물 거주자고 자신의 거주지로 복귀했다면 추가 범죄의 가능성은 작아진다고 봤다. 사라진 '나체남성'의 행방을 쫓기 위해 설정 시간이 모두 다른 CCTV를 돌려보며 사라진 남성의 동선을 재구성 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 나체 남성이 옷을 벗기 전의 차림 그대로 전날 오전 7시쯤 건물에서 나서던 모습이 찍힌 장면을 확인했다. 이 순간을 역추적해 남성이 몇호에 살고 있는지 찾아냈다.
경찰관들이 한참을 문을 두드린 끝에야 술에 취해 잠들었던 남성이 문을 열고 나왔다. 남성은 자신의 양말과 속옷이 어디에 갔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CCTV에 분명하게 찍혔지만 옷을 벗고 모르는 사람의 집 문을 두드린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전 5시17분쯤 남성은 출동한 경찰관과 임의동행해 신촌지구대에서 진술서를 작성했다. 최 순경이 신고자에게 문을 두드린 남성이 잡혔다는 소식을 전할 때까지 피해자는 불안에 떨며 잠을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최 순경은 "강력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 너무나 다행이었다"며 "우리팀이 팀웍이 좋아 모두 함께한 덕분에 신고자의 불안을 덜어 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0년 경찰이 된 그는 일이 바쁘고 몰리는 걸 피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한다. 신고 많기로 유명한 신촌지구대에도 자원해서 들어왔다. 지구대 근무를 마친 뒤에는 '형사'가 될 계획이다. 최 순경은 "수사과 경제팀이 일이 많이 몰려 기피부서라고 하는데 거기서 잘하면 어딜 가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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