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없는' 사회에서 다시 교양을 호명한다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교양', '고전', '독서'. 1분 남짓한 유튜브 쇼츠와 틱톡 영상이 미디어를 점령한 사회에서 이제는 누구도 선뜻 추구하지 않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최근 이 단어들이 담긴 신간이 나왔다. 책 제목은 세 단어를 이어 붙인 <교양 고전 독서>다.
사회학자이자 연신내에서 '니은서점'을 운영하는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고전'을 통해 잠들어있던 '교양'에 대한 욕망을 일깨운다. '마스터 북텐더'로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수많은 책을 추천해온 저자는 <교양 고전 독서>에서 열두 권의 고전을 꼽아 독자에게 안내한다.
열두 권의 목록에는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으로 시작해 20세기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그리고 12년전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아픈가>, 게오르크 짐멜의 <돈의 철학>이 포함됐다.
고전의 요약 서적이 넘쳐나는 서점의 '고전' 서가에서 이 책은 요약 서적이 아닌 '가이드북'의 역할을 자처한다. '고전의 완독'이라는 도착지점에 이르게 돕는다. 이를테면 고전을 읽을 때 이해가 안 되는 문장에 꽂혀 한 문장만 10번을 더 읽어보며 본인의 무지를 탓했던 기자가 책을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는 식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는 고전의 권위에 너무 눌리지 말고 이건 편집되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으로 중간중간 설사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이 등장해도 너무 신경 쓰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에 너무 매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 플라톤이 썼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다고, 짐멜이 썼다고 완벽한 책은 아닙니다.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옛날 학자도 많습니다. 그래서 고전 중에는 쓸데없이 두꺼운 책도 상당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난점과 과감하게 거리를 두면서 책을 읽는 걸 연습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 얼마나 고전 완독의 길을 포기하려던 독자를 무안하지 않게 붙잡는 말인가. 21년간 사회학을 배우며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온 학자이자 교수로 '배울만큼 배운' 지식인의 말이기에 더욱 위로를 받으며 막 놓으려던 고전을 다시 잡아볼 수 있게 된다.
멀게만 느껴졌던 고전에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더해 독자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여지를 더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첫 번째로 소개한 고전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그 책의 표지 그림인 <아테네 학당> 대한 이야기로 출발한다. 익숙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고전 너머의 세계도 만날 수 있게 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한국어 번역판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대부분 동일한 그림을 표지 디자인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테네 학당>이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취하고 있는 자세의 차이는 자주 언급됩니다.
플라톤의 손가락은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는 플라톤이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을 철학의 중심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위대한 학자들이 쓴 책 속에는 그가 살아내야만 했던 시대의 흔적이 담겨있습니다. 어떤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그 사상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인 배경을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을 통해 찾아보는 것도 책을 읽기 전 필요한 사전 준비 작업입니다."
저자는 '교양'이라는 단어가 더는 긍정의 의미로도, 부정의 의미로도 쓰이지 않는 그야말로 '교양 없는' 사회에서 다시 교양을 호명한다. 저자는 교양인의 전제조건은 많은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인식의 성장이 이뤄지는 지혜의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성장의 시간이 없다면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라도 얼마든 교양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알기 마련이다.
'교육받았지만 교양있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저자는 교양 없이 전문지식만 쌓은 '전문가 바보'가 나아가 "교양 머리가 없는" '배운 괴물'이 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교양 있다는 것은 조야한 야만성으로부터 멀어졌다는 뜻인데, 만약 배웠는데 여전히 야만적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너무 많이 배워서 학력으로 권력을 얻었고, 그 권력을 휘두른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야만적인 사람이겠지요. 가장 위험한 인물은 교육 수준과 교양이 어긋나 있는 사람, 즉 좋은 학교 나왔고 박사학위까지 있지만 교양머리 없어서 이른바 '배운 괴물'이 되는 경우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교양인'이란 "강한 호기심을 갖추고, 지식을 공공선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고, 세계의 다양성을 수용할 줄 알며, 타인을 설득하는 역량을 가지고 선하지 않은 권력에 지속적인 비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느 때보다 교양인이 필요한 시대에 고전을 통해 '교양'을 쌓아보자고 제안한다.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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