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 “한 번만이라도” vs 긱스, “우승이라면 나”[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해리 케인(30)은 토트넘 홋스퍼의 적자(嫡子)다. 10대 후반기 시절, 비록 임대로 여러 클럽을 전전하긴 했어도 단 한 번도 토트넘과 인연을 끊은 적 없다. 레이턴 오리엔트(2011년)→ 밀월(2012년)→ 노리치 시티(2012~2013년)→ 레스터 시티(2013년)에 몸담은 시절에도, 토트넘과 연(緣)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 유스팀(2004~2009년)까지 거친 케인을 ‘토트넘의 성골’이라 일컫는 배경이기도 하다.
최근 수년간 매 시즌이 끝날 때마다, 케인은 ‘이적설’에 휩싸이곤 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토트넘에 튼 둥지를 버리지 않고 깃을 사리고 날개를 쳐 왔다. 그뿐이랴. 토트넘을 비롯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 빛나는 각종 득점 기록을 새롭게 써 나갔다. 토트넘 역대 최다 득점(280골), EPL 단일 클럽 최다 득점, EPL 연간 최다 해트트릭(8회) 등은 하나하나가 눈부신 대표적 기록들이다. 물론, EPL 득점왕 3회(2015-2016, 2016-2017, 2020-2021시즌)도 케인을 돋보이게 하는 대기록이다.
그런데도 케인은 이적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22-2023시즌이 끝나고선 더욱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기 힘들 듯하다. 특정 팀을 거론하며 이적을 기정사실화한 언론 보도가 매일 쏟아질 정도다. 스스로도 굳이 이적 뉴스를 부인하지 않는다. 몸은 아직 토트넘에 있을지라도, 마음은 이미 떠난 듯싶음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왜 케인은 그토록 정들었을뿐더러 공들였던 토트넘을 떠나려 할까? 잘 알려졌다시피 우승을 향한 열망 때문이다. EPL을 누비며 한 시대를 풍미하는 세계적 골잡이이건만, 아직 우승과 손길이 닿지 않은 케인이다. 토트넘과 연을 맺은 2009년부터 14년(임대 포함)의 긴 시간이 흘렀으나, 갈망하는 우승은 냉정하게 케인을 외면했다. EPL에선, 정상 한 걸음 앞에서 쓰러진(2016-2017시즌·2위) 경험이 그나마 가장 나았다.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회(2018-2019시즌)와 EFL컵 2회(2014-2015, 2020-2021시즌) 등 포효를 터뜨리긴엔, 번번이 1%가 부족했다. 한마디로, 케인은 ‘무관의 제왕’이요, ‘불운한 골잡이’였다.
‘우승컵 수집가’ 긱스, IFFHS 발표 유럽 5대 리그 우승 트로피 최다 획득 영예
세상엔, 양과 음이 공존한다. 마찬가지로, 행운과 불운도 함께한다. 쓴웃음을 지으며 고배를 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홍소를 터뜨리며 축배를 드는 이도 존재한다. 대척점에 선 운명이라고 할까.
우승에 관한 한, 라이언 긱스(50)는 케인과 180° 다른 운명이다. 24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체스터 Utd.)에서 ‘원 클럽 맨’으로 활약하며 영광으로 점철된 운명의 길을 밟았다. 퍼거슨 감독이 열어젖힌 맨체스터 Utd. 전성시대의 영화를 한 몸에 누린 ‘행운아’였다.
‘퍼기의 아이들(Fergie's Fledglings)’ 가운데 한 명인 긱스는 ‘트로피 수집가(Trophy Collector)라 할 만하다. IFFHS(국제역사축구통계연맹)가 집계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유럽 5대 리그 우승 트로피 최다 획득의 영예를 안은 긱스다. 1990~2014년 맨체스터 Utd.에서 활약하며 EPL이 출범한 1992-1993시즌부터 2012-2013시즌까지 13회 등정의 기쁨을 만끽했다(표 참조). 케인으로선 부럽다 못해 질시할 만한 수준의 우승 경력이다.
긱스의 뒤를 네 명이 무리 지어 한 걸음 차로 쫓았다. 지난해 1월 세상을 뜬 프란시스코 헨토를 비롯해 리오넬 메시(36·인터 마이애미), 토마스 뮐러(33·바이에른 뮌헨), 킹슬레 코망(27·바이에른 뮌헨)이 각각 리그 우승컵 열두 개를 모았다.
메시는 활동 무대를 미국으로 옮겨 더는 이 레이스를 같이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은퇴한 긱스를 뛰어넘을 후보는 뮐러와 코망으로 압축되는데, IFFHS는 코망을 영순위로 꼽았다. 뮐러가 비록 독일 분데스리가 최다 우승(12회) 트로피 수집가로 이름을 올리긴 했어도, 이제 축구 선수의 전성기 나이인 20대 후반의 코망이 훨씬 더 경신은 물론 기록을 늘려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코망은 자신이 뛰었던 리그 모두에서 정상을 밟았다는 데에서도 눈길을 끈다. 프랑스 리그 1의 파리 생제르맹에서 2회,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유벤투스에서 2회,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에서 8회 등 모두 열두 번 우승컵과 입맞춤했다.
케인은 바이에른 뮌헨행이 유력시된다. 이 경우, 케인은 뮐러·코망과 손발을 맞춰 정상 도전에 나선다. 케인이 우승에 맺힌 한을 씻어 낼 뿐만 아니라, 뮐러·코망이 유럽 5대 리그 우승 트로피 최다 수집가의 영예를 안을 2023-2024시즌이 될지 궁금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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