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괴담만 탓하다 낙제점… 여당 기회주의가 셀프 발목
보수층·국힘층도 걱정 '과반'…黨政 설득실패
끼리끼리 먹방, 시찰단에 검증전가 등 변죽만
모순된 TF 이름짓고…민간전문가 중용도 늦어
"반일주의" 폭로도 민간서…與 용산 그늘만 좇아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쓰나미가 덮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노심(爐心) 용해 사고 12년여 만에, 논란 거리였던 오염수 처리·방류가 이뤄지는 수순이다. 우리 국민은 8할 가까이가 거듭 '우려'를 보냈다. 지난 5월부터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여부에도 7할 안팎의 국민이 '반대'했다는 여론조사가 잇따른 터다. 한일관계 개선 조치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을 피력하거나 "괴담은 과학을 이길 수 없다"고 입 모으던 대통령실·정부·여당으로선 난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0일 공표된 한국갤럽 자체 여론조사(6월 27~29일 설문·전국 성인 1007명·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을 보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방류가 우리나라의 해양과 수산물을 오염시킬까 봐 걱정되는지'라는 물음에 '걱정된다'는 응답이 78%에, '걱정되지 않는다'는 20%에 그쳤다. 극단적 여론편중이 드문 전화면접 설문으로도 약 8대2 분포가 나왔다. 당일 더불어민주당이 '오염수 방류 철회 촉구' 국회 결의안을 단독 처리한 '믿는 구석'이 됐을 것이다.
'매우 걱정된다'는 응답만 62%로 6할을 넘었다. 정치성향별 중도층에선 불안론이 81%(매우 걱정 66% + 걱정되는 편 15%)로 전체 평균보다 높았고 걱정되지 않는다는 여론은 18%에 그쳤다(별로 걱정 안 돼 10% + 전혀 걱정 안 돼 8%). 보수층조차 불안론이 과반(57%)으로, 걱정되지 않는다는 40%를 크게 앞선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지지정당별 국민의힘 지지층은 '걱정 53% 대 안 걱정 45%'로 격차가 한자릿수로 줄었지만 불안론이 여전히 과반이다. 정부여당으로선 지지층의 절반 이상도 설득하지 못한 실패다.
내년 총선이 10달 채 안 남았지만, 국민 8할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한 선례를 만들었으니 뼈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는 지난주와 같은 36%로 횡보, 부정평가만 1%포인트 내린 56%로 나타났는데 하방압력이 더욱 세질 것으로 보인다. 오차범위 내이지만 국민의힘(33%)은 지난주 대비 2%포인트 내리면서, 3%포인트 반등한 민주당에 다시 추월당했다. 여야 대표연설로 부각된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 공방이란 호재도 잠시, 여당이 국민 눈높이에 못 맞춰 눈총을 받은 셈이다.
여당은 지난 23일 원내지도부부터 시작해 오는 7월3일까지 국회의원들이 십수번의 수산물 오·만찬 '먹방' 일정을 갖는다고 한다. 소위 '셀럽'도 아니면서 선도효과부터 의심되는 '쇼 정치'를 택했다. 수산시장에서 '수조 바닷물'을 떠먹는 의원에게선 아예 눈을 돌리고 싶다. 그동안 대응까지 아우르면 '변죽 울리기'뿐이다.
오염수는 무엇에 오염됐고 얼마나 위험한지,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 정화 후 처리수라고 부르는 건 합당한지, 거르지 못한다는 삼중수소가 소금에서 나올 수 있는지, 자연에도 없던 위협인지, 중국 55기 원전 냉각수 삼중수소 배출은 안전한지, 한국서 직선거리 1100km에 달하는 일본 도호쿠(동북) 지방의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태평양쪽으로 방류하면 얼마나 걸려야 우리 바다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등. 애초 기초적인 논쟁에서 발 빼고 있었다.
국민의힘이 지난 5월2일 출범시킨 '우리 바다 지키기 검증 TF'의 경우 명칭부터 껄끄럽다. 일 측이 '맹물 방류'를 하는 것도 아닌데 '바다 지키기'를 내걸었으니 방류 저지 운동이라도 하나 싶었지만, 방향은 정반대였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TF 출범을 의결하며 "야당은 IAEA 등 과학적 기준으로 검증 예정인 후쿠시마 방류수에 대해 온갖 괴담을 만들어내면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했다. TF 위원장을 맡은 성일종 의원은 첫 회의 후 "중요한 것은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에 대한 신뢰성 확보 문제"라고 했다.
이름과 달리 IAEA 결정에 운명을 내맡긴 데다, "괴담"이란 비판도 일본 수산물 수입규제 해제 의혹 제기에만 향했다. 이후로도 정부의 후쿠시마 1원전 현장 검증 전문가 시찰단 파견(5월 21~26일)으로 검증 책임을 넘겼다. 민간 전문가가 검증에 동참할 것이란 'TF 관계자'발 이야기조차 빗나가고, 국책연구기관 인사들로 시찰단이 채워졌다. 시찰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의 5월31일 결과 브리핑은 오염수 시료 확보 결론이나 보강 논리 없이 장황했고, 직관적으로 국민을 안심시킬 만한 메시지가 빠졌다.
6월에도 오염수 논쟁은 겉돌았다. 민주당은 장외 선전전을 거듭하는 사이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들의 "IAEA 기준에 맞는 적합성 절차에 따른다면 굳이 반대할 건 없다" "(방류는) 일본의 주권적인 영토 내에서 이뤄지는 사항" 국회 답변을 끌어왔다. 미국소 광우병·사드(THAAD) 전자파 괴담 진영의 선전이라거나, 내각 인사들이 '정화된 오염수는 마실 수 있다'는 간증 릴레이를 하거나, '괴담 정치가 어민을 잡는다'는 역공도 폈지만 '오염수가 안전하냐'는 추궁엔 번번이 말을 돌렸다.
그 대답은 여당이 외면하던 민간 전문가들의 몫이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지난 6일 '나꼼수 출신' 주진우씨의 KBS라디오 프로그램 대담에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건건이 반박했다. 정범진 교수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전혀 처리시설 없이 생성됐던 오염수를 몇개월간 하루 300톤씩 그대로 바다에 방류했다"며 방사선량 기준 "당시 배출량의 0.1% 미만" 오염수를 30년 동안 내보낸다고 설명했다. 그 열흘 뒤 여당 공보 관계자에게 내용을 물었지만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여당은 뒤늦게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를 지난 20일 의원총회 연사로 초청해 '후쿠시마 방류 안전한가' 특강을 들었다. 검증TF 민간위원 위촉 한달 반 만의 일이기도 했다. "(알프스는) 기준을 만족할 때까지 거른다", "바다에 방류할 경우 감시하기 좋다", "우리나라 청정식단을 통한 방사선 피폭량이 연간 500 μSv (1000분의1시버트)…방류로 인한 우리나라 피폭은 연간 1 nSv(1억분의1시버트)에 크게 미달" 등 일반론적 분석 잣대가 제공됐다. 변화 시도는 주목할만 했지만 너무 늦은 게 탈이다.
그 와중 정부 대응은 쳇바퀴였다. 지난 18일 당정은 고위급 협의 결과 해양 방사능 조사지점을 배증(92→200곳)하고 세슘·삼중수소 농도분석 주기를 1~3달에서 2주로 좁혔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20일 일일브리핑에서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미리 판단을 한 적도, 방류에 동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4대강 녹조라떼' 등 괴담을 반박해온 한 환경학자는 "쓸데없이 예산만 바다에 가서 뿌린다"며 "(원전사고 이후) 아무 문제 없던 12년 세월이 확실한 증거인데 광우병과 비슷하게 간다"고 지적했다.
진영싸움을 노정시킨 것도 여당이 아닌 민간인사였다. 지난 28일 '삼민투 위원장' 출신 횟집 사장 함운경씨가 친윤(親윤석열)계 의원모임 '국민공감' 연사로 초청돼 "이 싸움은 '과학과 괴담'의 싸움이기도 하고 더 크게는 반일민족주의와의 싸움, 자유를 위한 동맹을 지키는 싸움"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공산진영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주체사상보다 강한 무기'로서 반일감정을 퍼뜨린 게 1980년대 극좌 운동권이라고 폭로했다. 여당은 '동의하느냐'는 언론 질문에 미온적인 답변으로, 사실상 한번 듣는 데 그쳤다.
대중(對中) 굴종 논란 속에도 민주당이 공식 논평에서 중국·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령' 홍콩과 마카오의 대일(對日)발표까지 국제여론처럼 전하는 등 적극적인 것과 대조된다. 여당은 '괴담이 정부 발목을 잡는다'지만, 대국민 설득이 필요한 때 정론(正論)을 회피하는 기회주의부터 자책해야할 것 같다. 거꾸로 공정수능이 '고소득 학원강사 단죄론'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일탈 등에 내부 제동을 거는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여당이 '용산의 그늘'에 엎드려 있는 사이 '윤기친람' 리스크가 상수(常數)가 될 판이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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