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통보제 도입되지만, 병원 밖 사각지대 ‘나홀로 출산’은 여전

세종=손덕호 기자 2023. 7. 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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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 도입되더라도
‘나홀로 출산’은 계속 사각지대
병원 밖 출생도 보호할 수 있는 법안 발의돼

산부인과에서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가 내년에 도입된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유령 아동’이 없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의료기관을 가지 않고 자택에서 스스로 아이를 낳는 경우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막을 방법이 여전히 없다. 이 같은 ‘사각 지대’를 막기 위해 ‘나홀로 출산’의 경우에도 출생신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병원 신생아실. / 조선 DB

◇출생신고 되지 않은 2236명도 병원서 태어난 아이만 집계

국회는 지난 30일 본회의를 열어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자체에 통보하고,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동은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신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를 감사하는 과정에서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드러나는 등 영아 살해·유기 사건이 잇따르자,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입법이 빠르게 진행됐다.

출산통보제와 연동되어 있는 보호출산제 도입 논의도 진행될 예정이다. 보호출산제는 미혼모나 미성년자 임산부 등 아이를 낳더라도 출생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꺼리는 산모가 신원을 숨기고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기록을 남기지 않기를 원하는 산모는 병원 밖에서 출산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두 제도는 동시에 도입되어야 한다.

다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야당 위원들은 한부모 가족이나 청소년 부모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게 먼저라는 입장이다. 여야는 출생통보제 시행 전 보호출산제가 도입될 수 있도록 논의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출산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모두 산모가 산부인과를 찾아 진찰을 받고 아이를 낳은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문제가 있다. ‘수원 냉장고 영유아 시신’ 사건은 의료기관이 신생아에게 예방접종을 할 수 있게 부여하는 ‘임시 신생아 번호’와 출생신고를 대조하면서 드러났다. 임시 신생아 번호조차 없는 병원 밖 출산은 정부가 전수조사를 벌여도 파악할 수 없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뉴스1

◇태어나는 아이 중 0.5%는 병원 밖 출생…신고 까다로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통계청 자료로 분석한 결과, 2019년 한국 출생아 30만2676명 중 자택 988명, 그 외 장소 396명, 미상 172명 등 1556명(0.5%)이 병원 외의 장소에서 태어났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 감사 과정에서 밝혀낸 의료기관에서 태어났으나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아동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간 2236명으로, 연간 280명 수준이다. 이보다 5배 많은 아이들이 병원 밖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병원 외 출산은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기 어렵다. 출생신고를 할 때 첨부해야 하는 출생증명서를 발급해줄 의료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가족관계 등록법에 따르면 출생증명서가 없을 경우 ‘분만에 직접 관여한 자’가 모의 출산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한 서면 등의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규정이 모호해 주민센터에서 출생신고를 거부하기도 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에 따르면, 16세 어머니가 자택에서 출산하고 17세 아버지가 탯줄을 자르는 등 출산을 도왔지만, 주민센터는 출생신고를 거부하고 법원으로 가라는 안내만 했다. 주민센터 담당자가 ‘탯줄을 자른 자’를 분만에 직접 관여한 자’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모의 진료기록 사본이 필요해 병원을 방문한 적이 없이 ‘나홀로 출산’을 택한 산모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분만 과정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을 정도로 가까운 이들이 없는 산모가 갓 출산한 아이를 두고 법원에 출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안정된 후 미혼모 지원단체 도움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지만, 그 동안 예방접종과 한부모가족생계급여, 양육비, 보육비, 아동수당 지원을 받을 수 없다.

◇美·캐나다처럼 ‘출산 목격’ 진술로 출생신고하고 DNA 검사 지원 법안 나와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자택에서 의료진 도움 없이 출산한 경우 정부 기관에 목격자 신원을 제공하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목격자 범위에는 배우자, 가족, 친구, 긴급구조대원 등이 포함된다. 캐나다 앨버타주에서는 나홀로 출산의 경우 임신 사실을 목격한 사람의 진술서로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임신 진단서를 대체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분만 당시 아이가 생존해 있다는 진술로 출생신고 요건이 충족된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9일 이 같은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도록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존 출생신고 의무자인 ‘부모, 동거친족 및 분만에 관여한 의사·조산사 또는 그 밖의 사람’에서 의미가 애매한 ‘그 밖의 사람’을 ‘출산을 목격하고 조력한 자’로 명확하게 하는 내용이다. 또 119 구급대원의 출동기록을 첨부하면 의사나 조산사가 발급하는 출생증명서를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나홀로 출산’한 경우 DNA 검사 비용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김민철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해 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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