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현장을가다] ⑦전국 호령한 해산물거리 살린 맥주축제
상권 붕괴하며 상가 100여개만 남아 명맥 이어가던 중 주말마다 축제 개최
안주는 철저히 골목 상가에서 구입하도록 하는 등 상인 이익 최우선시
협동조합 만들어 빈 상가 맥줏집·여관으로 개조…상권 활성화 거점 역할
[※ 편집자 주 = 현대 도시의 이면 곳곳에는 쇠퇴로 인한 도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와 신도시 개발, 기존 시설의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쇠퇴는 갈수록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쇠퇴한 도시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목포=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전남 목포시 만호동의 '건해산물(말린 해산물) 상가 거리'는 말린 김이나 멸치, 미역, 오징어 등의 해산물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다. 목포항과 목포역이 인근에 있어 목포뿐만 아니라 멀리 신안과 완도, 진도의 각종 해산물이 이곳을 거쳐 유통됐다. 워낙 많은 물량을 취급하다 보니 전국의 건해산물 가격은 대부분 이곳에서 결정됐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고 한다. 한때 400여개의 상가가 골목 곳곳에 빈틈 없이 자리를 잡았고 '건해산물 상가 거리에 돈이 안 돌면 목포에 돈이 안 돈다'고 할 만큼 돈이 흔했던 목포의 핵심 상권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며 건해산물 집산지의 기능은 빠르게 쇠퇴했고 순식간에 상권이 붕괴했다. 남은 상가가 100개도 되지 않을 정도의 급격한 쇠락이었다. 특히나 도매업을 주로 하는 데다 전화 주문이 일상화되면서 거리는 종일 사람 한 명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막해졌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과 차로 북적거렸던 거리 풍경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맥주에 제격인 마른 해산물 거리 특성 살린 축제 열자"
그랬던 건해산물 상가 거리는 '건해산물에 맥주를 더한 축제를 열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작은 아이디어를 통해 아연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맥주와 찰떡궁합인 마른 해산물을 주로 취급하는 거리의 특성을 살린 축제로 상권 활성화를 꾀해보자는 것이었다. 특히 이곳의 건해산물은 인근 바다에서 바로 가져온 것들이어서 신선하고 맛있는 데다 가격도 저렴한 장점이 있었다. 축제 이름도 건어물과 맥주의 앞 글자를 딴 '건맥1897'로 했다. 1897은 인근의 목포항이 개항한 해에서 따온 것이다. 2019년 9월의 일이었다.
도매상들인 상인들은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맥주 안주 팔아서 몇 푼이나 남겠느냐는 생각들이었다. 박창수(48) 상인회장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성공한다면 거리가 활성화하고 매출도 대폭 늘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차량을 통제하고 거리를 따라 길게 탁자와 의자를 가게 앞에 내놓았다. 안주는 손님들이 상가 거리의 가게에서 사다 먹도록 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축제가 흔해 빠진 세상인데 이 볼품 없는 거리에 얼마나 사람이 올까 싶었다. 그러나 축제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날 하루 방문객은 무려 6천명이 넘었다.
박 회장은 "도매상만 가끔 오가는 완전히 죽은 거리였다. 축제라고는 해본 적도 없었던 상인들이었다"며 "상인들 대부분이 마지못해 참여했는데,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모두 입이 쩍 벌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여름철 토요일마다 축제…소소한 즐거움까지 갖춰 인산인해
성공에 힘입어 상인회는 건맥축제를 여름철을 전후해 토요일마다 연다. 대략 6월부터 9월까지 15차례가량이다. 축제의 이름은 '토요일은 밤이 좋다'는 뜻의 '토야호'로 정했다. 축제를 거듭할수록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더해졌다. 먼저 상인들과 인근의 주요 업체들, 기관들이 자신들만의 물품을 후원하도록 했다. 문구점에서는 문구를, 카페나 식당 또는 빵집에서는 이용권을 내놓아 경품 추첨 행사에 쓴다. 후원하는 업소와 기관만 축제 때마다 20∼30여개에 이르고, 덕분에 축제 참가자들은 술 한잔 마시면서 경품을 챙기는 재미까지 맛본다. 후원하는 업소나 기관들은 톡톡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맥주 빨리 마시기 왕, 장기자랑 왕 등을 선발하는 이벤트도 연다. 1만원이면 생맥주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술꾼들에게는 큰 매력이다. 보통 300개 안팎의 좌석을 마련하는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매번 성황을 이루는 것은 이런 소소한 즐거움들이 더해진 결과다.
축제 성공으로 가게 매출 껑충…전화 주문도 이어져
토야호의 성공은 건해산물 상가 거리의 부활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축제 때마다 가게 매출이 껑충 뛴다. 모든 안주를 건해산물 상가 거리에서 사다 먹도록 했기 때문이다. 축제장을 찾았다가 이곳의 건해산물 맛에 빠져든 전국의 관광객들이 꾸준히 해오는 주문도 적지 않다. 건해산물 상가 거리가 널리 알려지면서 얻는 홍보 효과도 크다. 축제는 오후 10시 안에 마무리한다. 자연스럽게 2차를 인근 상가에서 하도록 해 온기를 두루 나눠주기 위한 배려다.
태양상회 김양진(51) 대표는 "이곳 상인들은 모두 주문 한건에 최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어치씩을 파는 도매상들"이라며 "솔직히 처음에는 개당 2천∼5천원짜리 안주를 팔라는 말에 코웃음을 쳤다"고 회상했다.
김 대표는 "그런데 축젯날이면 5시간 남짓한 시간에 50만원어치 이상이 팔렸다"면서 "장사가 갈수록 어려워진 터에 도매일을 하면서 추가로 나오는 매출이니 쏠쏠했다. 손님들이 '맛있었다'면서 나중에 전화로 주문하는 경우들도 제법 많았다"고 전했다.
상인들은 이제 축제 때면 으레 다양한 건어물을 소규모로 포장해 내놓는다. 도매만 하던 상인들이 소매까지 겸하는, 업종의 변화까지 가져온 것이다.
축제의 성공과 이에 힘입은 상권 활성화를 목격한 상인들은 의기투합해 '건맥1897 협동조합'을 만드는 데로 나아갔다. 상인과 주민 160여명이 50만∼500만원씩을 출자해 8천500만원을 모았다. 협동조합을 통해 축제를 안정적이고 지속해 열면서 상가를 되살리자는 의지였다. 2020년 7월에는 오랫동안 비어있던 상가 거리의 3층짜리 건물을 사들여 맥주 가게 겸 여관으로 리모델링했다. 건해산물 거리의 거점 공간으로 삼고 연중 영업을 하면서 상가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건물 매입비 4억7천만원과 리모델링비 5억여원을 들여 1층은 맥줏집, 2층과 3층은 여관인 '1897건맥 펍&스테이'를 열었다. 상인과 주민들이 공동으로 펍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빈 상가 맥줏집·여관으로 개조…조합 안정적 수익 마련
덕분에 축제 때만 북적거리는 골목에 연중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관 역시 상가 활성화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이용료가 객실당 하루 5만∼7만원대로 저렴한 데다 1층 펍에서 간단한 맥주와 안주까지 무료로 줘 인기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안정적인 수익은 협동조합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토대이기도 하다.
박 회장은 "1897건맥 펍&스테이 역시 많은 사람이 이 골목을 찾아오고 이 골목의 건해산물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상권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며 "손님이 많아 상시 직원 5명의 인건비를 충당하기에는 넉넉할 정도로 수익도 괜찮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 측은 앞으로 직접 수제 맥주를 만들어 펍과 축제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대기업의 맥주를 가져다 파는 것보다 훨씬 지역의 농업과 산업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고용 창출에도 큰 효과를 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맥주 안주용 소포장 세트를 개발하고 온라인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이들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금은 상인들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에도 쓸 계획이다.
건맥1897 협동조합에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한국관광공사 목포관광두레의 정우영 PD는 "건맥1897 협동조합의 성공은 상가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면서 상인의 이익을 극대화한 축제를 만들어낸 기획력과 상인들 사이의 끈끈한 유대관계, 지도부의 헌신적 노력, 목포시도시재생지원센터 등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두루 어우러진 결과"라고 짚었다.
박 회장은 "건맥1897을 지역의 특화 브랜드로 만들어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우리 협동조합의 목적"이라면서 "조합원의 이익을 극대화하며 지역사회에도 공헌하는 상권 재생사업의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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