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고진의 실패한 반란, 푸틴의 스트롱맨 마스크 벗길까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불과 200㎞ 남짓 앞두고 멈춰 섰다.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그룹의 ‘군사반란’은 채 24시간도 지속되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마지막으로 군사쿠데타가 벌어진 것은 1991년 8월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개방에 불만은 품은 군부가 일으킨 당시 쿠데타도 ‘사흘 천하’로 막을 내렸다. 불과 넉 달 뒤인 그해 12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은 해체됐다. 2023년 6월 미수에 그친 군사반란은 어떤 파장을 불러올 것인가?
전과자에서 수완 좋은 사업가, 용병기업 수장으로
바그너그룹 창설자인 예브게니 빅토로비치 프리고진은 러시아 여느 올리가르히(신흥재벌)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러시아 전문매체 <메두자>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1961년 옛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프리고진은 어려서부터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를 꿈꿨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자연스레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절도 등으로 소년원을 들락였고, 20살 때인 1981년엔 조직범죄 가담 혐의로 체포됐다.
9년여의 형기를 마치고 1990년 석방된 그는 양아버지와 함께 소시지 가판을 열었는데, “돈을 세기가 바쁠 지경”으로 장사가 잘됐단다. 이후 그는 식료품업에도 손댔고, 1990년대 중반부터 ‘포크커틀릿 안주에 보드카 마시는 것에 질린’ 신흥 부자들을 겨냥한 고급 식당 사업에 뛰어들었다.
프리고진이 거리에서 소시지를 팔기 시작할 무렵인 1990년 5월 동독 드레스덴에서 근무하며 베를린장벽 붕괴를 지켜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국가보안위원회(KGB) 중견 요원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정부에서 외자 유치 등 국제문제 자문위원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시장실 대외관계위원장을 거쳐, 1994년 3월 친정부 성향의 ‘우리집 러시아당’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부 창설을 주도하고 지부장까지 지냈다. 이후 그의 정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1997년 3월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부비서실장으로 발탁돼 중앙 정치 무대로 옮겨간 그는, 이듬해 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국장에 임명됐다. 이어 1년 남짓 만인 1999년 8월엔 총리로 지명됐다. 옐친 당시 대통령은 공공연히 그를 ‘후계자’로 칭했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이다.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하던 시절 경호원으로 일한 ‘로만 체포프’란 인물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체포프는 지역 경제권을 쥔 범죄조직과 긴밀히 연계돼 있었다. 그가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의 연계고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면서, 프리고진도 사업 무대를 모스크바까지 넓혀갔다.
푸틴 대통령이 2000년 크렘린(대통령궁) 주인이 된 뒤, 프리고진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외국 귀빈 접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2018년 2월18일치에서 “2001년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 부부가 다녀갔고, 2002년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은 2003년 자신의 생일 파티를 프리고진의 식당에서 열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국 대통령선거·중간선거에 여론조작 개입도
이후 프리고진은 크렘린은 물론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각급 학교 급식과 군부대 급식·세탁업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그는 눈먼 정부 조달시장에서 막대한 부를 쌓아갔다.
프리고진은 단순히 수완 좋은 사업가만이 아니었다. 그는 러시아 정부가 직접 하기 어려운 일을 했고, 그것으로 러시아 밖에까지 이름을 알렸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 정규군을 대신해 시리아·리비아의 전장과 아프리카 각국의 독재자 뒷배를 봐주는 일을 해온 바그너그룹이 그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댓글 부대’를 동원해 인터넷 여론 조작을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리서치에이전시’(IRA)란 업체다.
바그너그룹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4년 초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크림(크름)반도를 강제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기 시작한 무렵이다. 이때부터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는 물론 시리아와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모잠비크, 말리 등지에 바그너그룹 소속 용병들을 파견했다. 러시아 전문가인 킴벌리 마틴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정치학)는 2022년 9월21일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바그너그룹은 러시아군 정보총국(GRU)과 긴밀히 연계됐고, 러시아 정부의 요구에 따라 움직인다”며 “요인 경호나 군경 훈련 업무를 맡거나 실전에 투입되기도 하고, 광산이나 유전 지대 보안 업무를 맡기도 한다”고 전했다.
‘바그너그룹’이란 이름은 이 업체를 초기부터 이끈 것으로 알려진 베일에 싸인 인물인 드미트리 우트킨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GRU 산하 특수전부대(스페츠나츠) 장교 출신으로 신나치주의자이던 우트킨이 철저한 반유대주의자란 이유로 나치 정권의 사랑을 받았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게서 자신이 지휘할 용병조직의 이름을 따온 게다.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도 바그너그룹과 자신의 관계를 부인했다.
프리고진이 ‘세계적 인물’이 된 것은 바그너그룹보다 여론조작 업체인 IRA의 힘이 컸다. 2018년 2월16일 미국 워싱턴 연방법원이 공개한 공소장을 보면, IRA와 프리고진이 소유한 콩코드매니지먼트·콩코드케이터링 등 3개 업체와 프리고진을 포함한 13명이 “2014년 초부터 2018년 2월까지 인터넷을 통해 활동하면서, 2016년 미국 대선과 2018년 중간선거에 개입했다”고 적혀 있다. 당일 프리고진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됨에 따라 미 연방수사국(FBI)은 현상금 25만달러를 걸고 프리고진을 지명수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쇼이구 국방장관과 누적된 갈등 폭발
IRA와 러시아군 정찰총국의 연계 정황은 구체적이지 않지만, 비슷한 시기 정찰총국도 전자우편 해킹 등을 통해 미국 선거 개입을 시도한 바 있다. IRA는 아프리카 각국에서도 선거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포착됐는데, 이들의 활동은 바그너그룹과도 맞물려 있다. 여론 조작과 무력 사용이 ‘프리고진 제국’을 만든 두 축이란 얘기다.
프리고진은 2019년 IRA를 애국미디어그룹(PMG)으로 확대해 ‘오늘의 경제’ ‘오늘의 정치’ 등의 뉴스 사이트를 개설했다. 또 2022년 2월 말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엔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에 ‘사이버프런트-Z’란 채널을 개설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는 유명 인사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바그너그룹과 마찬가지로 IRA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2023년 2월에야 “서방의 추악하고 공세적인 반러시아 선동에 맞설 사이버 전사가 필요하다”며 뒤늦게 이를 인정했다.
반란을 부른 ‘악연’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프리고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갈등을 빚었다. ‘길거리 출신’인 프리고진과 달리 쇼이구 장관은 공산당 간부이던 부모 밑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다. 프리고진과 마찬가지로 쇼이구 장관 역시 군 출신이 아니어서, 야전 전투 경험은 전무하다. 우크라이나 전황이 안 좋아질수록 전쟁의 향방을 놓고 두 사람의 견해차도 극심해졌다.
개전 이후 10개월여에 걸친 소모전 끝에 러시아가 2023년 5월21일 점령에 성공한 우크라이나 동부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전투로 바그너그룹 병력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프리고진은 쇼이구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탄약 등 병참 지원을 제때 해주지 않아 피해가 컸고, 전투 성과까지 뺏어갔다고 맹비난을 퍼부은 바 있다.
쇼이구 장관 쪽도 가만있지 않았다. 러시아 국방부는 6월11일 훈령을 내어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된 40여 개 ‘의용군’ 조직에 7월1일까지 군 당국과 ‘공식 계약’을 체결하라고 명했다. 사실상 바그너그룹을 포함한 민병조직을 정규군으로 흡수·통합하겠다는 뜻이다. 프리고진은 즉각 “바그너그룹이 효율적인 이유는 무능한 쇼이구 장관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마저 쇼이구 장관 손을 들어줬다. 프리고진이 모스크바를 향한 분노의 질주에 나선 직접적인 이유다.
측근의 반란, ‘푸틴 제국’에 나비효과 불러일으킬까
“푸틴 대통령이 쓰고 있던 ‘스트롱맨’ 마스크가 벗겨졌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6월26일 이렇게 보도했다. 미수에 그친 프리고진의 반란이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프리고진이 망명지로 삼은 벨라루스가 사실상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점에서 그와 바그너그룹 병력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다. 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시엔엔>(CNN) 방송에 출연해 “푸틴 대통령이 ‘반란의 수괴’를 처벌하지 않고 놔줬다는 점에서 국내외로 위상에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타격이 회복 불가능한지는 상황을 좀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다. 우크라이나 쪽도 섣불리 몰아붙일 게 아니라, 기존 작전을 이어가면서 사태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의 실패한 반란이 몰고 올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가늠조차 어렵다는 뜻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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