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향자·금태섭 등 ‘창당 바람’ 부는데… ‘제3당 잔혹사’ 굴레 끊을까
현역 정치인 영입 대신 새로운 인물로 정체성 구축 움직임
제3당의 운명, 한국 정치史서 ‘생기고 사라지고’ 반복
전문가들 “내년 총선서 제3당 생존하려면 ‘대안 정치’ 증명해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를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국민 3명 중 1명꼴인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제3지대’를 여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희망’을 창당한 양향자 무소속 의원을 비롯해 수도권 30석을 목표로 창당을 준비 중인 금태섭 전 의원, ‘재창당’이라는 말로 창당 가능성을 열어둔 류호정·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제3지대’가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이들의 행보가 ‘제3당 잔혹사’ 굴레까지 끊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거대 양당과의 차별점을 두면서도 ‘대안 정치’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만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한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으로 양분화된 진영 논리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정치적 피로감은 두 자릿수 무당층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7~29일 조사 결과(만 18세 이상 1007명 대상·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무당층 비율은 28%를 기록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도는 각각 33%와 34%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극단 정치 그만!”… 총선 앞두고 제3지대 ‘바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도·무당층을 잡기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시작되는 모양새다. 지난달 26일 양향자 의원은 ‘한국의희망’을 창당하고 ‘국회의원 특권 모두 포기’를 공식화했다. 그는 “진영논리와 부패에 빠진 나쁜 정치를 ‘좋은 정치’로, 낡고 비효율적인 정치를 과학기술에 기반한 ‘과학 정치’로, 그들만의 특권을 버리고 국민 삶을 바꾸는 ‘실용·생활 정치’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양 의원은 “지금의 소속된 정당의 알을 깨고 나오실 분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기성 정당의 현역 의원 참여 유도 대신 새로운 정당의 행보를 이어가겠다고도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가장 먼저 창당 가능성을 거론했던 금태섭 전 의원도 수도권 30석을 목표로 창당을 추진하고 있다. 금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제3지대였던 안철수 캠프에서 정치에 입문한 경험이 있다. 제3당의 한계와 보완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상태다. 이는 지난달 13일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에서 보여준 금 전 의원의 신당 관련 구상을 통해 드러났다. 이날 금 전 의원은 “기존 정치인보다 우리 정치에 새 시각, 활력을 제공할 젊은 분들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오는 9월 신당 창당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류호정·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기존 정치 세력과의 연대보다는 ‘제3지대 정체성’을 뚜렷하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들은 현재 ‘정치 유니온 세 번째 권력(세 번째 권력)’의 주축을 맡아 진보·보수를 뛰어넘은 ‘탈이념 제3지대론’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 4월 15일 세 번째 권력 출범식에서 이들은 ▲노동조합의 이익 수호에 그치는 것 ▲민주당의 왼쪽을 자처해 잔여 권력에 기대는 사실상 위성정당의 행태 ▲폐쇄적 운동권 정당 등을 넘어서야 한다며 “새로운 정치인이라면 기존의 보수·진보에 모두 존재하는 권위주의에 맞서 자유주의적 다원성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소멸 아니면 흡수 합당… 1987년부터 이어진 ‘제3당 잔혹사’
이들은 과연 ‘제3당 잔혹사’의 굴레를 끊을 수 있을까. 한국 정치사에서 총선 전에 중도·무당층 표심을 잡기 위해 새롭게 창당한 제3당은 이미 여럿 있었다. 때때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신당은 두 차례 이상 총선을 이어가지 못한 채 해산되거나 기성 정당에 흡수되는 운명을 맞았다.
1987년 이후 내로라하는 유력 정치인들은 제3당을 만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박찬종의 ‘신정당’, 이인제의 ‘국민신당’, 정몽준의 ‘국민통합21′,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등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한때 원내 50석의 위세를 펼쳤던 김종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도 2006년에 사라졌다.
이후로도 제3당의 창당 역사는 계속됐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이회창 총재가 이끌었던 ‘자유선진당’은 원내 18석을 얻어 3석의 창조한국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해 제3 원내교섭단체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겨우 5석만 확보해 같은 해 11월 새누리당에 흡수 합당됐다.
현역 정치인 중 제3지대를 표방했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김한길 의원 등을 중심으로 2016년 창당한 ‘국민의당’은 제20대 총선에서 38석을 차지하면서 ‘제3당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2017년 안 의원이 대선 패배한 뒤 바른정당과 합당했다. 이후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한 안 의원은 국민의당을 재창당했지만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3석을 얻은 게 전부였다.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안 의원은 당시 국민의힘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과 단일화하면서 국민의당은 국민의힘에 흡수 합당됐다.
◇전문가들 “제3당, 기성 정치의 자극제 역할… ‘대안 정치’ 증명 못 한다면 잔혹사 반복”
전문가들은 제3당이 기성 정치에 혐오를 느낀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되거나 거대 양당의 극단 정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된 점은 높게 평가한다면서도, 단순히 ‘거대 양당의 대척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는 어렵다고 본다. 현재 국민들이 피로를 느끼는 정치 국면에서 ‘대안 정치’라는 확신을 주지 않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수는 “거대 양당의 독점 정치를 깨보겠다는 패기가 제3당이 정치 혐오에 찌든 유권자에게 준 새로운 선택지였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단순히 중도·무당층 비율이 높고 거대 양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겠다는 이유만으로 제3당을 창당한다면 큰 오산이다. 인물이나 명분, 비전이나 가치 등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잠깐 반짝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공감과 논쟁센터) 소장은 “여태껏 제3당은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를 타파해줬으면 하는 국민적 염원을 반영하기 위한 움직임에서 나왔고, 한국 정치사에 자극제가 된 것도 맞는다”면서도 “다만 지금 창당된 제3당을 하나씩 보면, 구심점 있는 상징적 인물이 없고 정체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단 세우는 ‘3당 난립’의 모습으로 읽힐 수도 있어서 이게 얼마나 국민들에게 설득이 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선은 인물과 지역 기반에 따라 결판나는데 유권자 입장에서 이번 제3당에 투표해야 할 매력적인 요인이 없다. 적어도 유력한 대권주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총선 끝물에서 흡수 합당될 때 본인의 몸값을 올려 기성 정당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선거구제에서 중도·무당층 유권자들은 사표(死票) 방지 심리 때문에 기성 정당을 찍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제3당 잔혹사는 되풀이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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