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전담반 SIU]② 일확천금 노린 교사의 사기극… 전직 경찰이 파헤쳐
역기운동 중 사고로 허리 골절 주장… 4억원 청구
강력반 형사 출신 SIU 팀장, 1년여 추적 끝 거짓 밝혀
사고난 헬스장서 버젓이 운동, 외발자전거 타는 영상도 올려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사람이 설마 거짓말을 할까 싶었다. 연기가 조금만 더 자연스러웠다면, 선량한 고객에게 지급됐어야 할 수억원의 보험금이 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A생명보험사에서 보험금 지급 업무를 10년 넘게 해 왔던 직원 김모씨는 지난 2015년 접수했던 한 장해보험금 청구 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손해사정사로부터 상해 정도를 과장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청구인의 직업이나 자산, 배경이 일반적으로 보험사기를 시도하는 사람들과 사뭇 달랐던 점이 김씨를 혼란스럽게 했다.
당시 보험금을 청구한 인물은 부산광역시의 한 공립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던 50대 후반의 B씨였다. 그는 피트니스클럽에서 벤치프레스 운동을 하던 중 역기가 가슴에 떨어져 수술을 받은 후 허리를 거의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A생명보험에 4억원의 장해보험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B씨는 정년을 앞둔 교사답게 제법 많은 자산을 축적한 중산층이었다. 보험 가입 서류에 적힌 그의 집 주소는 부산에서 평균 집값으로 3위권 안에 들어가는 지역이었다. 퇴직 후에는 오랜 근무 기간에 걸맞는 두둑한 교직원 연금까지 받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보험사기를 시도할 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어 보였다.
일반적인 보험사기범들과 달랐던 점은 또 있었다. 보통 사기범들은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여러 보험사 상품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고, 가입 후 사고를 조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은 편이다. 그러나 B씨의 경우 가입한 보험사는 A생명보험 뿐이었고, 오랜 기간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입해 온 우량고객이었다.
결국 이 청구 건은 보험사기 특별조사팀 SIU(Special Investigation Unit)의 조사 결과 보험사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직 경찰 출신의 A생명보험 SIU 김모 팀장은 1년이 넘는 추적과 탐색 끝에 결정적 단서들을 확보하고 B씨가 벌인 사기극의 전말을 밝혀냈다.
◇ 1년여에 걸친 추적조사… 결정적 단서는 SNS에 올라온 ‘외발자전거’
경찰 수사와 보험사 SIU 조사는 종이 한 장 차이다. 결정적 단서를 눈으로 확인하고 손에 넣을 때까지 뒤를 따르며 추적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김 팀장은 경찰에서 7년을 근무한 후 A생명보험 SIU에 합류했다. 보통 사기를 포함한 경제범죄 수사는 경찰 지능팀이 담당하는데, 김 팀장은 주로 강력반에서 근무하면서 숱한 살인과 강·절도 사건을 맡았다. 강력반 형사로 일하면서 잠복수사와 용의자의 주변 탐색은 그의 일상이 됐다.
B씨의 보험사기 여부를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후 김 팀장은 그의 동선부터 확보하는데 매달렸다. 보험 청약서에 적힌 거주지와 직장에 주차된 수백대의 차량에 놓인 연락처를 일일이 확인해 B씨의 차량을 확인했다. 이후 김 팀장과 SIU 팀원들은 교대 시간을 나눠 B씨가 출근 후 귀가할 때까지 그의 뒤를 따랐다. 주말에도 예외는 없었다.
첫 번째로 B씨의 보험사기 의심 정황을 포착한 시점은 수 개월이 지난 뒤였다. 그가 사고를 당했다는 부산 모 호텔의 피트니스클럽을 다시 찾아 운동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보통 큰 사고를 겪은 피해자들은 당시 상황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해당 장소를 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B씨는 보험금을 청구한 후 몇 개월 뒤부터 피트니스클럽을 자주 출입했다고 한다.
김 팀장과 SIU 팀원들은 피트니스클럽의 일일 회원권을 끊어 B씨가 운동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의심스러운 그의 행동을 뚜렷하게 확인했다.
B씨는 사고 후 가슴과 허리 부위 척추에 핀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6개월이 지났지만, 허리를 좌우, 앞뒤로 15도 이상 움직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장해 3급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청구했다. A생명보험이 파견한 손해사정사 앞에서도 허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피트니스클럽에서 목격된 B씨의 모습은 그의 주장과 달랐다. B씨는 허리를 90도 이상 숙인 채 몸을 푸는가 하면 턱걸이 등 근력이 필요한 운동도 거뜬히 해냈다. 러닝 머신에서 오랜 시간 유산소 운동도 했다. 그의 주장대로 거의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허리를 못 쓰는 상태라면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결정적 단서는 소셜미디어(SNS)에서 나왔다. 연락처를 연동해 알아낸 B씨의 페이스북 계정에 보험사기 시도를 입증하는 놀라운 동영상이 올라온 것이다. 이 영상은 외발자전거를 타는 B씨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평소 다양한 운동을 즐겼던 그는 외발자전거 실력을 뽐내기 위해 며칠 동안 수 차례에 걸쳐 영상을 올렸다.
외발자전거는 중심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척추와 골반, 복부를 지탱하는 이른바 ‘코어 근육’이 강하게 단련돼 있어야 능숙하게 탈 수 있다. 허리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다쳤다는 B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외발자전거를 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SNS를 통해 운동 실력을 드러내고 싶었던 욕심이 자신의 발목을 잡은 셈이 된 것이다.
◇ 손해사정사 꾐에 피어난 일확천금의 꿈… 대가는 실형과 연금 삭감
김 팀장과 A생명보험 SIU는 1년여에 걸친 조사와 추적 끝에 확보한 사진과 영상을 근거로 B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병원에서 만난 한 손해사정사의 꼬임에 넘어가 보험사기를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손해사정사는 자신에게 10~15%의 수고비를 주면 보험금을 최대한 받아낼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B씨를 부추겼다.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수억원의 돈을 만질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간 B씨는 손해사정사가 시키는 대로 허리를 못 움직이는 척 연기를 했고, 보험금을 제 때 지급하지 않는다며 민원까지 제기했다.
결국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씨는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보험사의 신체 감정에 대한 대응 요령을 사전에 익히고 민원을 통해 보험사를 압박한 B씨의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한다며, 그에게 중형을 내렸다. 그를 부추겨 사기에 가담한 손해사정사 역시 보험업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
B씨는 근무했던 학교에서도 파면 조치를 당하면서 퇴직연금도 절반 수준만 지급 받게 됐다. 한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그는 존경 받는 교사에서 사기범으로 전락하고, 안정된 노후 생활의 희망마저 사라지는 대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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