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리츠’의 시간

2023. 7.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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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다시 ‘리츠’의 시간

한국 상장 리츠(REITs : 부동산 투자회사)의 주가가 심상치 않다. 금리 인상기 이자 부담과 부동산 하락 여파에 하락세를 겪었던 한국 상장 리츠들은 올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 기대감에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증권가에선 “리츠의 시간이 돌아오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고금리에 맥 못 춘 리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리츠와 롯데리츠 등 시가 총액 상위 10개 리츠로 산출하는 ‘KRX리츠톱10지수’는 6월 21일 기준 865.19를 기록했다. 52주 최고점(1100.58)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최저점(761.87) 대비 11.94% 올랐다. 특히 지난 4월 중순 이후 8.39% 상승하며 최근 3개월간 800선을 깨지 않고 횡보 중이다.

한국의 상장 리츠 중 시가 총액이 가장 큰 SK리츠의 주가는 5100원대를 회복했다. 올해 3월 들어 5000원 선이 무너지며 4865원(3월 20일 종가 기준)을 기록했던 주가는 5월 들어 5100원 선을 회복하며 5200원대를 넘보고 있다.

이어 시총 2위인 롯데리츠는 4월 27일 3550원으로 저점을 찍은 후 급격히 상승세를 타며 4000원대까지 올랐다. 올해 최저점 대비 13% 올랐다.

한국 상장 리츠 중에서 1주당 주가가 가장 높은 신한알파리츠 역시 올해 저점 5290원(4월 17일) 대비 18% 정도 오른 610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주가 기준 2위인 코람코에너지리츠는 올해 저점 4900원(3월 27일) 대비 11% 넘게 오른 5440원에 마감됐다.

다수의 투자자가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간접 투자 상품인 리츠는 ‘약세 장 속 피난처’이자 저금리 시대 주요 투자처였다. 지난해 상반기 증시가 맥을 못 출 때도 리츠주는 연중 최고점을 찍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저금리 상황에서 대출을 활용한 배당의 극대화는 리츠의 일반적 투자 전략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대출은 오히려 위험 요인이 됐다.

지난해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서 대출 이자 비용이 커지고 부동산 가격 하락 우려가 겹치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2022년 1월 1.25%에서 2023년 6월 현재 3.5%로 1년여간 2.8배 상승했다. 그 결과 리츠는 높은 부채 비율로 인해 이자 부담이 급증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차환 금리의 상승으로 자금 재조달에도 애로를 겪었다. 리츠 상장이 연기되거나 유상 증자 시 모집액이 미달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했다. 고금리의 직격탄에 더해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마저 터지며 리츠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난 수년간 저금리의 구조화로 리츠 상품의 경쟁력이 다른 투자 자산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면서 “이 기간 동안 한국의 리츠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 고금리·고인플레이션 상황이 되면서 리츠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 들어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기대감이 커지면서 리츠주에 대한 투자 심리도 달라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내리면 부동산 대출 이자가 하락하며 비용이 줄어드는 만큼 리츠에는 긍정적이다. 리츠업계에서는 최근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을 두고 리츠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앞서 미국 중앙은행(Fed)은 올 6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올해 안에 2회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했지만 시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기준금리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주식 시장 전반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경자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금리의 정점 인식이 높아지고 리츠들의 자금 조달 능력도 제고되며 1년간 주가수익률(PER)이 하락(디레이팅)했던 한국 리츠주들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연이은 금리 동결로 금리 인상 중단 기대감이 커지면서 경색된 한국의 부동산 시장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 하락 폭이 축소되는 가운데 4월 이후 가계 대출이 다시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 시장 동향’에 따르면 5월 말 예금 은행의 가계 대출 잔액은 1506조원으로 전월 대비 4조원 증가했다. 이 중 전세 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 담보 대출(807조원)이 4조원 증가했고 주택 담보 대출 금리는 2022년 고점 4.8%에서 40bp(1bp=0.01%포인트) 하락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현재 부동산 시장은 서울에 국한된 회복을 보이고 있지만 공급 조절과 금리 안정이 지속되며 하반기부터 점차 회복 조짐이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의 오피스 공실률이 하락세란 점도 긍정적이다. 금융 위기 수준을 넘어선 미국 오피스 공실과 달리 서울 오피스 시장의 1분기 공실률은 2.6%로 2018년 이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관련 법 개정도 리츠 시장에 청신호다. 6월 12일부터 하이일드 펀드에 분리 과세 혜택을 도입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상장 리츠가 수혜를 볼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이일드 펀드는 비우량 채권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 등으로, ‘BBB+’급 이하 채권에 45%를 투자해야 하고 높은 금리의 회사채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다. 분리 과세는 종합 소득에 합산하지 않고 원천 세율(지방세 포함 15.4%)을 적용해 별도 과세한다는 의미다.

상장 리츠는 회사채 발행 시 아직 짧은 역사로 적은 유통 물량을 보이다 보니 동급 회사채에 비해 스프레드가 높은 편이다. 하이일드 펀드가 설정되며 ‘BBB+’급과 ‘AA-’에 주로 분포한 상장 리츠의 회사채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는 상장 리츠의 자금 조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성기 기대감

리츠 상장사들의 자구책도 리츠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리파이낸싱 기간이 도래하면 높아진 금리 부담을 떠안고 배당 하락 우려도 커질 수 있다. 이에 리츠 상장사들은 자산 매각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리츠 상장사들은 지난 6월 13일 한국리츠협회가 주최한 ‘상장 리츠 투자 간담회’에 참석해 각 사의 재원 마련 계획을 밝혔다. NH농협리츠운용 측은 향후 3년 간 기초 자산 매각으로 차익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고 롯데리츠는 회사채‧전환사채 발행과 그룹 내 자산 편입 등으로 6% 이상 배당을 지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밖에 신한알파리츠는 용산 더프라임타워를 매각할 예정이고 ESR켄달스퀘어리츠는 기업공개(IPO)한 물류센터 1개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지스밸류리츠와 코람코에너지리츠 등도 자산 매각을 진행했거나 진행 중이다.

리츠에 대한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면서 업계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정병윤 한국리츠협회 협회장은 “최근 이자율 상승 폭이 둔화됐고 금년 중 금리 인하 전망도 나오고 있다”며 “리츠도 옛날의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리츠와 관련한 규제 완화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리츠의 몸집이 커져야 외국인도 유입되는 등 투자가 이뤄질 텐데 너무 시총이 적은 기업들이 쪼개져 있다”며 “국토교통부와 함께 올해 하반기에는 합병 개정안 등 법 개정안을 국회에 보내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리츠주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라는 조언이 나온다. 단기 시세 차익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배당을 받는 것이 목표인 만큼 고금리 리스크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리츠인 경우 지금이야말로 저가 매수의 기회라는 시각이다.

강경태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리파이낸싱을 넘어 성장을 바라볼 시점”이라며 롯데리츠 편입을 권고했다. 그는 “롯데리츠는 한국의 대표 스폰서 리츠 중 한 곳”이라며 “리파이낸싱에 따른 가중 평균 부채 조달 금리 상승세가 멈췄고 금리 안정기에 자산 편입을 위한 조달 여건도 경쟁사 대비 우수하다”고 말했다. 이경자 애널리스트는 “임차 안정성, 미래형 자산으로 전환 개발, 신용 등급 등에서 스폰서 리츠의 장점을 발휘할 것”이라며 SK리츠에 매수 의견을 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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