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누구인가[PADO]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2023. 7. 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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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모두가 동의했던 한 가지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푸틴에게 유리하다는 거였습니다. 지금이야 서구가 나름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볼멘 소리가 나올 것이고 대오를 이탈하는 나라들도 나올 겁니다. 반면 푸틴이 철권 통치를 하고 있는 러시아는 언제든 대열을 재정비하고 공격을 재개할 수 있다는 거죠. 최소한 교착상태를 유지하며 유리한 상황을 기다릴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지난 주말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푸틴의 심복으로 알려진 프리고진이 자신의 용병 부대를 이끌고 1000㎞를 주파해 모스크바 인근까지 진격하는 무장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극적 합의에 따라 진격을 멈추고 벨라루스로 떠난 프리고진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프리고진의 과거를 이해해야 미래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관록의 분쟁 전문기자 폴 우드가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 1843매거진에 쓴 프리고진의 프로필 기사(6월 12일자)는 그의 다채로운 이력을 세밀하면서도 대담하게 그려보이고 있습니다. 기사 전문은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모스코바=AP/뉴시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2023.06.25

2017년 어느날, 검은색 방탄 BMW 차량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그너그룹 본부 바깥에 섰다.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당도했다는 이야기가 돌자 본부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한 회의실에서 미팅이 진행 중이었고 프리고진은 그곳으로 직행했다. 다부진 몸에 정수리는 총알처럼 뾰족한 50대 남성인 프리고진은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위압적인 풍모였다. 하지만 직원 상당수는 한번도 그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민간군사기업(PMC)이 불법인 러시아에서 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었다. 프리고진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했던 터라 해당 미팅에 참석했던 한 초급 간부는 그를 못 알아봤다. 현장에 있었던 전직 바그너 직원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소개하려고 일어났다고 한다. 프리고진은 그를 노려보더니 그의 소매를 붙들고 복도로 끌고 나가 얼굴을 강타했다.

오늘날 프리고진을 못 알아볼 러시아인은 거의 없다. 바그너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용병 부대가 됐고 그 수장은 수많은 러시아군 장성들을 제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전쟁의 대표격인 인물이 됐다. 프리고진은 텔레그램과 브이콘탁테(러시아판 페이스북)에서 끊임없이 호전적인 성명을 발표한다. 러시아 군부 기득권 세력과 대치하면서 보통은 은폐돼 일반에 드러나지 않는 권력 다툼을 러시아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경질시키려 했던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지만 프리고진은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인물이다. 어느 정도는 SNS에서 거대하게 형성된 바그너그룹 추종자들의 덕분이다.

프리고진의 드높은 악명에도 불구하고 그가 크렘린의 권력 구도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쩌면 블라디미르 푸틴이 원하는 게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지휘계통에서 바그너의 위치가 애매하다는 사실은 러시아 정부로 하여금 바그너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전쟁범죄에 대해 뻔한 핑계거리를 준다. 몇몇 젊은 러시아인들은 프리고진을 경직된 군부 기득권의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배신당한 영웅으로 본다. 다른 이들은 프리고진이 그저 운이 좋았던 깡패였거나 토사구팽 당할 안보기관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프리고진이 푸틴을 몰아낼 수도 있다고 여기는 이들도 소수지만 있다. 프리고진 스스로는 미래의 야망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어왔지만 그가 러시아의 미래에 중요한 인물이 될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전에 러시아 엘리트들의 칼날과 독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겠지만. 이 변덕스러운 인물이 나중에 무엇을 할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를 살펴봐야 한다.


1961년 태어난 예브게니 빅토로비치 프리고진은 소련에서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시작점 중 괜찮은 지점에서 삶을 시작했다. 그는 꾸준히 올림픽 선수들을 배출한 레닌그라드의 명문 제62스포츠기숙학교를 다녔다. 해커들이 프리고진의 변호사들로부터 탈취했다고 주장하는 문서에 따르면 그는 프로 스키 선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부상으로 포기해야 했다 한다.

그 대신 그는 범죄자로 첫 공식기록을 남긴다. 1979년, 18세의 프리고진은 절도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 기간에도 그는 여러 차례 절도를 저지른다.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에는 훔칠만한 게 많지 않았다. 1980년 2월, 프리고진은 공범과 함께 한 아파트에 침입해 꽃병과 냅킨 상자, 와인잔 여섯 개를 훔쳤다.

소소했던 비행은 점차 잔혹해졌다. 어느날 저녁 프리고진과 일당들이 한 남성을 어두운 골목으로 유인해 250루블을 훔친 걸 자축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일당 중 하나의 증언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아름다운" 코트를 입은 젊은 여성을 봤다 한다. 그들은 여성을 따라 거리에 나섰고 한 명이 여성에게 담배를 청했다. 여성이 핸드백을 열자 프리고진은 뒤에서 여성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여성은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프리고진은 더 세게 목을 졸랐다. 여성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일당 중 하나는 여성의 부츠를 훔쳤고 프리고진은 금 귀걸이를 빼앗았다. 법원은 프리고진에게 13년형을 선고했다. 그가 갓 스무살이 된 때였다.

[바흐무트=AP/뉴시스] 프리고진 홍보부가 5일(현지시간) 공개한 사진에 러시아 민간용병단체 바그너그룹의 예브게니 프리고진 수장이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곳에 놓인 전사자들 시신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자신의 부대에 충분한 탄약을 제공하지 않은 러시아 국방부를 비난하면서 오는 10일 바흐무트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3.05.06.


소련의 교도소는 가혹한 곳이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문호를 개방하자 죄수들과 함께 생활했던 범죄학자 로라 피아센티니는 소련의 교도소 체계가 "완전히 잔혹하고 끔직하며 지극히 비인간적인 폭력을 집요하게 추구"했다고 말한다. 죄수들은 일종의 병영에서 50~100명씩 모여 생활했다. 교도관들은 죄수들끼리 군기를 잡을 것을 권장했다. 교도소 속의 일상은 '보리 브 자코네'라는 범죄조직이 관장했다.

'보리'는 엄격한 규율과 (뒤틀리긴 했어도) 명예 관념이 있었다. 피아센티니는 아마도 그들이 프리고진이 홀로 있는 여성을 떼로 공격한 데 대해 경멸감을 갖고 가혹하게 다뤘을 수 있다고 본다. 보리는 또한 교도소 내의 경제도 담당했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나 텔레비전을 가져다 줄 수도 있었고 사회에 있는 가족들을 보호해줄 수도 있었다. 프리고진은 여러가지 의미로 새롭게 등장하는 러시아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교도소에서 익혔다.

프리고진은 그가 30대를 바라보던 1990년 출소했다. 그는 레닌그라드에서 핫도그를 판매하는 것으로 사회에서 새 출발을 했다 한다. "우리 아파트 주방에서 머스터드를 만들었죠. 어머니가 주방에서 우리가 가져간 걸로 만들었어요. 한 달에 1000달러 정도 벌었습니다. 루블 지폐가 산더미처럼 쌓여서 어머니가 세는 것도 힘들어 했죠." 프리고진이 한 신문사에 한 말이다. 그는 곧 패스트푸드를 버리고 정통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다. 프리고진의 레스토랑 중 하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적인 세관 지하창고에 위치해 있었고 구레나룻을 기른 건장한 영국인 매니저가 운영했다. 다른 레스토랑은 과거에 수상 디스코로 사용했던 선박을 개조해 영업했다.

프리고진은 자신이 열심히 일해 성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밖에도 다른 요인들이 있었으리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 2005년 푸틴에 의해 투옥된 적 있는 올리가르히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레스토랑 사업과 조직범죄는 서로 얽혀 있다고 주장한다. 프리고진의 레스토랑 동업자 둘은 카지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프리고진이 조폭들을 마주친 적이 없으리라 상상하긴 어렵다. 호도르코프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시카고'라고 말한다. 프리고진 일당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카지노를 비롯한 부문을 담당하는 부시장이 프리고진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날을 기억한다. 그 부시장의 이름은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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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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