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눌러주세요” “구독 부탁드려요”…숫자에 함몰된 디지털 시대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7. 1.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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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사랑 정치 / 앨피 본 지음 / 박종주 옮김 / 시대의창 펴냄
소셜미디어 [사진=픽사베이]
중국 데이팅 사이트 ‘바이허’의 이용자는 8500만명이다. 남녀 만남을 주선해주는 많은 데이팅 앱 중 하나다. 바이허는 다른 데이팅 앱과 다르다. ‘사랑의 가능성’을 정교하게 게임화된 방식으로 예측하기 때문이다.

바이허는 알리바바그룹 계열사 앤트가 만든 ‘지마신용’을 개인의 신용평가 점수로 반영한다. 최저점은 350점, 최고점은 950점. 700점 이상이면 ‘미래의 백만장자’, 750점 이상이면 ‘10년 내 천만장자’로 간주한다. 고점자는 비자 발급 기간 단축, 공항 보안대 신속 통과, 의료비 외상이 주어지고 주택 보증금도 면제되는 파격 혜택이 주어진다 준다. 저점자는 상황이 반대다. 점수가 낮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만으로 대인관계 점수가 깎인다.

영국 철학자 앨피 본의 새 책 ‘게임 사랑 정치’는 인간의 욕망이 조작되고(gamed) 있다고 본다. 지마신용 점수를 높이려는 중국인들처럼 사람들은 자기 삶을 디지털 세상의 점수에 내맡기고, 그 안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삶 자체를 바꾼다. 유튜브 구독자, 페이스북 좋아요, 트위터 리트윗 수 등 전부 세계는 게임으로 이뤄져 있다. 저자는 “인간의 욕망 자체가 게임화되고 있다”고 선언한다.

1990년대 말 대유행했던 다마고치는 시대를 앞선 ‘디지털 사랑’의 화신이었다. 학생들은 디지털 기계를 손에 꼭 쥐고 진짜 동물을 키우듯 대했다. 때 되면 밥 주고 대소변까지 치우다가 다마고치가 병에 걸려 죽으면 나라 잃은 백성처럼 꺼이꺼이 우는 학생도 있었다.

왜 그런가. 다마고치는 ‘욕망, 애착, 반응, 보상’의 경험을 제공했다. 지금은 세상 전체가 다마고치다. 반응과 보상을 꿈꾸는 기계가 디지털 세계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의 시대를 ‘욕망 혁명’이라고 부른다. 욕망 혁명이란 우리가 욕망하는 방식에 일어나는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를 말한다. 욕망이 기계화되고 세상이 게임화될 때 주체적이었던 인간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데이팅 앱, 시뮬레이션 게임 등 인간은 인간 자신이 아닌 상태에서 기계화된 삶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인간이 인간만을 만나던 시대에 그건 하나의 주체로서 사유하고 행동한 결과였다. 현대의 인간은 주체적 개체가 아니다.

게임화된 세상에서의 반응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과정과 비슷하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한다는 건 욕망하고 애착한다는 것, 대상의 특수성에 자기 욕구를 투사하는 행위다. 또 사랑받는다는 건 나 아닌 누군가에게서 욕망과 투사의 대상이 되어보는 일이다. ‘욕망과 애착’의 행동 이후 상대로부터 ‘반응과 보상’이 따를 때 인간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게임화된 세상의 근본 기제도 사랑의 작동 방식과 같다.

정치적 영역에서도 작동 원리는 같다. 과거 국제 관계는 국경을 맞댄 실제 땅 위에서 일어났다. 저자는 지상(earth)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구름(cloud)을 상정하고 디지털 공간에서 벌어지는 오늘날의 정치를 ‘클라우드 정치’로 부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지상 정치와 클라우드 정치를 혼동시킨 대표적 인물이었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를 얻어냈고 세계를 흔들었다.

브렉시트 당시에도 밈과 가짜뉴스 봇이 총동원됐다. 반응과 보상을 얻어내려 게임화된 정치 속으로 유권자를 초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권자는 브렉시트 찬성 세력의 광고 표적이 됐다. 저자는 정치의 한쪽이 만들어낸 알고리즘이 우세할 때 반대쪽이 해야 하는 일은 알고리즘에 저항하는 일이 아니라 이 알고리즘을 대체할 새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사랑과 욕망은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매체에 너무도 깊이 얽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이 정말 우리의 욕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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