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KGC 전성기의 시작과 정점, 그 곳에는 양희종이 있었다

손동환 2023. 7. 1.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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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6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5월 15일 오전 11시에 진행됐다. KGC인삼공사와 양희종 관련 기록은 인터뷰 시각 기준이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안양 KGC인삼공사는 2011~2012시즌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지난 5월 7일에 끝난 2022~2023시즌에는 통합 우승을 기록했다. 구단 역사상 4번째 우승. 전성기의 방점을 찍었다.
KGC인삼공사의 첫 번째 우승부터 네 번째 우승까지 모두 경험했던 이가 있다. 주장이었던 양희종이다. 우승의 마지막 순간마다 코트에 있었던 그는 누구보다 안양에서의 순간을 값지게 여겼다. 4번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양희종은 이제 농구인 혹은 지도자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했다.

V1
안양 KGC인삼공사는 2011~2012시즌 최강의 전력을 갖췄다. 양희종과 김태술(현 SPOTV 해설위원), 박찬희(현 원주 DB)와 이정현(현 서울 삼성) 등 기존 멤버에, 오세근(현 서울 SK)이라는 최고의 빅맨이 더해진 것.
KGC인삼공사는 정규리그 2위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 KT(현 수원 KT)를 3승 1패로 꺾은 후, 정규리그 최다승 기록을 수립한 원주 동부(현 원주 DB)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났다.
KGC인삼공사의 열세가 예상됐다. 하지만 KGC인삼공사는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섰다. 6차전 또한 접전. 경기 종료 9초 전만 해도, 64-64였다. 그때 양희종이 나섰다. 원 드리블에 이은 미드-레인지 점퍼로 결승 득점을 해낸 것. 양희종의 결승 득점이 KGC인삼공사의 창단 첫 번째 우승을 만들었다.

2011~2012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원주 동부를 만났습니다. 압박감이 컸을 것 같아요.
오히려 부담을 덜었어요. 모든 분들께서 그때 동부의 승리를 예상하셨거든요. 그리고 저희 팀 같은 경우, (김)성철이형(전 원주 DB 코치)과 은희석 감독님(현 서울 삼성 감독), 저랑 (김)태술이 등이 있었지만, 주축 선수들이 거의 어렸어요. 부담 없이 부딪혀보려고 했고, 패기 하나로 덤빌 수 있었습니다.
챔피언 결정전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섰습니다. 예상 외의 결과였는데요.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체력이나 활동량으로 할 수 있는 농구가 필요했습니다. 1차전부터 풀 코트 프레스를 한 이유였죠.
그리고 동부가 ‘저득점 및 저실점 농구’라는 컬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공격 횟수를 늘리려고 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풀 코트 프레스를 사용했어요. 풀 코트 프레스를 하게 되면, 서로 간의 공격 템포가 빨라지고, 양 팀의 공격 횟수 또한 많아지거든요.
풀 코트 프레스를 잘 활용했기 때문에, 저희 팀이 시리즈 내내 80점대의 평균 득점을 기록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원하는 농구를 했해서, 챔피언 결정전 5차전까지 기대 이상의 결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6차전 종료 9초 전 결승 득점을 해냈습니다. 팀의 창단 첫 우승을 만든 득점이기도 했는데요.
패턴을 불렀는데, 두 번째 옵션에서도 찬스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제가 공격 기회를 얻었어요. 꼭 넣어야 한다기보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은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것저것 따질 정신이 없었습니다.(웃음) 체력도 떨어졌고 멘탈도 힘들었기에, 몸에 맡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볍게 던질 수 있었고, 가볍게 던졌던 게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 같아요.

V2
KGC인삼공사는 첫 우승 후 부침을 겪었다. 그러나 2015~2016시즌부터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2016~2017시즌. 또 한 번 기회를 맞았다. 양희종과 이정현, 오세근 등 기존 자원에 ‘키퍼 사익스-데이비드 사이먼’으로 이뤄진 외국 선수 조합이 KGC인삼공사를 강하게 만들었다.
더 강해진 KGC인삼공사는 창단 처음으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챔피언 결정전에 무난히 진출했다. 상대는 서울 삼성.
4강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한 KGC인삼공사는 6강 플레이오프부터 치른 삼성보다 체력적 우위를 점했다. 전력 또한 그랬다. 그러나 단기전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KGC인삼공사는 4차전까지 2승 2패로 삼성보다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하지만 5차전을 잡았다. 그리고 양희종이 6차전에 나섰다. 3점슛 9개 중 8개를 꽂았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가치를 보여줬다. 양희종의 폭발력이 KGC인삼공사에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안겼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삼성을 만났습니다. 4차전까지 2승 2패를 기록했는데요.
원래대로라면, 쉽게 이겨야 하는 시리즈였습니다. 그렇지만 메인 외국 선수였던 키퍼 사익스가 1차전에 다쳤어요. 국내 선수들이 많이 당황했고, 혼자 남은 데이비드 사이먼에게 많은 걸 의지했어요.
잘못하다가는 뒤집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불안감이 컸죠. 그렇지만 시리즈를 팽팽하게 끌고 갔고, 5차전도 이겼어요. 국내 선수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6차전에서 3점 8개를 꽂았습니다. 이전과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첫 번째 우승 당시의 6차전처럼, 두 번째 우승했을 때의 6차전도 많이 힘들었어요. 발목이 좋지 않아, 주사를 맞고 뛴 기억도 나요. 다른 선수들도 많이 지쳐있었고요.
그래서 제가 잘할 수 있는 허슬 플레이를 하되, 찬스에서는 때리자고 다짐했어요. 간결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려고 했고요. 마침 선수들이 제 찬스를 잘 봐줬고, 저도 좋은 슛 감각 때문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KGC인삼공사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이자 양희종 선수의 데뷔 첫 통합 우승이었습니다.
첫 우승 때만 해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시리즈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2016~2017시즌은 달랐습니다. 상대 팀의 장단점이 어떤 건지 생각했고, 정규리그 1위 이후 맞은 챔피언 결정전이라 부담감도 컸습니다. 그래서 선수들과 더 많이 이야기했고, 약속된 것들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마음도 컸습니다. 무엇보다 선수들 간의 응집력이 탄탄했기에, 저희가 최고의 결과를 냈다고 생각해요.

V3
2020~2021시즌이 됐다. KGC인삼공사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확실한 외국 선수가 2020~2021시즌 중반만 해도 없었기 때문.
그러나 대체 외국 선수인 제러드 설린저가 KGC인삼공사의 구원군이 됐다. 적응을 마친 제러드 설린저는 KBL에서 볼 수 없는 고급진(?) 경기력을 보여줬다. 한때 5위에 머물기도 했던 KGC인삼공사도 3위로 플레이오프를 준비했다.
양희종의 승부처 지배력이 없어도, KGC인삼공사는 강력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더 업그레이드된 경기력을 보여줬다. 6강 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 결정전까지 10전 전승. 일명 ‘PERFECT 10’을 달성했다. 양희종은 KBL 역대 최초의 순간을 코트에서 누렸다.

2020~2021시즌 초반에는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이)재도(현 창원 LG)와 (전)성현이(현 데이원스포츠) 모두 지금은 소속 팀에서 간판급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성장하는 선수들이었습니다. 또, 외국 선수들이 계속 교체됐어요. 불안 요소들이 많아서, ‘KGC인삼공사는 우승권 전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죠.
그렇지만 저희 선수 구성이 그때도 좋았어요. 힘든 시간들이 찾아와도, 팀 경기력이 떨어지지 않았던 이유였죠. 역전승을 많이 했고, 지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그런 힘이 3번째 우승의 기반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러드 설린저가 온 후, KGC인삼공사의 경기력이 확 달라졌습니다.
이전에 함께 했던 외국 선수들(얼 클락-크리스 맥컬러)도 훌륭했습니다. 정해져있는 틀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했죠. 그렇지만 말씀하신 대로, 설린저는 엄청난 외국 선수였습니다. 경기 운영과 득점은 물론, 상대 단점을 노리는 능력도 출중했습니다. ‘같이 뛰니까 정말 편하다. 이 패스가 지금 들어온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랄 때도 많았죠. ‘찐 NBA 클라스’를 느끼게 해준 선수였어요.(웃음) 그 정도로, 농구만큼은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농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농구를 이렇게 재미있게도 할 수 있구나’는 느낌을 설린저한테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국내 선수들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코칭스태프 또한 설린저에게 의지를 많이 했고요.
KBL 역대 최초로 ‘PERFECT 10’을 달성했습니다.
정규리그라면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규리그 10연승도 어려워요. 라운드 별로 상대와 한 번씩만 붙어도, 서로의 장단점이 읽히거든요.
게다가 플레이오프에서는 한 팀과 최소 3번을 연달아 붙습니다. 서로의 장단점이 서로한테 더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그런데도 6강 플레이오프부터 챔피언 결정전까지 10번 모두 이겼다는 게... 정말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V4
KGC인삼공사는 2022~2023시즌 중 ‘LAST DEFENSE’라는 기조를 발표했다. 양희종이 해당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 수비로 존재감을 보여준 양희종이기에, ‘LAST DEFENSE’는 KGC인삼공사와 양희종 모두에게 의미 있는 슬로건이었다.
KGC인삼공사는 2022~2023시즌 시작 후 정규리그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후, 챔피언 결정전에도 나섰다. 그러나 김선형과 자밀 워니를 기반으로 한 SK를 압도하지 못했다. 시리즈 마지막 경기인 7차전에서도 연장 승부를 펼쳐야 했다.
양희종은 4차전에서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 7차전까지 벤치 신세를 져야 했다. 그렇지만 오세근이 쐐기 자유투를 해냈고, KGC인삼공사가 SK의 마지막 공격을 틀어막았다. 남은 시간은 3초. 오른쪽 어깨에 깁스를 했던 양희종이 코트로 들어섰다. 선수로서 마지막 순간을 ‘우승’으로 장식했다. 어느 때보다 드라마 같았던 우승이었기에, 양희종이 느낀 감격은 더욱 컸다.

챔피언 결정전 4차전에서 어깨를 다쳤습니다.
어깨를 다치기 전만 해도, 선수들과 잠깐이나마 코트에서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선수들과 호흡할 시간이 있었죠. 그렇지만 어깨를 다친 후, 그런 시간조차 사라졌습니다.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고마운 마음도 들었고요.
그 이후부터 코칭스태프의 일원이라는 마음으로 남은 시리즈를 임했습니다. 선수들의 멘탈을 잡아주려고 했고, 선수들 간의 약속된 플레이를 더 강조했습니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습니다.
KGC인삼공사와 SK의 승부가 7차전 연장전까지 갔습니다. 양희종 선수가 느낀 긴장감이 더 컸을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은퇴를 안 시켜주는 거지? 은퇴가 이렇게 힘든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그 정도로 힘들었어요. 팬들께서도 마음을 졸이셨겠지만, ‘선수들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차라리 코트에서 뛰었다면,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을 거예요. 다만, 코트를 지켜보는 입장이라, 잘못된 점을 캐치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경기가 너무 빨리 진행돼서, 포인트를 캐치하고 동생들에게 조언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긴장감도 컸습니다. 경기가 눈에 더 안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코칭스태프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예전에 치렀던 챔피언 결정전보다 더 많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KGC인삼공사가 우승을 확정한 순간, 양희종 선수는 코트에 들어섰습니다.
김상식 감독님께서 6차전 종료 후에 “7차전 마지막 순간에 너를 투입할 거다”고 해주셨어요. 감독님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부상자였던 제가 마지막 순간을 코트에 설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독님과 구단의 배려에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END? AND!
‘선수 양희종’은 마지막을 고했다. 그러나 ‘농구인 양희종’은 또 한 번 시작점에 선다. 먼저 농구 선진국인 미국에서 시야를 넓힐 예정이다. 좋은 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해, 여러 가지 경험을 할 계획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양희종은 선수 시절 이상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 더 많은 고민을 하는 이유는 이렇다. 팬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보답하고, 농구 후배들에게 좋은 길을 터주기 위해서다.

안양은 어떤 의미였나요?
안양은 평범한 선수였던 저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곳입니다. 선수이기 전에 인성을 가르쳐준 곳이기도 하죠. 제 인생을 함께 걸어온 곳이고, 인생을 재미있게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저는 안양에서 많은 분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습니다. 팬 여러분들에게 받았던 사랑과 관심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리고 싶어요. 안양은 저에게 너무 감사한 곳이거든요.
‘선수 양희종’이 아닌 ‘농구인 양희종’이 됐습니다.
배움도 많이 부족하고, 공부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선수 시절에 못했던 걸 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요.
물론, 농구라는 스포츠의 룰은 어디에서든 동일합니다. 농구만 놓고 보면, 미국과 우리 나라의 차이가 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선진 농구는 어느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지, 어떤 시스템과 어떤 분위기에서 이뤄지는지 궁금해요. 그런 것들을 공부해보고 싶어요.
또, 제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더 좋은 방향으로 선수들을 지도해보고 싶어요. 기량이 훌륭한 국내 선수들이 KBL에 많은데, 그런 선수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육성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제가 준비를 더 잘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농구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챔피언 결정전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팬들이 계시기 때문에, 선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요. 또, 팬들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저희 선수들이 홈에서 좋은 승률을 냈다고 생각합니다. 우승은 꿈도 못 꿨을 겁예요.
개인적으로도 팬들의 함성과 열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팬들께서 보여주신 성원을 가슴 속에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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