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인사는 짧게! 슬프잖아, 길어지면”

길해연 배우 2023. 7. 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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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길해연이 만난 사람]
배우 윤소정 6주기
‘윤소정답게’ 추모하기
2007년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할 때 국립극장에서 만난 배우 윤소정. /이명원 기자

6년. 그녀가 어느 날 불현듯 우리 곁을 떠나고 흐른 6년은 ‘벌써?’이기도 ‘아직?’이기도 하다. 함께한 추억이 너무 생생해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지났나’ 싶기도, 그녀의 부재가 너무도 길게 느껴져 ‘아직 6년밖에 안 지났나’ 싶기도 하다.

대학로 어딘가를 걷다 보면 챙 넓은 모자를 쓴 윤소정이 홀연히 나타나 어깨를 툭 치며 “바다 연꽃, 어디 가?” 할 것만 같은데 야속하게도 그녀는 진짜 떠나버렸다. 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아주 쿨하게!

살아생전에도 그녀와 헤어지는 일은 늘 급작스러웠다. 언제까지라도 앞에 앉아 내 이야기를 몸 기울여 들어줄 것 같다가도, 어느 시간이 되면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쪽 손을 높이 흔들며 훌쩍 자리를 뜨곤 했다. “작별 인사는 짧게! 슬프잖아, 길어지면.”

그래도 그렇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그럴 줄이야…. 끝까지 윤소정다웠다. 윤소정을 추앙하던 이들에게 ‘윤소정답다’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가 잘 쓰던 말 “아님 말고”에서 묻어나는 쿨함? 멋지고 이쁘고 좋은 것을 “근사하다”라는 말 하나로 통일하는 담백함, 그러면서도 늘 당당했던 것? 아니다. ‘윤소정답다’에는 배려와 베풂이 들어 있다. 그녀의 베풂에는 유머와 웃음이 배어 있어 받는 이들이 구차스럽지 않을 수 있었다.

2009년 6월, 5만원권을 발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주머니에 만원짜리 한 장만 있어도 기고만장해질 수 있는 후배들이 모여 앉아 5만원 신권에 대한 열망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얘들아, 이 사람 해연이 닮지 않았니?”

돌아보니 그녀가 신사임당 얼굴이 새겨진 5만원짜리를 내밀었다. “말도 안 돼. 하나도 안 비슷해.” “어, 있어! 선배 얼굴에 신사임당이 있네.” “얼굴은 어딘가 비슷한데 행실이 전혀 딴판 아냐?”

의견이 분분한데, 그녀가 모여 있던 이들에게 신사임당 얼굴을 한 장씩 쥐여주는 것이 아닌가. “해연이 얼굴이 담겨 있어 주는 거니까 인사는 해연이한테 해.” 베푼 건 그녀였는데 인사는 내가 받고, 얼떨결에 신권을 받아 든 이들은 여전히 신사임당에서 내 얼굴을 찾느라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 식이었다.

윤소정과 박지일이 주연한 연극 '33개의 변주곡' /신시컴퍼니

또 한번은 분장을 받고 있던 그녀가 내게 뜬금없이 사물함을 열어보란다. 안에는 연두와 녹두가 곱게 버무려진 고혹적인 원피스 한 벌이 걸려 있었다. “날 위해 한 번만 입어봐 줄래?”

그녀의 말에 나는 늘 왜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분명 그 주문 속에는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고, 그 의도는 절대로 나에게 불리하거나 부당하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옷감이 어찌나 보드라운지 옷을 입은 건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건 진정 잠자리 날개 같네” 하고 분장실에서 빙글거리는데, 그녀가 짐짓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거 오늘 처음 입고 나왔는데 나한테 정말 잘 어울리더라. 근데 지금 보니 원통하게도 너한테 쪼금 더 잘 어울리네. 네가 입어야겠다.” 나는 야호 환호성을 지르며 바로 벗어 내 사물함에 척 걸쳐 놓았다. 그런데 그날 공연이 끝나고 분장까지 다 지운 그녀가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안 가세요?” 그랬더니 그녀가 아주 가여운 얼굴로 말했다. “아까 그 원피스 한 번만 빌려주면 안 되겠니? 오늘 그 옷을 입고 나왔는데 널 주고 나니 입고 갈 옷이 없네. 벗고 갈 수도 없고, 무대 의상을 입고 갈 수도 없고….”

이미 내 옷인데 치사하게 빌려 달라는 법이 어디 있냐며 어깃장을 부렸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리 새 옷이라도 본인이 입었던 옷을 그냥 주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드라이클리닝 안 해줘도 괜찮다는 뜻을 에둘러, ‘죽어도 못 빌려주니 홀딱 벗고 가시라’고 생떼를 부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이틀 뒤, 예상대로 시간을 줄이려 웃돈까지 얹어 드라이클리닝을 한 옷이 사물함에 걸려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내가 이해랑연극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어디선가 들은 그녀는 냅다 전화를 걸더니 3분 정도 “꺄아악! 길해연 와아악!” 괴이한 비명 같은 환호성만 질러댔다. 눈물이 났다. 나보다 더 내 일을 걱정해주고, 기뻐해 주고, 나보다 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를 만난 데에 그저 “감사합니다” 소리만 되뇌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만나 서로에게 구두를 선물했다. 굽이 아주 높은, 생긴 것부터 이미 도도한 구두를 골라 신겨 주시며 “근사하다 길해연!”을 외치는 그녀에게 나는 굽이 아주 낮은 발 편한 신발을 안겨드렸다. ‘더 많이 더 멀리 훨훨 날아다니시며 지금처럼 많은 사랑 나눠 주세요.’ 오글거려 말은 못 했지만 그런 마음이었다.

지그시 상대방을 바라보는 그녀의 사려 깊은 눈은, 주눅 들어 안으로 굽은 어깨를 펴게 해 주었다.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제대로 알아줄 것 같은 용기를 심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장점을 귀신같이 찾아내고 진심으로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었다. 거짓된 위로에는 자칫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위로와 장점 찾기는 진심이었기에 늘 안전했다.

내가 그녀에게 받은 사랑만큼, 혹은 그 이상의 사랑을 받은 이들이 많음을 안다. 에잇 나만 이뻐한 게 아니었어? 슬쩍 샘이 나거나 삐침이 생길 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빵 다섯 점과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를 채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윤소정이 베푼 사랑은 베풀수록 늘어나고 그 베풂을 받은 이들이 자기 것을 아낌없이 내주는 기적을 이뤄낸다고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받기만 하고 얌체 짓을 하는 이가 있다 한들, 어쩌랴. 그녀가 잘 쓰는 말 그대로 “아니면 말고!”

오열하는 이들 때문에 애도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늘 너무 똑똑해서 탈이라고 걱정하던 그녀의 딸 오지혜와 몇몇 윤소정 추종자들과 식사를 했다. 맛난 밥 한 숟가락에 윤소정이라는 찬을 얹어 씹으며 어찌나 웃어댔던지. 분명 상 치른 지 얼마 안 된 걸 알고 있던 주인장은 급기야 ‘저것들이 너무 슬퍼 실성을 했나’ 하는 눈빛으로 흘깃대고,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린 우리는 또 박장대소하고.

추모가 별거인가. 맛난 음식 놓고 둘러앉아 떠난 이와 얽힌 추억을 곁들여 씹으며 웃고 울고…. 꼭 엄숙할 필요 있을까? 생전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깔깔대며 우리는 오래도록 윤소정을 추모할 것이다. 그녀와 함께한 유쾌한 시간이 잊히지 않도록, 그 미치게 그리운 날들의 기억이 희미해지지 않도록!

왼쪽부터 배우 서은경, 길해연, 윤소정, 오지혜. /길해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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