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애도 여행
“솜처럼 안개가 짙은 일요일 아침. 혼자다. 한 주 한 주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걸 느낀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그녀 없이 흘러가게 될 긴 날들의 행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1977년 11월 6일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같은 해 10월 어머니를 잃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글들은 바르트 사후 ‘애도 일기’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지난주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 없이 흘러가게 될 긴 날들의 행렬”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아주 더운 나라로 휴가를 와 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한 여름휴가가 그를 보낸 직후 떠나는 ‘애도 여행’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곳의 더위에는 슬픔을 눅이는 힘이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여파로 한반도를 아열대화한 신생(新生)의 더위와는 결이 다릅니다. 아주 오래된 더위, 태곳적부터 더운 나라의 더위, 우기(雨期)의 더위, 살갗을 할퀴는 게 아니라 뭉근히 익히는 더위, 느긋하고 묵묵한 더위….
더위는 명치끝에 응어리진 슬픔을 어루만져 조용히 기화(氣化)시키고, 안개처럼 뿜어냅니다. 증발한 슬픔의 입자는 대기 중의 열기와 뒤섞이더니 원래부터 공기와 한 몸이었던 양 아스라이 사라집니다. 인간은 사랑받았던 기억에 힘입어 삶을 견뎌낸다고 생각합니다. 돌아가신 그분은 제게 “나는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다”고 말해 준 최초의 존재였어요. 그렇지만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화하고 언제나 곁을 지켜줄 것 같았던 그런 존재도 결국은 떠나갑니다.
소중한 사람을 묻고 왔다는 말에 묵고 있는 호텔 직원이 위로의 말을 건네네요. “그녀는 땅에 묻혔지만 네가 그녀를 기억하는 한, 언제나 네 마음속에 살아있어.”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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