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프라스, 당대표 사퇴… ‘그리스 포퓰리즘’ 마감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7.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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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당대표가 29일(현지시각) 아테나 자페이온 홀에서 사퇴 성명을 발표한 후 떠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리스 좌파의 ‘아이콘’인 알렉시스 치프라스(49) 전 총리가 29일(현지 시각) 총선 대패 책임을 지고 급진좌파연합(시리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2008년부터 15년간 시리자와 전신인 시나스피스모스 당대표를 지내면서 8차례 크고 작은 선거를 치렀다. 2015~2019년 총리를 지냈고, 2015년 그리스의 구제금융 거부 운동을 이끌었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이날 수도 아테네에서 회견을 열고 “시리자를 위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가 왔다”며 당대표직 사퇴를 발표했다. 시리자는 지난달 25일 실시된 2차 총선에서 17.83%를 득표, 40.56%를 얻은 중도 우파 신민주주의당(신민당)에 크게 뒤졌다. 시리자 득표율은 지난 5월 21일 1차 총선(20.07%)보다 하락하면서 신민당의 단독 재집권을 허용했다. 이에 당 지도부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특히 치프라스에게 비판이 쏟아졌다. 치프라스는 2015년 초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채권단이 구제금융 조건으로 제시한 재정 긴축안을 “그리스 국민의 이름으로 거부한다”고 선언하면서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 시리자는 곧 이은 총선에서 압승(당시 득표율 36.4%)을 거뒀고, 치프라스는 총리 자리를 꿰찼다.

치프라스는 이후 선거 때마다 포퓰리즘 정책을 내세워 집권을 시도했다. 2015년 7월, 자신의 말을 뒤집고 국제 채권단과 3차 구제금융안에 합의해 총리 자리에서 사실상 밀려나는 위기를 겪었지만, 그해 12월 조기 총선에서 “축소한 연금과 복지를 머지않아 되돌릴 수 있다”고 장담, 총리로 복귀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이는 2019년 시리자의 총선 패배와 신민당 집권으로 이어졌다. 치프라스는 이번 총선에서도 “최저임금과 연금 수령액을 올리고, 근로시간을 단축하겠다”는 포퓰리즘 공약을 내놨지만 국민 반응은 싸늘했다.

그는 한국의 386세대 정치인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등학생 때 정부의 교육 정책에 반대하는 학교 점거 농성을 주도했고, 국립 아테네기술대학 재학 시절엔 학생운동 단체인 ‘전국 대학생 연합’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 졸업 후 잠시 건축 회사에 들어갔지만 직장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후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열혈 팬임을 자처하며 ‘민주 투사’ 이미지를 앞세우기도 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치프라스는 그리스 좌파 내에서도 분란을 일으켜 온 문제아(trublion)였다”며 “그는 좌파엔 거짓말쟁이 배신자로, 우파엔 국가를 위기에 빠트린 포퓰리스트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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