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류 번영을 위한 기술 진보? 설계자는 따로 있다”
이진구 기자 2023. 7.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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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유선 전화기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단지 '테크노-낙관주의'에 빠져 지구온난화는 물론이고 빈곤까지도 기술의 진보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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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풍요… 소수 권력자-엘리트 집단이 누려
기득권이 제시하는 미래 기술 비전… 공동체 전체에 이로운지 따져봐야
◇권력과 진보: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김승진 옮김/736쪽·3만2000원·생각의 힘
기득권이 제시하는 미래 기술 비전… 공동체 전체에 이로운지 따져봐야
◇권력과 진보: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대런 아세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김승진 옮김/736쪽·3만2000원·생각의 힘
집의 유선 전화기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 기능은 왜 필요한 거지? 누가 쓰는 거지?’ 녹음 데이터 엑셀리포트 기능, 소프트웨어 SKIN 보기, 컴퓨터 연결 녹음, 통화 분류별 관리…. ‘온 훅(on hook)’ 버튼이 뭔가 싶어 설명서를 보니 ‘수화기를 들지 않고 온 훅 버튼을 누른 후 원하는 전화번호를 입력한 뒤 수화기를 들고 통화할 수 있는 편리한 기능입니다’라고 한다. 별로 편리한 것도 없는데, 값은 ‘오직 전화만 걸 수 있는 것’에 비해 3배 이상 비싸다. 그리고 ‘오직 전화만 걸 수 있는 전화기’는 어느덧 시장에서 찾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기술 진보로 인한 풍요가 공동체보다 소수의 엘리트와 권력자 등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불렸다는 걸 손꼽히는 경제학자들이 지적한 책이다. 엘리트들은 국가와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이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대의를 내세웠지만, 그 비전은 늘 자신들이 더 큰 이득을 보는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나중에 그 비전이 엄청나게 잘못된 것으로 판명돼도 대부분은 책임지지 않았고, 오히려 또 다른 이득을 얻었다고 지적한다.
“파생상품이라고 알려진 복잡한 금융 기법도 은행 업계에 막대한 수익의 원천이 되었다. … 거대 은행들은 감옥에 넣기에만 너무 큰 것이 아니라 ‘망하게 두기에도 너무 큰’ 상태가 되어 있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 경제에도 좋은 것이라고 정책결정자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함으로써 후한 구제 금융을 받아냈다. 2008년 9월에 리먼브러더스가 도산한 뒤, 주요 금융기관 중 도산하는 곳이 하나라도 더 생기면 시스템 차원의 문제가 되어 경제 전체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회의 지배적인 견해로 굳어졌다.”(3장 ‘설득 권력’에서)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인들과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단체들은 ‘기후변화 위기 등을 극복하기 위해 전기차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일론 머스크 같은 거대 자동차 회사 최고경영자(CEO)들도 그렇게 강조하며 사활을 건다.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전기차만 남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데 전기료는? 시민은 전기료 폭탄을 맞을까 봐 에어컨도 제대로 못 켜는 게 현실인데…. 환경 보호는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분명 필요하지만, 그 속에 ‘더 큰 자신들의 이득’이 없다면 과연 머스크가 나섰을까?
책에는 비판적인 내용이 많지만 그렇다고 저자들이 기술 진보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단지 ‘테크노-낙관주의’에 빠져 지구온난화는 물론이고 빈곤까지도 기술의 진보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의견이다. 그리고 “기술 진보로 환경오염, 불평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더 나은 세상을 낳기 위한 산통”이라는 ‘테크노-낙관주의자’들의 주장에 속아서도 안 된다고 경고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민주주의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극찬했다지만, 사실 읽고 나면 좀 허망한 면이 있다. 지적과 분석은 날카롭지만, 결론은 샌델처럼 ‘깨어있는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해야 할지’는 숙제로 내준다.
기술 진보로 인한 풍요가 공동체보다 소수의 엘리트와 권력자 등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불렸다는 걸 손꼽히는 경제학자들이 지적한 책이다. 엘리트들은 국가와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이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대의를 내세웠지만, 그 비전은 늘 자신들이 더 큰 이득을 보는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나중에 그 비전이 엄청나게 잘못된 것으로 판명돼도 대부분은 책임지지 않았고, 오히려 또 다른 이득을 얻었다고 지적한다.
“파생상품이라고 알려진 복잡한 금융 기법도 은행 업계에 막대한 수익의 원천이 되었다. … 거대 은행들은 감옥에 넣기에만 너무 큰 것이 아니라 ‘망하게 두기에도 너무 큰’ 상태가 되어 있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 경제에도 좋은 것이라고 정책결정자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함으로써 후한 구제 금융을 받아냈다. 2008년 9월에 리먼브러더스가 도산한 뒤, 주요 금융기관 중 도산하는 곳이 하나라도 더 생기면 시스템 차원의 문제가 되어 경제 전체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회의 지배적인 견해로 굳어졌다.”(3장 ‘설득 권력’에서)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인들과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단체들은 ‘기후변화 위기 등을 극복하기 위해 전기차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일론 머스크 같은 거대 자동차 회사 최고경영자(CEO)들도 그렇게 강조하며 사활을 건다.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전기차만 남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런데 전기료는? 시민은 전기료 폭탄을 맞을까 봐 에어컨도 제대로 못 켜는 게 현실인데…. 환경 보호는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분명 필요하지만, 그 속에 ‘더 큰 자신들의 이득’이 없다면 과연 머스크가 나섰을까?
책에는 비판적인 내용이 많지만 그렇다고 저자들이 기술 진보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단지 ‘테크노-낙관주의’에 빠져 지구온난화는 물론이고 빈곤까지도 기술의 진보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의견이다. 그리고 “기술 진보로 환경오염, 불평등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더 나은 세상을 낳기 위한 산통”이라는 ‘테크노-낙관주의자’들의 주장에 속아서도 안 된다고 경고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민주주의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극찬했다지만, 사실 읽고 나면 좀 허망한 면이 있다. 지적과 분석은 날카롭지만, 결론은 샌델처럼 ‘깨어있는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해야 할지’는 숙제로 내준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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