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10] 깊이에서 오는 충만감
“조금만 덜 먹을 걸!”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폭식 끝에 남는 건 소화제인데도 멈추지 못한다. 배가 부르다는 느낌은 후행적이다. 충분하다는 느낌을 넘어 만족하는 순간 속이 더부룩하고 가스가 찬다. 폭식, 폭음, 과로 역시 충분함에 대한 각자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발생한다. 생존과 적응을 위해 ‘불안’을 느끼는 능력이 진화된 것에 비해, 만족감은 ‘안정’의 영역이기 때문에 애써 기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충분함에 대한 감각을 깨우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여전히 사랑니처럼 불필요한 기관을 달고 사는 건 진화의 느린 속도 때문이다. 먹을 수 있을 때 양껏 먹어야 굶어 죽지 않는다는 원시인의 뇌가 아직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다가 맹수에게 물어뜯길까 봐 경계하는 건 원시 시대에 어울린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안을 벗어나, 반대편에 있는 충분함을 알아차리는 기술이다.
충분함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선 나를 타인과의 비교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알아야 할 건 비교의 특징이다. 우리는 주로 직업이나 나이, 삶의 방식이 비슷한 사람을 시기한다. 작가는 작가를, 정치인은 정치인을 시기한다. 걸인 또한 부자보다는 자신보다 형편이 조금 나은 걸인을 시기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주기적으로 비교 지옥의 대명사인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
불만족을 유발하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독서가 끝나면 우리는 책을 덮는다. 완벽히 문이 닫힌 것이다. 여러 개의 창을 열어둔 채 끊임없이 새 창을 여는 인터넷과 책의 물성은 다르다. 종일 검색해도 새로운 최저가, 초특가 티켓이 나오는 ‘검색’과 달리,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때 밀려오는 만족감은 닫힌 세계가 약속하는 ‘사색’의 만족감이다.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큰 충분함은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다. 무엇이든 쏟아지는 시대의 처방은 닫는 것이며, 그 답은 넓이가 아닌 깊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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