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모기와 평화 협정 맺기

기자 2023. 7.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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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하고 싸워서 졌다….”, “난 이기는 중이야. 언니도 힘내!” 알레르기가 심한 우리 가족은 모기 알레르기를 여름마다 겪는다. 모기는 다른 동물의 피를 흡입할 때 대상의 피부 안에 자신의 타액을 주입한다. 통증을 못 느끼도록 하는 마취제이자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성분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모기에 물린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물집이 생기기도 하며 1~2주가 지나도 가라앉지 않는다.

김예선 부산민주공원 홍보 담당 청년활동가

여름철 알레르기 연고는 상비약이다. 밤낮 가릴 것 없이 연고를 손 닿는 곳에 두고 모기에게 물렸다 하면 바로 바른다. 하지만 나는 최근 모기와의 싸움에서 졌다. 연고를 발랐는데도 차도가 없어 얼른 병원으로 가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냥 내 피만 뽑아가면 될 것이지 꼭 이렇게 알레르기까지 나타나게 해야 속이 후련했냐고 모기에게 소리치고 싶다. 환절기 온도 차나 먼지, 햇빛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지만 모기 알레르기가 유독 두려운 건 여름내 언제 어디서 모기와 맞닥뜨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벌레를 엄청 무서워한다. 특히 날벌레는 날갯소리만 들어도 무섭다. 날벌레가 어느 방향으로 사라지고 나타나는지 내 시야에서 확인되지 않을 때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그런데 나는 왜 벌레를 무서워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기 알레르기가 있긴 하지만 다른 벌레 때문에 피해 본 일은 없는 것 같다. 역시 모기 이 녀석들…!

프라우케 피셔와 힐케 오버한스베르크의 <모기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 -절박하고도 유쾌한 생물 다양성 보고서>는 말 그대로 모기가 우리에게 해 준 게 무엇이 있는지 얘기해준다. 수분(受粉)은 곤충, 새, 바람을 통해 이뤄진다. 세상의 꽃 모양은 다 다르므로 최대한 다종다양한 수분자가 있어야 하지만, 위대한 수분자, 벌의 개체 수는 줄어들고 있고 자연적인 수분이 불가능해져 바닐라꽃처럼 인간이 직접 수분하는 식물 개체가 늘고 있다. 여기서 모기가 활약을 한다. 좀모기과는 카카오꽃의 유일한 수분자다. 카카오꽃은 너무 작고 구조가 복잡해서 3㎜를 넘지 않는 좀모기과만이 수분할 수 있다. 그러니까 좀모기과가 없다면 우리는 세상 모든 초콜릿을 먹을 수 없다. 이쯤 되면 초콜릿 없이 살 수 없는 나는 모기와의 평화 협정을 준비해야겠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 은평구를 중심으로 ‘러브버그’가 나타나고 있다. 집 안이며 카페, 야외에 퍼진 러브버그 사진만 봐도 무섭다. 그것도 암수 두 마리가 쌍으로 다니다니 공포감이 2배다. 러브버그의 애벌레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성충은 수분도 하는 등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벌레라 하니 무차별적 방충을 할 수도 없다고 한다.

어릴 때 아빠를 따라 옥상에 올라가 화분마다 물을 주었다. 한 날은 거미가 열심히 지어 놓은 거미집을 끊으며 놀고 있었는데 아빠는 거미가 있어야 모기도 잡을 수 있다고, 식물에 나쁜 영향도 끼치지 않으니 거미줄을 끊지 말라고 말했다. 어떤 벌레가 해충인지 익충인지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도 인간 중심적인 사고다. 벌레가 무섭기는 해도 우리는 같은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서 모기와 또 다른 벌레와, 동식물과 공존을 위한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예선 부산민주공원 홍보 담당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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