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환경보호? 후배들아, 험한 일은 우리가 할게”[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2023. 7.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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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세대 ‘뒷배’ 자처하는 파워 시니어들
저출산에 병역자원 고갈될까… 국가 유사시 징집 자원 서약
“살 만큼 산 우리가 전쟁터에”… “젊은이들은 생산에 종사하게”
모든 비용은 자비 부담 원칙… 손주들 미래 위한 환경운동도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시니어 아미 창립총회가 열렸다. 최영진 공동대표(왼쪽)가 회원들에게 모임의 명칭이 ‘징집자원60’에서 ‘시니어자원병’을 거쳐 ‘시니어 아미’로 변천돼 온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시니어 아미(Senior Army)라니? BTS(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의 시니어 분과인가?

이름에서 다소 장난기가 느껴지는 이 모임, 진짜 군대(army)를 지향한다. 물론 현역 군인은 아니고 예비 병력, 어쩌면 예비의 예비 병력이다. 저출산 인구 감소로 병역자원 고갈이 우려되는 현실에서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 은퇴 세대들이 앞장서 징집에 응하겠다고 서약하는 운동을 벌인다.

23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창립총회에는 백발은 희끗해도 활기가 넘치는 남녀 50여 명이 참석해 ‘국가가 부르면 우리는 헌신한다’고 다짐했다. 창립발기인의 신분과 면면은 제각각이다. 농부, 자영업자, 전직 언론인, 변호사, 정치인에 일본 영주권자도 있다. 주부를 비롯한 여성도 간간이 눈에 띈다.

시니어 아미 최영진 공동대표(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는 “회원 자격은 남녀 불문, 병역 불문, 국적 불문이다. 대한민국을 지키고 인간 기본권을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능하다. 다만 유사시 징집을 자원하는 동원 등록 회원은 50∼75세로 한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유사시? 살 만큼 산 사람들이 전장에 나가야죠…”


주최 측에 따르면 발단은 지난해 초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구 1억5000만 명의 대국 러시아가 예비역 30만 명 동원에 쩔쩔매는 현실을 보며 예비군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출산율은 줄고 노인 인구는 늘어가는 한국에서 앞으로 군대가 유지되겠냐는 걱정이 만연하던 참이다. 그즈음 최영진 공동대표가 낀 60대 동창 모임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이러다 우리 군대 두 번 가야 하는 거 아냐?”

“까짓, 가면 되지 뭐. 아직 건강하고 시간도 많은데.”

“우리가 지금 등산에 마라톤에 스쿠버다이빙까지 하고 다니는데 경계병 정도야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가볍게 시작된 얘기는 조금씩 커져 갔다. 생각할수록 그럴싸했다. 요즘 군은 자동화가 진행돼 있다. 경계병이나 감시병 정도는 60대 시니어라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군대 경험이 없는 여성들도 도울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동창회, 지인 모임 등 이런저런 단체카톡방에 이런 취지를 올리니 뜨거운 반응이 올라왔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 사람이 부족한데 전쟁터에 보내면 안 되지요. 요즘 시니어들이 건강하고 군사 경험이 있으니 마땅히 나서야죠. 평소 생각하던 바입니다.”(손교명 변호사)

“살 만큼 산 사람들이 전장에 나가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생산에 종사하고.”(선남규 씨·중소기업경영)

“다 같이 위국헌신 정신으로 자유민주 대한민국을 지켜 나갑시다.”(오세윤 씨·농부)

논의가 산으로 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시니어 아미를 일자리 창출 개념으로 접근한 일부 시각이 그런 예다. 시니어를 아예 장병 수준 급여로 고용하도록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자 금세 “난 돈 주지 않으면 안 하겠다”는 주장이 튀어나왔다. 연회비 3만 원에 대해서도 “목숨 바쳐 전선에 나가겠다는데, 돈까지 내야 하느냐”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시니어 아미는 회원들의 자발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철저히 정부 지원 배제, 자비 부담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한다. 조건 없는 헌신, 대가 없는 봉사가 아니라면 시니어로서 자긍심을 얻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정부 지원 배제, 자비 부담 원칙 고수

앞으로 인허가 절차를 거쳐 사단법인으로 발족할 계획인 시니어 아미는 7월 초순 홈페이지를 열어 가입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아직 구상 단계이지만 몇 가지 활동 계획은 굳히고 있다. 1년에 한두 번이라도 단기 동원훈련 정도는 해 보려 한다.

“정부가 허락하면 평시에도 주특기 훈련이나 경계근무 지원을 2박 3일 정도 할 수 있겠지요. 이런 경우 훈련장은 빌리고 총은 대여받되 밥값은 자비 부담한다는 게 원칙입니다. 동원예비군 훈련 때 몇십 명이라도 시니어들이 함께 훈련받는다면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이 단체가 출범 직전 50∼75세 장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데이터리서치)에서는 ‘은퇴한 장노년층이 동원예비군으로 다시 복무하자’는 주장에 대해 57.3%(적극 찬성 29.4%, 다소 찬성 27.9%)가 찬성했다. 이 같은 취지를 서약하자는 운동이 벌어진다면 참여하겠다는 답변은 61.4%(적극 동참 27.5% 가급적 참여 33.9%)에 이르렀다.

“개인적으로 예비역 장군에게 얘길 꺼내 봤는데 그분도 반색하더군요. 해병전우회 장부상 회원이 100만 명, 한국ROTC중앙회 장부상 회원은 20만 명에 성우회(장군들의 모임)도 있습니다. 이런 모임들이 조직적으로 가입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최영진 공동대표)

“저희 세대 사이에서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일단 100만 회원 가입이 목표입니다. 우리 경쟁 상대는 BTS 팬클럽 아미예요. 하하.”

인원이 늘면 세력화가 진행되고 정치색이 끼어들 수도 있다. 자칫 제2의 태극기부대로 오인받을 가능성은 없을까.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은 권재홍 전 MBC 부사장은 “그런 우려를 저희도 좀 했고 그래서 가장 큰 원칙을 ‘정치적 중립’으로 삼았다”고 잘라 말한다. “국가 안보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지요. 조심조심 경계할 것은 경계하되, 너무 무겁지 않게 운영해 나갈 생각입니다.”

●“노년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

‘우리가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는 구호를 내걸고 창립발대식을 가진 60+기후행동은 손주들에게 보다 나은 지구 환경을 물려주자는 노년 세대의 활동이다. 60+기후행동 제공
손주 세대의 미래를 걱정하며 행동에 나선 시니어들도 있다. 지난해 1월 출범한 ‘60+기후행동’은 “손주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는 없다”며 시니어가 나서서 행동하는 환경운동을 표방한다. 기성세대가 성장 중심으로 앞만 보고 달려오는 사이 미래 세대가 살아갈 환경을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성찰이 배경에 깔렸다.

스웨덴의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당사자로서 일상의 환경운동을 추동해 냈다면 이들은 자손들을 걱정하는 부모 마음을 담아 활동하는 것이다.

시위 방식도 독특하다. 대규모 인원이 주먹을 쥐고 목소리를 높이는 형태가 아니라 시니어 한두 명이 피켓을 들고 문제의 현장을 기웃대는 ‘어슬렁 시위’ 같은 것을 펼친다. 자체 밴드를 만들어 ‘방탄노년단’이라 이름 붙이고 즐기기도 한다.

강남식 60+기후행동 공동대표는 “기후 관련한 모든 숫자들이 다음 세대가 미래를 꿈꾸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말해준다”며 “우리는 노년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는 기치 아래 모였고, 미래 세대의 미래와 노년 세대의 여생을 위해 ‘녹색 전환’을 추구하는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노인들

이처럼 현역이 아니어도,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해도 미력이나마 세상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시니어들의 활동은 연간 100만 명 전후씩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머릿수 힘까지 더해 강점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초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미래포럼’은 베이비붐 세대가 앞장서 초고령사회의 체인지메이커가 되겠다고 표방하며 ‘우리가 디자인한다’는 뜻의 ‘우디클럽’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과거의 노인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대라고 규정하고 새로운 노인들이 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스스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이 같은 활동 배경에는 자식 세대의 빈 곳을 보완하겠다는 의지에 더해 세상에 대한 작은 참여로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고 싶은 은퇴 세대의 바람이 담겨 있다. “난 아직 죽지 않았다”고 외치는, 또 실제 그럴 능력이 충분한 이들이 바꿔놓을 미래가 다가온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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