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감독에서 코치로… 백의종군 나선 ‘영원한 오빠’
한국 남자 농구의 ‘영원한 오빠’ 이상민(51)이 코트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 26일 전주KCC와 2년 계약을 맺었다. 2014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삼성 썬더스 감독이었던 그의 신분은 다가오는 시즌부터는 KCC의 막내 코치로 바뀐다.
감독은 명예와 함께 책임이 뒤따르는 자리다. 이상민은 삼성에서 우승을 한 번도 못 했다. 2016-2017시즌 준우승이 최고 성적. 이후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음주 운전 사고 등 소속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잇따르자 결국 2022년 1월 시즌 중 불명예 퇴진했다가 1년 6개월 만에 코트에 복귀했다. 이상민은 “감독으로 우승을 이루지 못했으니 실패한 감독이다. 베테랑 감독님(전창진) 밑에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지난주 금요일(23일) 전창진 감독이 전화를 했어요. 단순한 안부 전화인 줄 알았는데 ‘재미 있게 놀아보자”며 코치 직을 제의하셨어요. 하루 이틀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곧바로 오라시더군요. 팀이 KCC라 결정하는 게 빨랐던 것 같아요.”
KCC는 이상민에게 애증 어린 곳이다. 물론 좋은 기억이 많다. 그는 1997년 KCC의 전신인 대전 현대에 입단해 세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1998년과 1999년엔 두 해 연속 정규리그 MVP, 2004년엔 챔피언결정전 MVP로도 뽑혔다. 마지막은 좋지 못했다. ‘바늘과 실’처럼 절친한 사이인 연세대 후배 서장훈이 KCC로 팀을 옮겨 함께 뛸 뻔했는데 팀이 보호 선수로 묶지 않아 오히려 이상민이 삼성으로 떠나야 했다. 16년 만에 용인 KCC체육관을 찾은 이상민은 “선수와 지도자로 큰 경기 치러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체육관을 다시 찾았을 때 이상하게 설레고 떨렸다”며 “체육관과 숙소 모두 리모델링했지만, 옛 분위기가 남아있어 낯설지는 않았다. 선수 시절 숙소에 있던 소파도 그대로 남아있더라”고 했다.
KCC는 지난해 슈팅가드 허웅(30)과 포워드 이승현(31), 올해는 최준용(29)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영입했다. 이상민 코치에게 직접 영입 제안을 했던 전창진 감독은 “다른 포지션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포인트가드 조련을 맡기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벌써 전창진 이후를 생각한 ‘차기 포석’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이상민은 그런 점을 부담스러워했다.
“삼성을 맡을 때 어린 선수들 키워 재미있게 해보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팀을 맡으니 마음대로 안 됐어요. 삼성에서 많은 기회를 줬는데 제가 보답을 못 한 겁니다. KCC에는 경험 많은 감독과 코치님이 계신 만큼 ‘백의종군하겠다’는 각오로 생활할 겁니다.”
이상민은 삼성 사령탑 시절 ‘부드러운, 자율 리더십’을 앞세웠다. 현역 시절 농구계 선배들의 강압적 지도 스타일이 싫었던 그는 선수들이 알아서 해주길 바랐다. 주위에서 때론 선수들을 강하게 다그쳐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이상민은 “어떤 리더십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내 리더십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를 잘 조율했어야 했는데 그런 걸 많이 놓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삼성 감독을 그만둔 뒤 1년 반 동안 “그동안 하고 싶었어도 못 했던 것을 많이 했다”고 했다. 연예 프로그램이나 해설위원 제의도 모두 뿌리치고 농구와 일부러 거리를 뒀다고 한다.
이상민이 코트에 복귀하면서 숨죽이고 있던 그의 팬들도 활기를 되찾았다. 한때 회원이 2만명에 육박했던 이응사(이상민을 응원하는 사람들) 관계자는 “단체 메신저 방이 잠잠했는데 이상민의 복귀 소식이 전해지고 다시 불이 나기 시작했다”며 “모두가 기쁜 마음이다. 홈이든 원정이든 KCC 경기장을 많이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농구대잔치부터 인기 몰이를 하면서 코트에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던 이상민은 현역 시절 9시즌 연속 올스타 투표 1위란 기록을 갖고 있다. 그가 지니고 있던 최다 득표 기록은 공교롭게 현재 KCC 소속인 허웅에게 지난해 깨졌다.
이상민은 “코치로 복귀하면서 현역 시절 자신과 현재 허웅의 인기를 비교해달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솔직히 선수나 감독이 아닌 코치인 내가 자꾸 조명되는 게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허웅 선수는 동부 시절부터 인기가 정말 대단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다면 허웅 같은 선수가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며 “허웅이 2030세대 책임지고, 내가 4050 관심 끌어올리면 프로 농구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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