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대리운전 타고 강연 다니는 작가

기자 2023. 7.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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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을 시작하고 <대리사회>라는 책을 쓴 것이 벌써 7년 전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대리운전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나아졌느냐고 하면, 절반은 그렇고 절반은 그렇지 않다. 강릉으로 이주한 이후 KTX를 타고 오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 왕복 5만원 이상이 나오니까 한 달에 4번이면 20만원이 이동비용으로 나온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물론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비용이 별도로 붙는다. 그래서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대리운전 콜이 나오면 탄다. 대리운전 비용이야 그때그때 다르지만 그래도 15만원 안팎은 되니까, 한 달에 한 번만 타도 그 비용이 상쇄된다. 월요일 저녁마다 서울 강남 ‘최인아 책방’에서 글쓰기 클래스를 한다. 저녁 9시반에 강남에서 대리운전 앱을 켜면 수도권 어디든 갈 수 있다. 이래저래 일과 삶을 연동해 나가며 계속해서 일한다.

지난해 tvN의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한 뒤로 강연 요청이 늘었다. 내가 뭐라고 나를 불러 주시는 게 고마워 일정이 맞으면 거의 간다. 그러다보니 강릉-울산-인천-대구-강릉 하는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 일이 많다. 대체 누가 이런 일정을 짰나 생각해 보면, 결국 어제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 떠넘긴 것이다. 강연비에 관여치 않고 움직인다지만 오가는 교통비와 숙박비만 해도 적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탁송을 타고 움직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동차들은 여기저기로 움직인다. 신차뿐 아니라 중고차를 딜러나 개인에게 가져다주기도 하고, 오래된 차를 폐차장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탁송보험에 가입한 이후 이동의 자유를 얻은 듯하다. 아침에 탁송 리스트를 보고 강연하러 가야 할 지역과 가까운 것을 고른다. 그리고 오후 탁송 리스트를 보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한다. 타인의 차를 타고, 대중교통보다 더욱 빠르게, 내가 가야 할 곳으로 이동하면서 돈을 받는다.

이렇게 하면 이동비용으로 지출해야 할 마이너스 100만원이 플러스 100만원으로 바뀐다. 같이 일하는 서점의 20대 매니저에게 말하자 그는 “저 슬램덩크라는 만화에서 봤어요. 백호군이 리바운드를 잡으면 우리 팀은 -2점이 아니라 +2점, 그래서 +4점의 효과를 얻는다”고 말해 나를 웃게 만들었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강연이 끝나고 다음 강연을 해야 할 지역의 탁송콜을 찾고 움직인다. 차를 확인하고 자동차등록증과 매매용 인감증명서를 받고 차의 사진을 10장이나 찍고 출발한다. 남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가는 데는 네다섯 시간이 걸린다. 중고차 매매단지나 폐차장에 주차하고, 서류를 제출하고, 인수 서명을 받고, 차 사진을 다시 10장 찍고 나오면 늦은 시간이다. 숙박 앱을 켜고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찾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고, 숙소에 들어가 그날 써야 할 원고를 마감한다.

대중교통을 타고 움직이면 몸은 편하고 조금 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렇게 푼돈을 벌 시간에 휴식하고 할 일을 더하는 게 남는 장사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첫 책에 써 두었듯, 사는 동안 반드시 일정 강도 이상의 육체노동을 반드시 하고 싶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은 그래야 겸손해지고 타인의 처지를 보게 된다. 언젠가 매니저를 두고 큰 차를 타고 움직이는 상상도 잠시 해보았으나 그러면 나의 글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쉰다고 해서 더 좋은 무언가를 만들어 낼 만한 사람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온전히 나의 몸과 마음을 다해 하루를 살아가고프다. 그러면 그날도 조금은 쓸 만한 사람의 몸이 되지 않을까.

얼마 전 관공서 강연이 끝나고 KTX를 타지 않고 탁송콜을 타고 이동했다. 다음날 강연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KTX 영수증이 없으면 교통비 명목의 지급이 안 된다고. 아아, 그날은 그냥 기차를 탈 걸 그랬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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