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찻잔 속 미풍’ 회의적, 전략가 합류 땐 돌풍 불 수도

2023. 7. 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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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톺아보기] 수면 위로 떠오른 제3당
신당을 추진 중인 금태섭 전 의원(왼쪽 사진)과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연 양향자 의원. [뉴시스]
올 하반기 총선 정국을 앞두고 ‘제3당’ 추진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한 주에만 서너 개의 신당 이슈가 잇따라 제기되면서 기존 정치권의 행태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이목을 모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기치를 들었던 금태섭 전 의원은 지난달 26일 첫 외부 영입 인사를 발표했고 양향자 의원도 같은 날 ‘한국의 희망’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고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또 원내 제3당인 정의당은 신당 수준에 버금가는 재창당을 결의했고 이와 별개로 장혜영 정의당 의원 등도 제3세력 규합을 모색하고 나섰다. 내년 총선이 9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제3당 논의에 가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이 같은 제3당 추진 움직임에 대한 기존 정치권의 시각은 아직 회의적이다. “결국엔 찻잔 속 미풍에 그칠 것”이란 비관론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잠재적 대선주자급 인물이 부재한 데다 현역 의원들의 합류도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회의론의 주된 근거로 꼽힌다. 하지만 총선 구도의 변화에 따라서는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등 국민의힘 비주류나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등도 언제든 제3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여기에 최근 민주당 지지도가 텃밭인 호남에서조차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도 신당론과 맞물려 또 다른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정가의 관심도 이처럼 수면 위로 떠오른 제3당 논의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과연 유의미한 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내년 총선에서는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지에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여의도 주변에선 제3당의 앞날을 제대로 진단·전망하려면 대선주자나 현역 의원 유무라는 기존의 ‘인물 변수’ 외에 현재 추진되고 있는 여러 움직임의 근본적 성격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중도층과 무당층의 비율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현실을 감안할 때 단지 인물이 부재하다는 이유 만으로 제3당의 파괴력을 평가절하할 수만은 없다는 주장이다.

현재 학계에서 통용되는 제3당 유형 구분법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카리스마적인 인물 중심 정당이냐, 아니면 가치 중심 정당이냐다. 전자는 1990년대 미국에서 제3 후보 돌풍을 몰고 왔던 로스 페로가, 후자는 민주노동당 등 이념 정당이 대표적이다. 둘째는 시민들의 반기득권 정서에 기반한 포퓰리즘 정당이냐, 대안과 지성주의를 앞세운 정책 중심 정당이냐다. 전자는 아파트 반값 선풍을 불러일으켰던 정주영 후보를, 후자는 1960년대 미 대선에 도전한 유진 매카시와 2007년 대선 때 문국현 후보를 들 수 있다.

마지막 유형 구분은 기존 공백 점유형 정당이냐, 새로운 공간 창출형 정당이냐다. 전자는 2016년 총선 때 국민의당 돌풍을 일으켰던 안철수 의원과 로스 페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미 정치권에서 민주당의 공간을 파고들며 적잖은 성과를 거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실제로 국민의당은 2016년 총선에서 38석을, 페로는 1992년 미 대선에서 18.87%를 득표하며 제3세력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후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대표 사례로, 기존 정당의 공백을 뛰어넘어 진보·보수와는 다른 제3의 길을 앞세우며 대권까지 거머쥐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모았다.

이 같은 기준을 현재 여의도에서 진행되는 제3당 논의에 적용하면 대체로 가치 및 대안·정책 중심 정당과 공백 점유형 정당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금 전 의원은 최근의 제3당 움직임이 여전히 인물과 지역에 근거한 기존의 정치 역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진정한 제3당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안 어젠다 제시를 통해 현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조직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 부호가 따른다. 기존 정치 세력이 금 전 의원의 신당에 관망세를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양 의원도 체계적인 지도자 육성과 함께 과학기술을 앞세운 블록체인 정당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현실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판적 에너지를 대변하기엔 아직은 힘이 부쳐 보이는 게 현실이다. 이에 비해 장 의원 등이 주도하는 세 번째 권력론은 새로운 공간 창출형에 가깝다. 특히 정의당을 포함해 ‘87년 체제’를 뛰어넘는 미래형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설득력을 갖지만 대중의 요구를 대변하기엔 아직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정의당의 재창당 선언으로 당내 논쟁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점도 숙제다.

이런 흐름을 종합해볼 때 최근의 제3당 추진 움직임은 인지도 높은 명사 중심의 이합집산 행태에서 탈피해 어젠다와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인물 중심론은 폭발적 성장과 동시에 폭발적 몰락의 위험 또한 상존한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정치 질서의 현실적 변화를 주도할 에너지와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과 학계의 공통된 평가다.

역사적으로 봐도 제3당이 성공하려면 기존의 정당보다 훨씬 더 정교한 전략과 추진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됐다. 비유하자면 제3당에 꼭 필요한 전략가는 ‘인사이더를 아는 아웃사이더’다. 실제로 기존 정치 질서의 허와 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대중의 불만과 요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전략가가 존재했을 때 제3당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영국의 자유당을 대체한 노동당의 필립 굴드나 1990년대 미국 정치에서 제시 벤추라 돌풍을 이끈 빌 힐스먼 등이 대표적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제3당을 추진 중인 세력들도 과연 이런 전략가들의 합류 속에 정국을 주도할 이슈를 생산해낼 수 있을까. 아니면 한번 침을 쏜 뒤 곧바로 죽어버리는 벌처럼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수없이 생멸했던 제3당의 전철을 또다시 밟게 될 것인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비호감도가 역대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제3당의 닻을 올린 세력들이 기존 정치권의 분화와 합종연횡을 뚫고 얼마나 여론의 관심과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지 정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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