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적 복장 기상캐스터 보느라, 날씨 정보 놓친 사람 많아

정영재 2023. 7. 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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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찾아서] 『눈은 알고 있다』 쓴 권만우 경성대 부총장
20년간 시선추적 연구를 해 온 권만우 경성대 부총장은 “시선과학의 적용 범위는 정치·사회·마케팅·미디어 등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월요일에 출근해 보니 책 한 권이 배달돼 있었다. ‘시선추적 장치를 통해 밝혀낸 눈의 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단 『눈은 알고 있다』였다. 무척 흥미로웠고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다. 앉은자리에서 다 읽은 뒤 저자에게 전화를 했다.

권만우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는 경성대 부총장을 겸하고 있다. 국내 최초 학교기업 언론사로 네이버 제휴사인 ‘시빅뉴스’ 발행인이기도 하다. 그는 20년간 시선추적기(Eye Tracker)를 이용한 연구로 시선추적 관련 논문만 100여편(공저 포함) 냈다. 그는 “시선과학 이론과 방대한 데이터로 다양한 사회 현상을 분석할 수 있다”고 했다. 부산에 가서 권 교수를 만났다.

인간 시야각 170도, 천연색은 37도 이내

Q : 교수님 논리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A :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눈동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입니다. 퓨필(동공)은 자율신경계라서 빛을 쏘면 수축되고 빛이 없으면 커집니다. 놀라거나 어떤 것에 집중해도 커지지요.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으니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뜻이죠. 눈동자는 1초에 수십 회 움직이고, 커졌다 작아졌다 합니다. 시선추적 장치를 통해 눈동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면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있죠. 저는 이 분야를 ‘시선과학’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앞으로 엄청나게 커질 겁니다.”

Q : ‘기상캐스터 쳐다보느라 기상정보 놓친다’는 얘기가 팩트인가요?
A : “그렇습니다. 두 가지 실험을 했는데요. 여성 앵커에게 시각적 선정성과 산만성을 유발할 수 있는 복장과 액서서리를 상-중-하 레벨로 착용하게 하고 뉴스를 읽게 했습니다. 나중에 피실험자에게 뉴스 내용으로 객관식 테스트를 했는데 앵커의 선정성과 산만성이 높을수록 점수가 낮았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기상캐스터에게 기상정보를 읽게 했는데 테스트 결과 태풍의 이름, 통과지역 등의 정답률에 복장별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편한 복장(청바지에 흰 티셔츠)을 한 앵커의 뉴스를 본 사람들도 정답률이 떨어졌어요. 결론은 진행자의 복장과 액서서리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해서 과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주는 게 좋다는 겁니다.”
도로 표지판에도 시선추적 이론이 적용된다. 정적인 이미지의 표지판(왼쪽)보다 동적 이미지를 본 운전자가 더 빨리 브레이크를 밟는 걸 볼 수 있다. [사진 권만우]
권 교수는 한과로 유명한 경북 봉화군 닭실마을의 안동 권씨 종가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온 뒤 일간지에서 IT·정보통신 담당 기자로 4년을 일했다. 박사논문 주제가 ‘뇌파 측정장치를 활용해 뉴스를 읽을 때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 연구’였다. 신경과학 분야는 장비가 비싸서 실험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는 국내 최고 R&D 지원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의 문화융복합단장을 지낸 덕에 국가 예산으로 좋은 장비를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Q : 여성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과 빤히 쳐다보는 것, 어떤 게 더 나쁩니까?
A : “곁눈질은 100%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겁니다. 뚫어지게 보는 건 주목하는 건데 그러면 동공이 확장됩니다. 이때 어떤 마음을 먹었느냐에 따라 동공 크기가 달라집니다. 음흉한 마음을 갖고 보는 것과 ‘참 예쁘다’ 정도 느낌으로 보는 건 전혀 다른 거고 그게 눈에 나타나는 거죠. ‘느끼하게 바라보는 것’이 성희롱에 걸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Q : 우리가 보는 세상이 100% 리얼리티는 아니라고 하던데요.
A : “인간의 시야각이 170도 정도라고 하는데 실제 총천연색으로 보이는 건 37도 정도 범위입니다. 나머지는 잘 안 보이거나 흑백으로 보이는데 눈동자를 계속 움직이니까 다 본다고 느끼는 거죠. 사람이 물고기처럼 180도를 전부 컬러로 인식하면 뇌 용량이 못 견딥니다. 몰입감이 뛰어난 VR이나 헤드셋을 쓰고 2시간 영화를 보면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 맥락이죠.”

Q : ‘농구 연습 중에 고릴라가 지나가는 영상’ 실험도 있었죠.
A : “‘흰색 유니폼 팀과 검정색 팀이 농구 연습을 하는데 검정색 팀이 패스를 몇 번 하는지 맞히면 10만원 준다’고 미션을 줍니다. 중간에 고릴라가 화면 가운데를 쓱 지나가는데 그걸 못 본 사람이 많다고 해요. 저도 학생들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57~60%가 고릴라를 못 봤답니다. 우리의 시지각이 그만큼 한계가 있다는 뜻이죠. 그런 점에서 멀티태스킹은 권할 게 못 됩니다. 휴대폰 문자하면서 운전했는데 사고가 안 났다면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Q : 마스크를 쓰면 더 예뻐 보이나요?
A : “맞습니다. 성형외과 의사들이 20년간 트래킹 장비로 온갖 실험을 다 했어요. 사람이 ‘예쁘다’ ‘잘생겼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코와 입에 있다고 합니다. 성형하는 부위도 그쪽이 가장 많다고 하죠. 외모에 자신이 있으면 마스크 벗는 게 좋고, 보통이다 싶으면 마스크로 좀 가리는 게 좋습니다. 웬만하면 다 예쁘고 잘생겨 보입니다. 하하.”
운전 중 문자, 사고 안 나면 운 좋은 것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Q : 영상물의 자막 길이와 노출 시간에 대한 연구도 되고 있지요?
A : “지금은 1초에 15캐릭터(한글은 자음과 모음, 영어는 알파벳) 정도를 소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책 읽는 능력은 떨어졌는데 자막 보는 게 엄청 빨라졌어요. 앞으로 자막 길이는 더 늘어날 겁니다. 방송국 자막은 유튜브나 넷플릭스보다 큰데 어떤 게 효율적인지 가독성 테스트를 해 봐야 합니다. 자막 길이와 글자 크기, 색깔, 모양 등도 연구를 통해 가장 적합한 솔루션을 찾아야죠.”

Q : 요즘 먹방이 워낙 많은데요.
A : “먹방을 자주 보면 고칼로리 음식을 먹게 돼 있고, 사람의 시선은 단 것에 쏠린다는 게 연구 결과입니다. 비만을 줄이고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먹방이 우리 식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해야 합니다. 먹방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절대 이걸 하지 않겠죠. CJ 같은 대기업은 4000명이나 되는 인플루언서를 관리하고 수많은 영상을 쏟아내는데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아요. 방송사들이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제를 받듯 영상 제작사들도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Q : 시선추적 장치와 관련 산업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요.
A : “10년 뒤에는 휴대폰이 아이 트래킹 장비가 될 겁니다. 지금도 휴대폰에 카메라 렌즈가 3개 있어서 내가 뭘 보고 있는지를 인식하죠. 앞으로는 센서 기술이 발전하고 해상도가 높아져서 온갖 카메라가 내 눈동자를 추적해서 마음과 생각을 읽어낼 겁니다. ‘눈은 알고 있다’가 아니라 ‘폰은 너를 알고 있다’가 되겠죠. 그 정보들이 누군가에게 넘어가면 무서운 빅 브라더가 생겨날 수 있어요. 지금도 삼성 폰을 쓰는 사람의 데이터는 구글(안드로이드)로 넘어가고 있잖아요. 이런 기술과 현상을 연구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국가 기관이 꼭 있어야 합니다.”

■ 싫어하는 정치인 봤을 때…진보는 적대감, 보수는 회피

「 권만우 교수가 2012년 제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흥미 있는 실험을 한 게 있다. 설문지를 통해 극단적인 보수 성향(박근혜 후보 지지)과 진보 성향(문재인 후보 지지) 그룹(총 57명)을 뽑았다. 그들에게 두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며 얼굴 어느 부분에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는지 조사했다. 두 그룹이 좋아하는 후보를 볼 때는 공통적으로 눈을 집중적으로 보고 코·입 등으로 옮겨갔다.

싫어하는 후보를 볼 때는 어땠을까. 보수 그룹이 문재인 후보를 볼 때는 박 후보를 볼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진보 그룹이 박근혜 후보를 볼 때는 눈을 주로 주시하는 게 아니라 미간이나 정수리 등으로 시선이 분산됐다. 권 교수는 “본인이 선호하거나 싫어하는 정치적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정보처리 과정과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도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대상의 사진에 대해 매우 다른 방식으로 반응했다. 진보 성향 사람들은 강한 적의(敵意)를 드러낸 반면 보수 성향 사람들은 대상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권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가 순전히 이성적이고 인지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험 결과를 보면 정치적 성향은 인지와 감정적 과정이 복잡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인지에서 감정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 극심한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반대 진영의 감정을 건드리는 발언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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