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귤 회수 건너면 탱자 돼” 물길따라 색다른 음식 꽃피워
[왕사부의 중식만담] 중국 요리 지역별 특색
중식을 두부 자르듯 분류하기는 힘들다. 인접 지방 음식들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거칠지만 큰 틀로 나눌 수는 있다. 먼저 남북 구분이다. 귤화위지(橘化爲枳),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춘추시대 제나라 안자가 한 말이다. 남쪽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속뜻을 갖고 있다. 화북 평원을 흐르는 회수는 옛 중원문화권의 남방한계선이자 남북 음식문화를 가르는 경계다. 연평균 강수량 1000㎜ 선과도 거의 같다. 강수량은 쌀 문화권과 밀 문화권을 결정한다. 회수 북쪽에는 건조한 평원이 많아 밀과 옥수수가 많이 난다. 비가 많이 오는 남쪽은 거미줄 같은 운하로 연결된 평야에서 벼를 주로 심는다.
남첨북함동랄서산(南甛北鹹東辣西酸)이라는 표현도 있다. 남쪽 음식은 달고, 북쪽은 짜고,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다는 뜻이다. 건조한 북쪽은 체액 증발이 많아 짠 음식으로 이를 보충한다. 덥고 습한 남쪽은 달고 담백한 요리가 많다. 동쪽은 파와 마늘을 많이 먹는 산동성 일대를 말한다. 서쪽 황토 고원인 산서성 일대는 신맛을 즐긴다. ‘식초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마실 물이 시원찮으니 결석을 예방하려 함이다.
4대 요리, 8대 요리, 10대 요리…. 편의와 목적에 따라 중국 음식을 세분하는 방법은 많다. 대만은 또 다르다. 1949년 12월 7일 장제스의 국민당은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에게 패해 정부를 대만으로 옮겼다. 이때 대륙 각지 사람들이 건너갔으니 대만은 중국요리백화점이라 할만하다. 대개 본토 4대 요리는 회양·산동·광동·사천요리, 또는 북경·사천·광동·강소(상해)요리를 든다. 남북 식생은 회수가 가르지만, 지방 요리의 주요 무대는 황하·양자강·주강 언저리다.
산동요리는 회수의 북쪽, 황하 중하류 일대 음식이다. 그중 제남(濟南)과 교동(膠東·칭다오 부근) 음식이 역사 깊다. 제남은 밀가루와 육류를 이용한 내륙 음식의 전형이다. 교동은 전복·해삼·새우·게·조개 같은 해산물과 파·배추·마늘·생강 같은 채소를 주로 쓴다. 짠맛을 기본으로 해 개별 재료의 맛을 더한다. 범위를 넓히면 산동요리는 북경·천진·산동·산서·섬서·하북·하남·요녕 등 북부지역 요리를 포괄한다. 청나라 때 산동 요리사들이 왕실에 포진하며 회양요리와 함께 북경 궁정요리의 양대 축이 됐다.
회양요리의 배경은 양자강(장강) 중·하류의 상해·강소·안휘·절강·강서·남경지역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긴 양자강(6300㎞)은 중세 이후 중국 역사의 중심으로 중류에 바다 같은 호수 파양호·태호·동정호가 있다. 호수 북쪽이 호북(湖北), 남쪽이 호남(湖南)이다. 회양과 사천 사이에 있는 호남·호북요리는 별도로 구분할 수도 있다. 풍성한 쌀과 광활한 호수에서 나오는 물고기가 마르지 않으니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호광숙천하족(湖廣熟天下足·호광의 산물이면 천하를 충족한다)이란 말도 있다. 호광은 호남·호북의 옛 지명이다. 찜과 탕이 많은 회양요리는 명·청대에 크게 발전했다. 남경을 수도로 삼았던 명나라가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음식도 따라간 덕이다. 회양요리에 반한 건륭제는 많은 요리사를 북경으로 데려갔다.
사천성 일대는 옛 파촉(巴蜀) 지방으로 중원의 한족 문화와 뿌리가 다르다. 사천요리는 중경·운남·귀주를 포함한 남서지역 요리를 말한다. 양자강 상류라 해산물 빼고는 온갖 야생동물, 채소, 민물고기가 흘러넘친다. 예부터 천부지국(天府之國·하늘이 곳간을 내려준 땅)이라 불린 이유다. 화끈하게 맵고 향기가 강해 멋모르고 대들었다가는 머리를 흔들며 나가떨어진다. 주로 화초(花椒·산초)로 매운맛을 내 고추(辣椒)를 많이 쓰는 호남요리보다 자극이 세다. 사천 매운맛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추 원산지가 신대륙이니 말이다. 사천 일대는 명말청초에 수많은 주민이 살육당하며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반란군 두목 장헌충이 도륙 주범이라는 설, 이를 진압하던 청군 짓이라는 설, 양쪽 모두에게 당했다는 설이 있다. 하도 많은 사람이 죽어 이때 파촉어가 사라졌다는 얘기도 있다. 그 뒤 각지에서 사람들이 이주해왔으니 토착 음식과 외지 음식이 섞이며 오늘날의 사천요리가 됐을 테다. 매운맛에 시고, 달고, 짠맛이 골고루 섞여 있는 이유다.
광동요리 무대는 남쪽의 광동·광서·복건 등 주강 유역이다. 링난산맥이 북쪽을 막아주어 오랫동안 개성 있는 문화를 유지해왔다. 베트남민족 조상이 일대에서 살다 한족에 밀려 하노이 쪽으로 남하했다고 한다. 아열대 기후로 일년 내내 후텁지근하다. 들과 강과 남중국해가 온갖 식재료를 내어준다. ‘날짐승은 비행기 빼고, 네발 달린 짐승은 책상 빼고 다 먹는다’ ‘요리라면 광저우(食在廣州)’라는 말처럼 별의별 식재료를 다 쓴다.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에 가장 먼저 문을 연 항구가 이 지역 홍콩과 마카오다. 덕분에 동서가 활발하게 섞이며 화려한 음식문화 꽃을 피웠다. 쌀이 주식이지만 밀가루 요리도 놀랍다. (다음 호에는 4대 지역의 간판 요리들을 이야기하겠다).
※정리: 안충기 기자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